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가 사장, 변호사는 직원
  • 고제규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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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비리 수법, 다양하고 교활해져… 검찰은 ‘봐주기 수사’ 의혹 받아
김은희 변호사(34·가명)는 법조 3년차 신참이다. 2001년 그녀는 사법연수원(30기)을 수료했다. 1993년 명문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1998년 천신만고 끝에 사법고시(40회)에 합격했다. 미혼이던 그녀는 연수원을 수료한 뒤 연수원 동기와 결혼했다. 그녀의 남편은 현직 판사다. 그녀는 변호사로 나섰다. 이때만 해도 이들에게는 법조 부부로서 탄탄대로가 열린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예상치 못했던 취업난에 빠졌다. 7백여 명으로 늘어난 연수원생이 사법 시장에 쏟아지면서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경험도 없이 선뜻 법률사무소를 개설할 수도 없어 망설이던 그녀에게 유혹의 손길이 뻗쳤다. 법조 브로커들이 그녀를 월급 5백만원에 고용하겠다고 손짓한 것이다.

2001년 법조 브로커 김 아무개씨와 이 아무개씨는 이렇게 김변호사를 고용해 ㅎ법률사무소를 개설했다. 변호사가 브로커를 고용하는 법조 비리 관행을 업그레이드해, 이번에는 큰손 브로커들이 거꾸로 신참 변호사를 고용한 것이다. 법조 브로커들은 사무실 개설과 운영 비용을 댔고, 김변호사는 월급쟁이로서 사건을 처리했다. 브로커 이씨는 김변호사에게 일곱 차례에 걸쳐 3천7백만원 상당의 사건을 소개하고, 알선료 명목으로 2천2백여만원을 챙겼다. 법조 브로커들은 사무실 한켠을 월 100만원씩 받고 경매 브로커에게 따로 임대했다. 경매 브로커들은 김변호사 명의로 여섯 차례나 경매를 대리했다. ㅎ법률사무소는 브로커가 브로커를 양산하는 무법 소굴이었다.

2002년 1월, 김변호사는 ㅎ법률사무소를 빠져나와 독립했다. 그러나 때늦은 탈출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그녀의 법조 인생은 위기에 봉착했다. 서울지검 특수3부에 덜미가 잡힌 것이다. 지난 10월16일 검찰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그녀를 기소했다. 김변호사는 현재 연락을 끊고 지방에 머무르고 있다. 김변호사를 잘 아는 한 변호사는 “남편은 전혀 몰랐다고 하더라. 김변호사가 브로커에게 걸려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 여름부터 서초동 법조타운에는 찬바람이 거셌다. 검찰이 법조 비리와 대대적인 전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창원지검이 시작한 변호사 수임 비리 수사를 계기로 검찰은 전국적으로 법조 비리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1998년에 있었던 대대적인 단속에 이어 두 번째 전쟁이다. 그 결과 10월28일 서울지검 특수3부(곽상도 부장검사)는 변호사 7명 등 법조 비리 연루자 30명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적발된 변호사는 김변호사처럼 신참에서부터 판사 출신인 나이 든 변호사까지 다양했다. 대부분 수임 비리였고, 판검사 로비에 쓴다면서 의뢰인으로부터 목돈을 가로채기도 했다. 그 가운데 김변호사와 같은 사무실을 쓰던 또 다른 변호사는 끝내 쇠고랑을 찼다.

김 아무개 변호사(51)가 장본인이다. 2002년 1월21일 김변호사는 서울지방 변호사로 ‘복귀’했다. 그는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변호사협회에서 제명당한 적이 있다. 1983년 사법연수원(13기)을 수료하고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그의 10년 경력은 한마디로 ‘법조 비리 축소판’이다.

1993년 김변호사는 소송을 불성실하게 수행했다면서 의뢰인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이듬해 그는 수원지방변호사회에 입회 신청을 했지만, 거부 결정을 받았다. 브로커를 고용하고 교제비를 받아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였다. 1995년에는 손해배상 사건의 배상물로 받은 부동산을 의뢰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금융기관에 근저당 설정해 1억2천만원을 대출받아 유용했다가 정직 1년 징계 처분을 받았다. 그는 또 자기 운전기사에게 형사 피의자를 대리 접견하도록 해서 사건을 수임하기도 했다. 대전지방변호사 소속이면서도 서울 강남구에 법무연구소를 개설해 이중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한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서도 사무실을 운영하는 것은 변호사법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그런 그가 2002년 1월에 제명에서 풀려 서울지방변호사회로 복귀했던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김은희 변호사가 떠난 ㅎ법률사무소를 인수한 그는 간판을 바꾸어 달았다. 간판만 바뀌었지, ‘브로커 둥지’라는 명성은 그대로였다. 그의 사무실에는 브로커들이 계속 들락거렸다. 김변호사의 이 아무개 사무장은 “(브로커들이) 업무를 보러 출입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드나들었다”라고 말했다. 이 사무실에 의뢰인들이 꼬이면서 피해자가 속출했다.

지난 2월4일 정 아무개씨(39)는 김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사기 혐의로 구속된 친구 김 아무개씨(39) 사건을 의뢰하기 위해서였다. 김변호사는 “10일 안에 보석으로 석방시켜주겠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계약서도 썼다. 2월14일까지 보석 결정이 나오면 1천5백만원을, 선고유예나 집행유예가 선고되면 7백만원을 받기로 했다. 정씨에 따르면, 김변호사는 보석 석방을 장담하면서 판사를 만나는 데 필요하니 목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정씨는 김변호사의 장담을 믿고 1천5백만원을 주었다. 그러나 김변호사는 돈을 받고 난 뒤 태도가 달라졌다. 그는 피의자 면회를 한 차례만 다녀왔다. 심지어 재판 시간에 늦기도 했다. 수감된 친구 김씨는 두 달이 지나서야 보석이 아니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의뢰인들은 계약서에 따라 김변호사에게 8백만원을 돌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김변호사는 전화를 피하고 만나주지도 않았다.

김변호사는 10일 내에 보석으로 석방시켜 주겠다는 식으로 의뢰인들로부터 모두 1억5천만원을 가로챘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는 큰손 브로커들과 대형 법무법인을 만들 계획도 세웠다(49쪽 위 사진 참조). 김변호사의 이 아무개 사무장은 “대형 로펌을 만들 계획이었다. 이 사건으로 계획을 접었다”라고 말했다. 10월2일 김변호사는 검찰에 적발되어 구속되었다. 대형 법무법인을 만들었다면 대형 사고를 칠 뻔한 것이다. 조사 결과 그는 현재 신용불량거래자였다.

법조 사상 최초로 영구 제명자 나올 듯

서울지검 특수 3부는 ‘적발된 변호사 가운데 검찰과 법원을 상대로 성공한 로비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통화 기록 조회나 계좌 추적은 하지 않았다. 비리 변호사나 사무장이 로비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이번에 적발된 변호사의 한 사무실에서 확보한 사무 직원의 메모장에는 ‘판사 돈주기’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검찰의 특별 단속이 도마뱀 꼬리 자르기 식의 생색 내기가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이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한변호사협회는 자체 징계를 했다. 변호사법에 따르면, 징계 수위는 영구 제명·제명·3년 이하 정직·3천만원 이하 과태료·견책으로 나뉜다. 적발된 변호사 가운데 김 아무개 변호사는 법조 사상 처음으로 영구 제명이라는 불명예를 안을 가능성이 높다. 제명과 정직 등 그동안 두 차례나 중징계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구 제명을 당하면 그는 사법 고시를 다시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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