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훈 중위 사건, 특검팀에 맡겨라”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9.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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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인권위, 특검제 도입 운동 돌입… 유족측, 최병모 변호사 등 통해 손해배상 소송
판문점 경비 소대장 김 훈 중위 의문사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움직임이 새로운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위원장 김형태 변호사)가 이 사건을 자살로 처리한 지난 4월의 국방부 수사 결과가 축소 은폐되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를 담은 백서를 발간한 것.

국방부의 자살 결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백서가 나온 것은 지난 6월 국회 국방위원회 ‘김 훈 중위 사망 진상파악소위원회’(위원장 하경근 의원)가 발간한 <역사의 순리가 아닌 진실의 은폐>에 이어 두 번째이다. 입법부 쪽과 인권단체가 모두 사건의 진실이 은폐되었음을 공개 천명한 것이다. 지난 12월8일 천주교인권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백서를 배포하고, 김 훈 중위 사망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제 도입 운동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김 훈 중위 유족(김 척 예비역 육군 중장)은 국방부가 사건의 진실을 축소 은폐한 책임을 묻겠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지난 18개월간 김중위 사건 진상 규명 작업을 벌여 온 천주교인권위원회 이덕우 변호사를 필두로 최근 옷로비 특별검사로 활약하고 있는 최병모 변호사, 파업 유도 의혹 사건 특별검사 팀에서 활동하다 탈퇴한 김형태 변호사 등이 공동으로 맡았다. 한마디로 김 훈 중위 사망 사건의 진실은 특검제를 도입해 밝혀내야 한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지난해 2월24일 국가 안보의 최전방 보루인 판문점 공동 경비 구역에서 의문의 총상 시체로 발견된 김 훈 중위 사망 사건은 그동안 군 당국과 국방부가 세 차례에 걸쳐 자살이라고 발표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이런 결론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또 하나의 ‘국가적 의혹 사건’이다. 지난 4월 국방부가 세 번째로 자살 결론을 내린 직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 조사 결과 94%에 이르는 응답자가 자살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대답한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국방부가 자살이라고 발표한 이후에도 진상 규명 작업을 계속해온 천주교인권위원회는 그동안 자체 수집한 증거들을 토대로 김 훈 중위는 결코 자살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이번에 특검제 도입 운동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덕우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옷로비 사건과 파업 유도 사건에 한정해 특검제가 운영되고 있는데, 김 훈 중위 사건 역시 특별검사에 의한 전면 재조사가 필요한 국민적 의혹 사건이다. 정밀 검토 결과 특검제가 도입되면 세 차례에 걸친 군 당국의 수사가 어떻게 축소 은폐되었는지까지 속속들이 드러날 것으로 본다.” 옷로비 사건이 청와대 사직동팀의 1차 조사와 검찰의 2차 조사까지 거쳤어도 특별검사에 의해 비로소 진실이 드러난 것처럼 김 훈 중위 사건도 특검제가 도입되면 과거 군 당국의 자체 조사에 따른 결론이 거짓이었음을 입증할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 배상 소송을 낸 김 훈 중위 부친 김 척 예비역 장군 역시 이 소송이 단순한 민사 소송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지난 1년 8개월간 모든 것을 바쳐 진실을 찾아 헤매면서 군에 대한 배신감과 좌절감을 느끼며 대한민국을 떠나야 겠다는 생각, 심지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3성 장군으로서 국가 안보에 평생을 바친 우리 가족조차 이럴진대 군에 보낸 자식이 의문사 당한 일반인의 심정은 어떻겠는가를 생각하며 쓰러지려는 자신을 추슬러 왔다. 타살이라는 사실이 밝혀져도 내 아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은폐와 조작에 의해 진실이 죽는 것을 본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이번 소송은 진실의 승리를 위한 작은 디딤돌을 놓은 것에 불과하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김 훈 중위 사건 특검제 도입 운동에 들어간 가장 큰 이유는 군 당국이 김 훈 중위가 스스로 쏘지 않았다는 과학적 증거를 확보하고서도 이를 축소 조작했다는 증거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군 당국은 사건 초기에 김 훈 중위 휘하 부대원에 의해 증거물이 훼손된 상태에서 초동 수사를 시작도 하기 전에 자살로 전파해 문제점을 드러냈다. 최초 사건 현장을 찾은 수사관들조차 자살로 단정하고 초동 수사를 사실상 방기했기 때문에 재수사에 나선 군 수사팀(육군 고등검찰부·국방부 특별조사단)은 과학 수사에 나서야만 했다. 이들은 그 절차를 밟았다. 육군 고등검찰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김 훈 중위 사망에 사용된 권총을 가지고 실험해 달라고 요청했고, 국과수는 실험을 통해 그 결과를 통보했다. 국과수는 지난해 10월2일자 회신을 통해 권총 시험 발사 결과 쏜 사람의 엄지와 집게손가락 부근, 그리고 손등과 손목은 물론 20㎝ 거리 이내의 팔과 피복에서 화약 입자가 육안으로도 관찰된다고 통보했다. 오른손잡이였던 김 훈 중위의 오른손과 팔 등에서는 전혀 화약 입자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런 과학적 실험 결과는 김 훈 중위가 스스로 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이다. 그러나 군 당국은 이런 실험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묵살했다.
군 수사 결과 뒤집는 증거 속속 나와

