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는’ 교도 행정, ‘뛰는’ 탈주범
  • 광주·羅權一 주재기자 ()
  • 승인 2000.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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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는’ 교도, ‘뛰는’ 범죄
광주지방법원 법정에서 교도관을 찌르고 달아난 희대의 3인조 법정 탈주극은 광주교도소의 허술한 재소자 관리 탓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지검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신남규 형사2부장)가 수사한 결과 정필호(37)·노수관(38)·장현범(32) 3명은 사전에 치밀하게 모의한 뒤 교도소 내에서 다른 재소자의 도움을 얻어 흉기를 제작했고, 광주교도소는 탈주 당일 법정 출두 때 반드시 거치도록 되어 있는 X선 검신대를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대담하게 법정에까지 흉기를 반입해 탈주를 감행한 이들의 범죄 행위는 광주교도소의 부실한 교도 행정이 낳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이들의 탈주극은 광주교도소의 고질적인 재소자 관리 실태를 그대로 드러냈다. 우선 교도관들이 이들 3명이 법정에 출두할 때 몸수색을 형식적으로 했을 뿐만 아니라 흉기 반입을 막을 수 있는 X선 검신대를 아예 작동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때문에 주범 정필호는 교도소 의무실 옆 빨래 건조대 밑에 미리 묻어 둔 흉기 네 자루를 옷 안에 숨기고 법정에 나와 대기실에서 노씨와 장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

탈주극이 이처럼 교도관들의 직무 유기로 발생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데도 광주교도소측은 “검신대가 고장났다” “기계가 낡아 오작동이 잦다” “정필호가 검신대를 통과하지 않고 옆으로 비켜 갔다”는 등 사건 초기부터 발뺌하기에 바빴다.

또 다른 문제는 수형자들이 생활하는 기결사에 대한 교도관들의 고질적인 관리 부실이다. 전과 14범인 주범 정필호는 노수관·장현범과 함께 특수 강도 혐의로 재판을 받는 미결수 신분이면서도 기결사에 수감되었다. 정필호가 지난해 11월 마약 사건으로 복역 중인 상태에서 노수관·장현범과 함께 벌인 추가 범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필로폰·담배 밀반입에 교도관 비리까지

기결사에 배치된 정필호는 동료 재소자 추 아무개·김 아무개 씨의 도움을 얻어 흉기 3개를 건네받았을 뿐더러 스스로도 감방 창틀을 뜯어내 흉기를 만들었다. 정필호는 자신이 만든 칼로 사과를 깎아 먹기도 했는데, 법정에 출정하던 날 교도관은 정필호의 동료 재소자인 김 아무개씨 감방의 창틀 받침대가 뜯어진 것을 발견했지만 방심해 그냥 지나쳤다. 주범 정필호가 기결사에 대해서는 교도관들의 감시가 소홀하다는 것을 악용했는데도 교도관들이 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광주교도소가 재소자 계호에 부실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광주지검 검사실에서 조사받던 재소자가 자신의 애인과 여직원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여 경찰 특공대를 투입해 검거했다. 1998년 6월에는 수감된 재소자가 병원에서 전달받은 필로폰을 교도소로 반입해 투여했던 것으로 밝혀져 홍역을 치렀다.

교도관 비리도 끊이지 않아 지난해 4월에는 교도관들이 재소자 가족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담배를 밀반입해 준 것이 드러나 교도관 2명이 구속되었고, 1995년에도 ‘담배 장사’와 뇌물 수수로 교도관 5명이 구속되었을 정도이다. 이와 관련해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던 김성만씨(43·서울 중구 신당동)는 “조직 폭력 출신 부두목급 이상이 교도소에 가게 되면 6개월 이내에 수천만원이 뿌려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들은 외부에서 교도관이나 관련자들을 구워삶아 좋은 방을 ‘분양’받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재소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위세를 과시한다”라고 광주교도소 비리 실태를 고발했다. 김씨는 유독 광주교도소가 이처럼 교도 행정이 느슨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로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정치범이 많아 이들의 ‘투쟁’으로 재소자들에 대한 감시가 헐거워진 점과 함께, 전통적으로 조직 폭력배의 영향력이 교도관들에게 잘 통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근 사건 발생 뒤 새로 취임한 주규태 광주교도소장은 “교도관들이 원칙적인 근무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기강을 바로잡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민희 전임 교도소장 역시 ‘엄정한 법 집행’을 수 차례 강조한 바 있다. 때문에 허술한 재소자 관리와 교도소 비리의 상징이 된 광주교도소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얼마나 탈바꿈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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