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아도 안 터지는 사립학교 재단 비리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0.11.2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일·운화 학원 재단 착복 행위 드러나…기소된 이사장, 1심 무죄 판결
우리는 학교라는 가장 믿음직스럽다는 사회 안에서 사기당하고, 다시 한 번 법이라는 가장 준엄한 잣대에 의해서 버림받았다.” 재단 비리 혐의로 기소되었던 학교법인 예일·운화 학원 이사장 김예환씨(76)에게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지는 것을 보고 한 학생이 탄식하며 말했다.

김이사장이 운영하는 예일여고·환일고 졸업생들이 재단 비리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만든 인터넷 사이트(www.cafe.daum.net/rocks mashegg)의 이름은 ‘달걀로 바위 깨자’이다. 학교를 졸업하면 학교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는 이 학교 졸업생들이 이 사이트를 만든 것은 후배들 때문이었다. 지난 6월 초 검찰이 김이사장과 그의 작은 아들의 비리를 기소하자 이 학교 졸업생 손창학(20)·한수덕(20) 씨 등은 ‘이 기회에 재단 비리 문제를 제기해서 후배들이 최소한 인간 대우를 받고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하자’는 의도에서 사이트를 만들었다(현재 회원 1백85명이 활동 중이다).

그러나 5개월이 지난 지금 그들이 확인한 것은 재단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역시 ‘달걀로 바위 깨기’였다는 것뿐이다. 재판 결과가 김씨 일가의 재단 지배 체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일여고·환일고 재단 비리 문제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6월9일, 김이사장의 작은아들 김희천씨(42·재단 사무처장)는 급식업체를 선정하면서 리베이트로 2억5천만원(예일여고 1억5천만원, 환일고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었다. 그는 급식 과정에서도 학생 1인당 한 끼에 75원씩 리베이트를 챙겨 부당 이득 5천만원을 올린 것으로 기소되었다(75원이 오르면서 발생하는 부가가치세와 법인세 증가분 25원을 합쳐 학생들은 100원을 더 냈다). 김이사장은 교복을 선정하면서 리베이트로 1천1백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재판 결과, 김이사장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벌금 5백만원과 추징금 1천 1백만원을 선고받았다. 김사무처장에게는 2심에서 업무상 횡령 및 배임수재로 징역 2년 6월에 집행 유예 3년 판결이 내려졌다. 학생들이 먹는 음식과 입는 옷을 이용해 농간을 부린 파렴치한 범죄였지만 재판 결과는 관대했다.

하지만 김씨 부자의 비리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국회 교육위 임종석 의원이 국정감사를 하면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씨 부자에게는 7건에 걸친 22억3천8백만원에 대한 탈세 혐의와 12건 19억7천5백만원의 횡령, 유용 및 리베이트 의혹이 더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김씨 부자의 재산관리인 이 아무개씨(53)를 통해서 파악한 비리 내용은 훨씬 다양하고 구체적이다. 김씨 부자는 학교 건물을 신축하면서, 재단 예금을 관리하면서, 물품·비품을 들여놓으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돈을 착복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새로 건물을 지을 때는 여러 단계에서 착복이 이루어졌다. 수주 단계에서는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고 사실상의 수의 계약으로 업자를 선정했다. 다음 설계 단계에서는 아는 건축설계사(재단 이사로 등재되어 있는 최 아무개씨)를 통해 설계비 중 일부를 되돌려 받았다. 마지막으로 시공 단계에서는 학교 직원을 공사에 동원하고 그들의 임금을 착복했다. 이들은 공사비용을 부풀려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정부 보조금도 실제 비용보다 더 타냈다.

재단 예금은 이자율을 5% 정도 낮게 예치해 놓고서 김이사장의 자녀들이 대출받을 때 이자율을 5% 정도 낮게 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정부 지원금으로 컴퓨터를 구입할 때도 돈을 착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식 계약서 작성 후에 일부 부품을 빼고 들여오고 부품값만큼을 이사장이 받는 방식이었다. 김이사장이 이런 식으로 모은 재산이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교조 사립위원회 이금천 사무국장은 이러한 김이사장의 비리에 대해 “사립학교 재단 비리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방식으로 돈을 모았다. 돈이 되는 구석은 놓치는 법이 없었다”라고 평가했다.

