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재미있고, 부드럽게
  • ()
  • 승인 2000.08.0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학사랑·숭실대 수학과 등 새로운 수학교육법 실천
수학체험전에 참가한 김세은양(대덕고 1)은 “수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 놀이와 실험을 하면서 원리를 이해하니까 공식도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온다”라고 말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기간에 대전에서는 또 하나의 수학 페스티벌이 열렸다. 수학을 만지고 체험할 수 있는 ‘수학 체험전’. 올림피아드가 수학 영재들을 위한 잔치였다면, 수학 체험전은 수학을 싫어하는 학생들을 위한 놀이마당이었다.

체험전을 찾은 학생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기호로 이루어진 수학 공식 대신에 깡통을 만지고 골프를 치면서 수학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비눗방울을 이용해 거리의 합이 최소가 되는 ‘페르마의 점’을 만들어 보고, 공을 굴려 가장 빠른 길인 사이클로이드를 찾았다.

전시회를 주최한 수학사랑 고민호 교사(성산중·수학)는 “수학체험전은 다양한 교구와 장치들을 직접 만져보고 실험함으로써 자연 곳곳에 숨겨진 수학 원리를 스스로 깨닫는 전시회이다”라고 말했다. 수학사랑은 1993년 전국의 수학 교사 3백여명이 수학 대중화를 위해 만든 모임. 이 모임은 쉽고 재미있는 수학 교육 방법론을 연구하고, 교구를 개발하고 있다. 연구 성과물을 <수학사랑>이라는 월간지를 통해 전국 수학 교사들에게 알리고, 수학체험전을 통해 학생들과 수학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있다. 또 매년 수학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를 열어 더 나은 수학 교육법을 나누고 실천한다. “교육정책 바꿔야 수학이 산다”

수학사랑의 노력에 힘입어 분필과 칠판으로만 이루어지던 학교 수학 수업에는 최근 들어 주사위·깡통 등 다양한 교구들이 등장했다. 통계를 배우는 시간에는 학생들이 직접 설문조사에 나섬으로써 스스로 통계 원리를 터득하고 통계의 필요성을 배우기도 한다.

대학 교수들도 ‘쉽고 재미있는 수학 교육’ 보급에 나섰다. 숭실대학 수학과 교수(김인숙 박은순 정달영 황선욱)들은 초등학교 방과후 시간을 이용해 ‘창의력 수학 교실’을 열고 초등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클립·칠교판·띠종이 등 교구를 이용해 수학의 원리를 쉽게 이해시키는 수업이다.

이 교실을 이끌고 있는 정달영 교수는 “정사각형을 일곱 조각으로 낸 칠교판을 이용해 여러 가지 도형을 맞춰 보게 함으로써 창의적 사고력을 높일 수 있다. 또 성냥개비 뺏기 놀이를 하면서 수학 원리를 터득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학생과 학부모의 반응도 좋은 편이어서 방학인데도 서울 대림초등학교에서 매일 90분씩 수업하고 있다.

정규 수학 수업을 수준 별로 나누어서 진행하는 학교도 있다. 서울 동원초등학교는 1997년부터 4~6학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수준별 수학 이동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아이들의 수학 수준에 따라 여섯 그룹으로 나누어 ‘눈높이’ 수업을 한다.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이 모이기 때문에 교사는 모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강의를 진행할 수 있다.

이처럼 수학 교육 방법이 조금씩 달라짐에 따라 ‘수학은 지겹고 딱딱한 암기 과목’이라는 오명은 조금씩 씻기고 있다. 그러나 입시 위주의 파행적인 수학 수업과, 학생들의 지적 능력과는 상관없는 교과과정을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정책이 고수되는 한, 일부 교사와 학생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상급 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원리와 생활 응용 수학 수업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장 훈 교사(휘경공고·수학)는 “짜인 틀 안에서 교사들이 움직일 수 있는 폭은 제한되어 있다. 수학 교육이 바로 이루어지려면 왜곡된 교육정책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