감미롭고 거침 없는 리더십
  • 정혜신 정신과의원 원장 (www.hyeshin.co.kr)
  • 승인 200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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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리더십은 양극의 최대치를 독립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폭군과 노예를 한 인격 안에 배태한 마돈나 리더십과 닮은꼴이다.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겨냥해서 나온 ‘짜짬면’은 그릇의 가운데를 막아 짜장면과 짬뽕을 동시에 맛볼 수 있게 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하지만 짜짬면은 대중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두 가지 맛을 함께 즐길 수 있긴 했지만, 마지막에 짜장의 간이 배어 있는 감자 하나를 먹는 푸짐한 느낌, 그릇째 들이마시는 짬뽕 국물의 얼큰한 느낌을 동시에 재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 강금실은 특이하다.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지 않는 서로 다른 개성의 최대치가 한 사람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 모임에서 느닷없이 검찰 총수의 팔짱을 끼기도 하고, 한 대학의 강연에서는 ‘장관 직을 그만두면 강장관 같은 분을 학장으로 모시고 싶다’는 덕담에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면서 “난 또 장관직 그만두면 데이트 한번 하자는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등 공식 석상에서도 유혹적 태도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막강하다는 검찰 조직을 상대로 조금도 망설임 없이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이고 ‘고문 등 반인륜 범죄의 공소 시효를 없애는 특별법’을 추진하는 등 개혁 칼날을 휘두른다.
나는 요즘의 ‘강금실 현상’을 보면서 한 심리학자가 분석한 가수 마돈나의 특별한 성취를 떠올린다. “뮤직 비디오에 등장하는 마돈나는, 근육질 남성에게 복종하는 노예가 되기도 하고, 번쩍이는 검은 옷을 입은 채 미남들을 차례차례 굴복시키는 창녀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한 여성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이처럼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을 연출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마돈나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히 그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세계를 정복한 그녀의 성공은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

강금실의 리더십은 양극의 최대치를 독립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폭군과 노예를 한 인격 안에 배태한 마돈나 리더십과 닮은꼴이다. 강금실의 리더십은 외유내강형 혹은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 류와는 전혀 다르다. 하급자들이 ‘저 강금실인데요’로 시작되는 그녀의 상냥한 전화를 받으면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경외심마저 생긴다고 말하는 것은, 그 상냥함 뒤의 ‘거침없는 파워’를 동시에 감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검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는 검사의 권력을 칼의 순결성에 비유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여러분의 순결성을 지켜주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자가 남자에게 <모래시계>의 최민수 식으로 ‘너는 내가 지켜준다’는 대사를 날리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지금 우리는 강금실을 통해 그런 ‘새로운 유형의 영화’ 같은 리더십을 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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