아무튼 이런 문제를 일으키고 재단에 복귀했지만 김이사장에 대한 어떠한 반발도 없었다. 그가 사람을 철저하게 관리했기 때문이다. 그가 운영하는 여덟 학교 교사 가운데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는 단 1명도 없었다. 그의 측근 중 한 사람은 “새로 교사를 임용할 때는 충성도를 제 1의 기준으로 삼는다. 돈을 무척 밝혔지만 임용 비리는 한 건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사립 학교 비리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재단 이사장과 가족이 전권을 휘두르며 모든 비리를 저지르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적절히 권한을 나누어 주어 모두가 비리에 연루되게 만들고 인간적인 관계로 얽히게 만드는 방식이다.

재단이 전권을 휘두르는 곳은 교사들의 교권뿐만 아니라 인권까지 무시하기 때문에 불만이 팽배하다. 그래서 일부 ‘로열 패밀리’를 빼고서는 모두 불만이 있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는 문제가 곪아터지기 쉽다. 그리고 한번 불만이 터져 나오면 다수 대 소수의 싸움이 되기 때문에 학생과 교사들이 쉽게 뭉친다. 지금까지의 사립 학교 분규는 대부분 이런 구도에서 터져 나온 것들이었다. 교원노조법이 제정되어 교사들이 제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면서 올해에는 특히 많은 분규가 있었다.

그러나 정교하게 감시되거나 통제되는 곳, 비리의 사슬로 얽혀 비리가 완전히 뿌리 내린 곳은 사정이 다르다. 전교조 사립위원회 이금천 사무국장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할 사람이 없는 곳이 더 문제이다.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공허한 메아리만 되돌아 올 뿐이다”라고 말하며 예일·운화 학원이 그런 곳의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경우 문제가 불거져도 이를 해결할 동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1회성으로 그치기 십상이다.

예일·운화 학원 비리 사건이 터지게 된 것은 김씨 부자가 재산관리인을 내쫓으려고 무리한 방법을 썼기 때문이었다. 궁지에 몰린 재산관리인이 김씨 부자의 공금 횡령 사실을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이 사건은 불거지게 되었다.

그러나 김이사장 부자가 검찰에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학교에서는 미풍도 불지 않고 있다. 간혹 자기 목소리를 내는 교사가 있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지난 9월1일, 재단 비리 사건에 대해 적극 문제를 제기했던 예일여고 3학년 6반 담임 이 아무개씨는 곧바로 환일중학교로 전보되었다. 수능이 75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취해진 전격적인 조처였다. 교사 가운데 ‘달걀로 바위 깨자’ 사이트를 운영하는 졸업생들에게 몰래 격려 메일을 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까지 표면화한 움직임은 없다.

교사 중에는 김이사장에게 노골적으로 아부하는 사람도 있어 학생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지난 10월14일, 환일고 학생들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라는 교사들의 독려를 들으며 대청소를 실시했다. ‘학교의 진짜 주인’ 김이사장이 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 날 김이사장은 평소처럼 길게 훈화를 했는데 많은 학생이 졸았다. 김이사장이 나가고 몇몇 교사가 졸았던 학생들의 뺨을 때렸다. 한 학생은 ‘달걀로 바위 깨자’ 사이트에 ‘선생님의 승진을 위해 학생들이 맞는 학교는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내 학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라고 글을 올려놓았다.

겉으로 보기에 예일여자고등학교와 환일고등학교는 매우 건전하다. 미션 스쿨인 두 학교는 다른 비리 재단처럼 이사진에 무리하게 가족을 포진시키지도 않았다(재단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작은아들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이런 학교들은 교육부 정기 감사에서도 거의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며, 발견된다고 해도 경미한 지적만 받을 뿐이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심각하게 곪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전국에서 분규 사학으로 분류되는 곳은 사립 중고 50여 곳, 사립 대학 8곳에 이른다. 설립 인가 문제, 관리 감독 문제, 비리 사학 처리 문제 등 사립 학교 재단 비리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제대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문제 해결의 주체인 교육부의 상황(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이나 태도를 보면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진다. 이번 국정감사 기간에 사립 학교 재단 비리 문제를 다룬 국회 교육위 소속 의원들은 “사립 학교가 다 그런 것 아니냐며 문제 의식을 못 느끼는 교육부 공무원의 도덕 불감증이 제일 문제이다”라고 일제히 교육부를 성토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