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은 필요한가
  • 최재천 (변호사, 법무법인 한강 대표) ()
  • 승인 200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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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슬람 극단 세력의 테러 행위일 텐데, 만일 이것이 두렵다면 전투병 파병 논의를 당장 중단하는 것이 법을 만드는 것보다 낫다.
이라크에서는 오늘도 미군을 겨냥한 저항 세력들의 게릴라 공격이 한창이다. 게릴라(guerrilla) 전은 스페인어로 ‘소규모 전쟁’을 뜻한다. 1808년 나폴레옹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하자, 민중이 산발적인 무력 항쟁을 벌였는데 여기서 비롯한 말이다. 그렇다면 미군에 대한 이라크인의 게릴라전은 테러일까, 아니면 정당 행위일까?

테러리즘을 보는 두 개의 눈

테러리즘(Terrorism)의 법적 정의는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미국 등 서방국의 일반적인 입장은 개인이나 단체가 특정 정책의 수정, 상태의 중단을 위해 주요 인물을 공격하거나 시설을 파괴하거나 또는 대중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위라고 한다. 이에 반해 급진적인 제3 세계 국가들은 개인이나 단체 테러의 원인이 되는 국가 테러를 지목한다. 인종차별 정책, 식민주의 정책, 자결권이나 독립, 기타 기본권을 위해 투쟁하는 민중을 탄압하는 정책 행위가 바로 테러리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제3 세계의 주장은 개인의 테러 행위는 탄압에 대한 저항이고, 민족 해방이나 독립 쟁취가 그 목적이기 때문에 무력을 행사해도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미국의 처지에서는 이라크 반군의 행위가 바로 테러가 되고, 이라크 반군 처지에서는 독립을 침해하는 미군의 행위가 바로 테러가 된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이 이스라엘 선수단에 테러 행위를 저질렀다. 이는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 해 9월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총회 의제에 테러리즘 문제를 포함하도록 요청했다. 하지만 앞서 본 대립은 테러리즘에 대한 국제 차원의 협력을 기대하기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대신 동질성이 강한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는 지역 차원의 테러리즘에 관한 협약이 마련되었다. 지역 차원의 협력과는 별개로 영국은 1974년 테러방지법을, 독일은 1976년 테러대책법을, 미국은 1983년 국제테러대책법을, 프랑스는 1986년 테러대책법을 제정해 자국과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한국도 9·11 테러 이후 테러 방지에 대한 관심이 모아져 정부는 이번 정기국회에 테러방지법안을 제출했다. 정부는 ‘정치적·종교적·이념적 또는 민족적 목적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의 테러 행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테러방지법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시민단체는 인권이 침해될 가능성을 들어 ‘제2의 국가보안법’이라며 반발한다.

시민단체들이 지적하는 법안의 문제점은, 첫째, 테러의 개념 규정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데 있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고리 식의 법 적용이 시민의 기본적 인권 침해에 중대한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앞서 본 테러 개념의 상대성에서 비롯한 논쟁이라 할 수 있다. 둘째, 테러 예방을 위해 군 병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테러 예방이라는 명분 아래 군과 경찰의 경계가 없어지고, 극단적으로 계엄 선포조차 없는 계엄 상황이 계속될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형법이나 통합방위법 등에서 각종 테러 행위를 예방하고 처벌할 만한 촘촘한 그물망을 갖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슬람 극단 세력의 테러 행위일 텐데, 만일 이것이 두렵다면 전투병 파병 논의를 당장 중단하는 것이 법을 만드는 것보다 낫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슬람 극단 세력의 테러 행위일 텐데, 만일 이것이 두렵다면 전투병 파병 논의를 당장 중단하는 것이 법을 만드는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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