국방부 특별조사단(특조단)도 마찬가지였다. 특조단은 지난 1월25일 특전사 부대원 3명으로 하여금 권총 시험 사격을 실시토록 한 뒤 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했는데 그 결과 3명 모두 오른손·팔·피복에서 화약흔이 나왔다. 그러나 특조단 역시 스스로 과학 실험한 이 증거를 묵살했다. 그대신 엉뚱한 외국의 교과서 통계를 들이대며 방아쇠를 당긴 손에서 화약 잔재가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군 당국 스스로 과학적 실험을 하고도 자살로 볼 수 없는 실험 결과가 나오자 이를 축소하고 온갖 비과학적 추정을 모아서 자살이라고 강변했던 것이다. 군 당국은 이런 내용이 알려질까 봐 처음에는 인권단체가 추천하는 민간 자문위원과 공동으로 총기 시험을 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이를 뒤집었다. 이 때문에 특조단 수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 1월15일 천주교인권위원회 소속 민간 자문위원들은 특조단 해체를 주장하며 자문위원 직을 내놓았다.

최근 군 당국이 권총 실험 결과를 묵살했다는 증거를 확보한 국회는 국방부에 과학적 권총 실험을 다시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국방부측과 국회의원, 인권단체 및 유족측이 참석한 데서 권총 10발을 쏘아보고 그 중에 단 한 번이라도 발사자의 손과 팔, 피복 등에서 화약 잔재가 검출되지 않으면 국방부 주장을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모든 수사가 끝났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회 국방위 진상 파악 소위원회 하경근 위원장은 “국방부가 김 훈 중위 사건의 진실을 계속 덮을 경우 사건 축소 은폐에 가담한 군 관계자는 물론 인권을 강조하는 정권 담당자들에게도 엄청난 핵 폭풍이 다시 덮칠 것이다. 이 정권이 나서지 않으면 다음 정권에서는 반드시 문제가 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김 훈 중위 사건을 둘러싼 축소 은폐 의혹은 이것만이 아니다. 사건 현장에 떨어진 철모의 주인을 용의자로 추정하는 국회 국방위원회측은 철모에 쓰인 소유자의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필름 원판을 제출하라고 6개월 이상 요구하고 있지만 국방부는 아직도 미군 핑계를 대며 제출하지 않고 있다. 또 군 수사 당국이 발표한 사건 현장 요도는 최초 실측한 미군의 요도와 다른 상황을 담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현장에 놓인 권총이 다른 부대원이 소지한 권총인데 이에 대한 군 당국의 설명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김중위가 자살을 미화한 소설을 읽고 자살을 결심했다고 밝힌 국방부 발표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김중위가 사건 직전 적극적인 인생관을 담은 <아침을 여는 3분 성공 체크>라는 책을 읽고 있었음을 확인해주는 증거가 나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지난 겨울 국방부의 수사를 받은 일부 전역병들이 국회 진상규명소위원회와 천주교인권위원회 관계자들을 만나 자살로 짜맞추기식 수사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결국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놓고 볼 때 이 사건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재조사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파업 유도 사건과 옷로비 사건에 이은 김 훈 중위 사건 특별 검사제 도입을 국방부가 피할 명분이 이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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