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 야구단에 얽힌 호남 민심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0.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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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룡 감독 삼성행 통해서 본 호남 민심/"타이거스 구단 몰락은 지역 경제 축소판"
김응룡 감독이 지난 10월30일 18년 동안 정들었던 해태 타이거스의 유니폼을 벗고 프로 야구 삼성 라이온스 감독으로 변신했다. 스포츠 신문 1면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한 김응룡 감독의 삼성 취임 소식이 알려진 뒤 광주 시내 술집에서는 호남 사람들과 애환을 함께한 해태와 김감독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가고, 이젠 코끼리 감독마저…. 해태는 정말 희망이 없다”라는 탄식이 터져 나오자 왕년의 강타자 김성한 감독을 한번 믿어보자는 얘기가 뒤를 받쳤다. “영원한 해태맨으로 남겠다더니 돈 때문에 삼성에 갔다”라는 비난 못지 않게 “지난해 삼성이 17억원을 제시했어도 구단주와의 ‘의리’ 때문에 주저앉았던 사람이다. 보내줄 수밖에 없다”라는 반박도 많았다.

프로 야구 정규 시즌이 끝나자마자 연일 김응룡 감독의 거취 문제를 다룬 광주 지역 언론들도 김응룡 감독의 삼성행에 사설과 칼럼까지 할애하며 프로 야구 최고의 명장을 보내는 호남인들의 아쉬움을 표시했다. <코끼리 고별송>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 언론인은 ‘호남인과 해태는 야구 공동체였다. 해태가 슬프면 우리도 슬펐다. 해태가 이기면 우리들은 더 이기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 ‘그는 떠났지만 우리는 그를 보내지 않았다. 코끼리는 가도 그의 큰 발자국은 전라도 사람들의 가슴에 화석으로 살아 남을 것이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해태 팬들은, 아니 호남 사람들은 해태를 통해 대리 만족을 하며 암울한 1980년대를 통과했다. 호남 사람들에게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정치였다. 따라서 해태의 몰락과, 김응룡 감독의 삼성행을 바라보는 심정도 다분히 정치적이다. 해태를 통해서 호남 민심을 들여다보자. 해태 타이거스는 2년 연속 드림리그 꼴찌에 머물렀다. 호남 지역의 경제 수준 역시 꼴찌를 헤매기는 마찬가지이다. 광주시와 전라남도의 재정 자립도는 전국 시·도 가운데 최하위이다.
광주와 전남이 얼마나 지역 발전에 목을 매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례가 하나 있다. 전라남도가 2010년 해양 엑스포를, 광주시가 2008년 광산업 엑스포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여수 해양 엑스포 유치 사무국은 광주시에 광산업 엑스포 추진 중단을 요구했다. 국제박람회 사무국의 규정에 따라 15년 이내에는 공인 박람회를 한 나라에서 두 번 유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먼저 해양 엑스포 유치를 추진했던 여수시가 광주시에 포기를 요청한 것이다.

해태를 통해 들여다보는 호남 민심의 또 다른 일면. 해태는 1996년 선동렬 선수, 1998년 이종범 선수를 일본에 보낸 뒤 ‘투자는 하지 않고 돈 될 만한 스타를 팔아 구단을 운영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해태 구단 관계자는 “1996년 이후 선동렬·이종범 선수 이적료로 구단이 받은 금액은 90여억원이다. 구단 1년 운영비 100억원에 미치지 못한다”라고 푸념하지만, 해태의 영광은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해온 것이 사실이다.

호남 지역 사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호남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특별히 받은 것도 없이 숨만 죽이고 살아야 했다. 오히려 김응룡 감독의 삼성행을 보듯 김대중 정부의 ‘동진정책’을 마냥 지켜보아야 했던 것이 호남 사람들이다. 사실 요즘 호남 지역 서민 가운데는 부쩍 민주당과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한 40대 택시 기사는 “노벨상도 타고 했으니 이젠 내치에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호남 사람들이 다같이 욕을 먹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1월 7∼8일께 광주와 전남을 방문해 호남 민심을 달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호남 사람들이 답답해 하는 것은, 정치에는 김성한 감독만한 젊은 기대주도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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