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4회째 도전한 수험생의 2004년도 수능 시험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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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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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시험 도전자가 체험한 2004년도 수능 현장
수능 시험장. 숨소리도 얼어버릴 듯한 긴장이 지배하는 곳을 네 번씩이나 들락거리며 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수능의 역사’를 직접 체험했다.

양호실에서 시험을 치르다가 정신을 잃었던 나의 2001학년도 첫 수능은 흔히들 너무 쉬웠다고 해서 ‘물수능’이라고 불렸다.

두 번째 수능은 그 전에 비해 평균 66.8점이나 떨어진 ‘불수능’이었는데, 당시 시험장에서 나는 남학생 수험생들이 1교시가 끝나고 책상 위에 엎어져서 우는 꼴을 보았다. 몇몇은 아예 한숨을 몰아쉬고는 가방을 들고 시험장을 나가버렸다.

대학 입시에 두 번 실패한 뒤 ‘의대’ 진학을 입시의 키워드로 삼은 세 번째 수능에서는 시험장에서 턱 주위가 까칠까칠한 예비역들의 모습을 부쩍 많이 목격했다.

대학생이 되어 다시 수험생으로 ‘참관’하게 된 이번 네 번째 수능에서는 부담이 없어서인지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문제지를 받아든 후배의 턱이 파르르 떨리는 것도 보았고, 옆자리에 앉은 학생이 종 칠 때가 다 되어도 답안 작성을 끝내지 못하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도 보았다. 바로 앞에 앉은 수험생은 결국 종이 치고서도 답안 작성을 끝내지 못했다.

복도로 나오자 이번에는 다른 수험생 하나가 친구의 부축을 받으면서 가방을 메고 엉엉 울고 있었다. 옆에서 상황을 듣자 하니 전교 1등인데 언어 영역 답을 밀려서 써내려갔다고 한다.
고참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재수하면 사랑을 알고, 삼수하면 인생을 알고, 사수하면 출제 경향을 안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말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거기에 더해 팔수를 하면 OMR 답안지를 입에 물고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한단다…정말일까?). 말 그대로 한두 번 받아 보는 시험지가 아니라서 문제 유형과 출제 의도, 올해 수능 시험의 출제 경향이 행간에 쓰여 있는 것이 보인다.

이러한 내공으로 판단하기에, 올 수능에서는 언어 영역은 잘본 줄 알고 웃으며 집에 갔다가 답을 맞춰 보고 점수가 폭락한 경험을 한 학생이 많았을 것이다. 수리 영역은 인문계 중상위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점수가 대폭 상승해 다른 영역에서의 점수 하락을 상쇄하고 전체 점수 상승을 주도할 것이다. 사회탐구 영역은 3~4년에 걸쳐 높아진 난이도가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과학탐구 영역은 근 몇년 간 실제 수능에서 관측되지 않은 ‘테러’가 발생해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점수가 오그라드는 대란이 일어날 것이다.

외국어 영역은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하락한 가운데 최상위권 수험생을 변별하기 위한 다소 깊이 있는 문제가 소수 출제되어, 만점자 수는 약간 줄어들겠지만 평균 점수는 인문·자연계 모두 소폭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인문계 상위권에서는 언어를 잡은 학생이, 자연계 상위권에서는 과학탐구를 잡은 학생이 원하는 대학은 어디든 무사 통과할 것이다.

이번 수능 시험을 치르며 여고생 2명이 잇달아 콘크리트 바닥 위에 몸을 내던졌다고 한다. 정말 우리에겐 수능 점수가 목숨을 내던질 만큼 무게 있는 숫자인가? ‘옥스브리지’를 둔 것을 보면 우리를 이해할 법도 한 영국인들에게조차 우리네 수능시험 장면은 해외 토픽감이다. 매년 한국의 수능시험 사진을 싣는 영국 언론에는 늘상 이런 주석이 달린다.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는 한국 고등학생들. 그들에게 이 시험은 남은 인생을 결정하는 시험이다.’ 이쯤 되면 차가운 바닥에 피를 쏟은 가엾은 여고생들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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