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게이트’ 개봉 박두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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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3개월 전부터 내사…권력유착설 등 5대 의혹 추적
대우건설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그야말로 번개처럼 진행되었다. 서울지검 특수2부(채동욱 부장검사)는 1월7일 남상국 전 사장을, 그 다음날에는 서울 여의도 트럼프월드의 건축 시행사인 하이테크개발 회장 박문수씨를 긴급 체포했다. 준비된 검찰의, 준비된 행보였다. 검찰은 3개월 전부터 대우건설을 은밀하게 내사해 왔다.

하지만 검찰이 ‘대우건설 파일’을 챙긴 지는 꽤 되었다. 김대중 정권 때부터다. 위장 계열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 동교동 실세와의 유착 의혹 등 내용도 다양했다. 이런 소문의 중심에는 항상 남상국 전 사장이 있었지만 그는 DJ 정권 내내 건재했다.

서울 여의도 트럼프월드와 관련한 구체적인 자료를 대검 중수부가 입수한 것도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지난해 초쯤이다. 트럼프월드가 들어선 부지를 석탄공사가 매각한 것과 관련한 각종 서류, 서울보증보험이 박씨의 부인이자 하이테크개발 사장인 유 아무개씨에게 이행보증보험증권 2백17억원을 발행한 과정 등이 담긴 방대한 자료였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정권이 이미 집권 초기, ‘김대중 정권의 의혹’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같은 배경 때문에 하필 왜 이때 대검이 서울지검에 자료를 내려보내 전격적으로 대우건설을 수사하는 것일까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검찰은 특별한 배경은 없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정치권에서는 '대우건설 파일'이 갖고 있는 폭발력에 주목한다. 그동안 구여권 핵심인 동교동계와 한나라당이 대우건설과 남다른 관계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우건설 사건은 이른바 ‘게이트’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자금·로비·정권 실세 등 낯익은 게이트 용어들이 수사 과정에 등장했다. 이미 대우건설이 3백억원대에 이르는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회사가 2000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 말까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채권단이나 정부기관의 감독 소홀·유착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는 것도 시간 문제다. 대우건설은 실제 금액보다 부풀려 공사비를 발주해 차액을 빼돌리는 ‘오버 발주’ 수법과 수주한 공사를 위장 계열사에 넘겨주고 돈을 상납받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서는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나아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검찰은 일단 대선 자금과 관련한 부분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기회에 그동안 대우건설과 관련해 나돌았던 숱한 소문을 제대로 파헤쳐 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대우건설과 관련해 제기되는 의혹은 크게 다섯 가지이다. 검찰이 우선 주목하는 것은 대우건설이 시공한 서울 여의도 트럼프월드이다. 트럼프월드 건축 시행사인 하이테크개발 박문수 회장이 동교동계 출신이어서 유착설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동교동에 자주 드나들어 ‘비서’라고 불렸던 박회장은 권노갑·한화갑·이수동 씨 등 동교동 1세대 인사들과 잘 안다.(<시사저널> 제656호·2002년 5월23일자 참조)
박문수 회장은 전남 신안 출신으로 동국대를 졸업했는데 사업에 실패해 빚더미에 앉은 상태에서 자신의 돈을 한푼도 들이지 않고 트럼프월드 사업을 벌여 1백18억원을 벌었다. 박회장은 “외국에서는 사업을 해서 돈을 벌면 영웅 대우를 하는데, 우리 나라는 죄인 취급을 한다”라며 분개했지만, 건설업계에서는 박회장 뒤에 권노갑씨가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박회장은 “권씨는 만난 적도 많지 않다. 유착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회장은 “권씨가 운영했던 ‘마포사무실’에 5백만원짜리 최신식 복사기를 사준 적은 있다”라고 밝혔다.

박회장은 대우 출신인 박정훈 전 민주당 의원(대한화재보험협회 이사장)의 소개로 대우건설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밝혀졌다. 박이사장은 “차라리 잘 되었다. 그동안 트럼프월드와 관련해 투서나 소문이 많았는데, 검찰 조사를 통해 아무런 의혹이 없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회장이 운영하던 회사에는 또 박양수 전 열린우리당 의원의 부인이 한때 이사로 올라 있었는데, 박 전 의원은 “알고 지내던 박회장이 이름만 빌려 달라고 해 빌려주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트럼프월드 사업과 관련해 동교동 인사들의 이름이 여럿 등장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고 보고 진실을 캐고 있다.

두 번째 의혹은 1998년 12월 대우건설이 에덴건설(사장 윤일정)에 대규모 공사를 수의 계약으로 발주한 배경이다. 김대중 정권 초기 급성장한 에덴건설 윤사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민주당 김홍일 의원과 여러 차례 국내외 여행을 함께 한 사실이 드러나 주목되었다. 그는 대우건설과 처음 인연을 맺으면서 경남 통영시 광도면 ‘안정 국가 산업단지 부지 조성 토목 공사’ 일부를 수의 계약으로 따냈다. 사업 규모가 5백20억원에 이르는 큰 사업이다. (<시사저널> 제627호 2001년 11월1일자 참조)

이밖에 대우건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강원랜드의 시공을 거의 도맡아 한 것, 남상국 전 사장이 아태재단 이사였던 이수동씨와 식사를 하는 등 아태재단 인사들과 잦은 만남을 가졌던 배경에 대해서도 의혹이 있다.

대우건설에 대한 검찰 수사의 한 귀착지가 한나라당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대우건설이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쪽에 이른바 ‘올인’을 했다는 소문에 주목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장·부사장 등 대우건설의 핵심 경영진 5명이 모두 경기고 출신이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대우건설은 경기고 아지트였다. 지난 대선 때 대우건설이 이씨 쪽에 성의를 표시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도 ‘대우건설 게이트’에서 자유롭지는 않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대철 의원이 지난해 4월쯤 남상국 전 사장으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이 한 예다. 이회창씨 쪽에 ‘올인’했던 대우건설이 노무현 정권이 등장하자 다급하게 새로운 라인을 찾아 나섰다는 반증이다. 검찰 주변에는 노대통령의 386 측근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지난해 중반 재계에는 남상국 전 사장과 노대통령의 386 측근인 ㅇ씨가 만났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대우건설 사장이 남씨에서 박세흠씨로 바뀌는 과정에서 여권 내에서는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남씨는 사장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내부 인사는 사장이 되기 위해, 정권 실세들을 상대로 맹렬 로비를 펼치는 등 여러 라인이 움직였다. 여권의 한 소식통은 “경기고 출신이 아닌 비주류 인사가 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점수를 따면서 부산고 출신 박세흠씨가 사장이 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한 부산파 핵심 인사는 대우건설의 경영권과 관련한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짰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식이든 정권의 입김이 작용해 박세흠 사장 체제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워크아웃 상태였던 대우건설의 경영 난맥상과 정치권 로비 실상, 주인 없는 회사를 놓고 힘있는 자들이 얽히고 설켰던 ‘대우건설 게이트’의 실체가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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