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성전을 왜 아들에게 주나
  • 권은중 기자(jungk@e-sisa.co.kr) ()
  • 승인 2000.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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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직 세습 잇따르자 교계 내부에서 반발… 교회세습금지법 청원 움직임도
강남의 대형 교회들이 담임목사 직을 아들에게 물려주려다 일반인은 물론 교계 인사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담임목사직 세습은 이미 서울 강남의 충현교회, 소망교회, 성민교회, 인천 주안교회 등 대도시 대형 교회들에서 몇 년 전부터 유행처럼 번져온 일이다. 그런데 유독 서울 신사동 광림교회 문제만 언론에 크게 공개되어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광림교회 사건이 불거진 것은 지난 4월30일 등록 신자수 8만5천명으로 세계 최대 단일 감리 교회인 광림교회가 내년 3월 은퇴를 앞두고 있는 김선도 목사의 후계자로 아들인 김정근 부목사를 선임한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교회측은 이같은 결정이 4월21일 장로와 평신도 대표로 이루어진 강남지방 구역인사위원회에서 적법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인터넷, 교회 개혁의 봉화 올려

그러나 젊은 신도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광림교회의 홈페이지 게시판인 광림나눔터에는 신도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아들인 김정근 부목사가 담임목사로 선출되었다고 비판하는 글이 쇄도했다. 신도 김 아무개씨는 ‘광림교회 세습은 인위적으로 결정되었기에 하나님의 선택적 주권을 침해하는 범죄 행위이며, 순종이라는 미명으로 자행된 인위적 쿠데타이다’라고 지적했다. 한 재미 교포는 ‘존경하던 김목사님이 그럴 줄은 몰랐다. 성도들의 희생을 생각하시길 바란다’라고 충고했다. 교회측은 게시판에 실린 비판을 삭제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이 난을 폐쇄했다. 그러자 신도들은 기독교대한감리회와 다른 교회, 언론사 사이트에 비판하는 글을 계속 올렸다.

이 사태를 지켜보던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손봉호 서울대 교수, 홍정길 남서울교회 목사, 강영안 서강대 교수)가 6월29일 담임목사직 세습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냈고, 대부분 언론이 이를 크게 보도하면서 이 사건은 교계에서 사회로 확산되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성명서에서 ‘교회의 담임목사 세습은 언약 공동체인 교회의 근본을 흔드는 불행한 사태다. 혈연 관계에 의지해 교회의 평안을 추구하는 것은 교회가 병들었다는 증거이므로 담임목사직 세습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7월1일부터 인터넷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고, 교회 세습을 법으로 금지하는 입법 청원을 준비 중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1987년 그리스도인들의 행동과 삶은 물론 교회와 국가가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장기려· 이만열·손봉호씨 등 기독교인 38명이 발기인이 되어 만든 단체다. 공동대표의 한 사람인 강영안 교수는 “세습은 주로 서울 강남의 대형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들 교회 목사들은 당회가 전권을 휘둘러 왔기 때문에 후임자 선발 절차의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홈페이지에서는 광림교회의 세습 결정을 옹호하는 주장과 이 기회에 목사 세습 철회는 물론 교회 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네티즌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런 움직임과 맞물려 담임목사의 아들인 목회자 2세들이 세습을 거부하겠다는 신앙 양심선언을 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선언을 주도한 연세대 신학과 김성종씨는 아버지가 부목사 생활 16년 만에 서울 신수동 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목회자 2세다. 김씨를 비롯한 학생 3명은 “교회 세습 반대운동도 필요하지만 목회자 자녀들이 교회 세습을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필요한 일이다”라며 신학도의 동참을 호소했다.

현재 교회 개혁의 구심점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건강교회운동본부 관계자는 “이번 움직임은 대형 교회 목사들이 아들을 담임목사로 선임한 것을 취소할 때까지 강력하게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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