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대학의 ‘화합’ 교류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1999.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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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2백20명 1년간 교환… 영호남 갈등 해소에 도움
광주시 용봉동에 자리잡은 전남대 학생기숙사 5동 301호. 이 방에는 여대생 4명이 백일 넘게 한솥밥을 먹으며 생활하고 있다. 책상 4개와 2층 침대가 자리잡은 아담한 방은 여느 대학교 기숙사와 다름 없지만, 4명이 함께 모이는 저녁 시간이 되면 301호에는 이질적인 대구와 광주의 사투리가 서로 섞여 웃음꽃이 피어난다. 정미선(22·전남대 사회학과)·정국화(21·전남대 문헌정보학과) 양은 전라도 ‘토종’이지만, 다른 두 사람은 작년까지만 해도 광주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는 경상도 ‘가시내’들이다.

최순천양(22·경북대 심리학과)은 전남대에 1년 동안 교류 학생으로 유학온 밝고 명랑한 대학생. 그는 “4년의 대학 생활을 꼭 한 학교에서 하라는 법은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교류 학생들, 수업료·기숙사비 면제

정선희양(22·경북대 심리학과)은 상냥한 ‘울산 아가씨’이다. 그는 “4학년이어서 1학기만 생활하고 가야 한다는 게 무척 아쉽다. 광주 유학은 젊은 시절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몰랐던 지역에 대해 이해가 깊어지는 좋은 경험이다”라고 말을 이어받았다. 두 여학생이 낯설고 물선 광주에 살게 된 것은 지난 3월. 대구와 광주를 대표하는 국립 대학인 경북대와 전남대가 학생 교류를 추진키로 하고, 각각 백여명을 선발해 1년 동안의 유학 생활에 들어가면서부터이다. 2백20여 학생이 학교를 바꿔 1년간 공부하는 학생 교류는 한국의 대학 역사상 처음 있는 ‘사건’이다.

3개월이 지난 지금은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지만, 사실 이들 4명이 마음을 터놓게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방을 배치받았는데 미선이가 아무 말도 않고 그냥 자기 공부만 하고 있었다. 솔직히 낯설고 무서워 나도 아무 말 없이 며칠을 보냈다.” 마음 고생이 심했다는 최순천양의 말이다.

전남대에 온 경북대생들은 전남대 캠퍼스 내에서 ‘튀는’ 경상도 발음을 의식적으로 자제하느라 신경을 쓰기도 했고, 전라도 사투리를 알아듣느라 고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미선양은 최순천양이 부러운 듯 “지금 4학년만 아니라면 내년에 경북대 교류 학생으로 지원하고 싶다”라며 영남 지역 문화에 호기심을 나타냈다.

전남대 여학생 기숙사 301호의 ‘조용한 혁명’은 전남대 노성만 총장과 경북대 박찬석 총장이 지난해 8월 대학총장 회의 자리에서 만나 약속하면서 시작되었다. 규모가 비슷한 두 대학이 학생 교류를 통해 젊은이들의 경험 폭을 넓히고 해묵은 지역 감정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자는 취지였다. 노성만 총장은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난 뒤 대학생들이 서로 지역의 대학을 바꿔 공부하면서 전쟁으로 얼룩진 갈등의 골을 메웠다. 전남대·경북대 학생 교류가 수십년 진행되다 보면, 영호남 교류니 화합이니 하는 말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라며 학생 교류의 성과에 큰 기대를 걸었다.

두 대학의 교류 학생들은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면제받는다. 상대 대학에서 취득한 학점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다 보니 두 대학 모두에서 지원자가 몰렸다. 경북대 박총장은 경북대에 다니는 자신의 아들까지 교류 학생으로 광주에 보냈다. 지난 3월 1일 전남대와 경북대의 학교 버스를 타고 교류 학생 2백20명이 도착했고, 두 대학 학생회가 직접 나서서 짐을 날랐다. 유학생들이 배치된 기숙사 방에는 전공이 같거나 비슷한 학과 재학생들이 2명씩 생활하도록 배려되었다.

경북대 출신으로 전남대 수의학과에서 재직하는 김성호 교수는 “젊은이들이 서로 몰랐던 지역을 체험하고 함께 생활하는 학생 교류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이다. 전남대에 유학온 고향 후배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광주를 이해하라고 자주 주문하고 있다”라며 학생 교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학부모들 역시 흔쾌히 자녀들을 유학보내는 데 동의했다. 경북대에서 생활하는 조서현양(22·전남대 국문과)의 어머니 정옥선씨(48·목포시 연산동)는 “남편도 고향이 목포지만 경북대를 졸업했다. 대학을 바꿔 공부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본다”라며 학생 교류를 반겼다.

조선대-영남대·목포대-창원대도 추진

전남대와 경북대 관계자들은 학생 교류 3개월이 지난 지금, 상호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두려움이나 영·호남 교류라는 식상한 말이 줄어들 정도로 양 대학 학생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숙사 수용 능력 등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교류 인원을 더 늘리고, 교류 대상을 교수와 교직원까지로 확대할 예정이다. 경북대 학생과 이하영씨는 “양쪽 대학에서 1학기만 신청했던 학생 가운데 39명이 연장 신청하는 등 학생들이 만족해 하고 있다. 기숙사 시설이 확충되는 대로 전남대와 협의해 교류 학생 수를 더 늘릴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두 대학이 거둔 성과를 높이 평가해 현재 조선대와 영남대, 목포대와 창원대도 학생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조선대와 영남대는 지난 5월 광주 5·18 묘지 공동 참배와 마라톤 대회 등으로 상호 신뢰를 쌓았고, 6월14일부터 1주일 동안 영호남 동서문화교류전을 열고 있다. 그러나 ‘영호남 교류’라는 명분에 밀려 기숙사 생활을 원하는 재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데 대한 불평도 있고, 교수들 역시 학점에 인색하기 힘들어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한 두 지역의 문화를 체험하느라 수업 결손이 잦고, ‘영호남 교류’만을 강조하는 언론의 지나친 관심이 학생들에게 역효과를 줄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국내 최초로 1년 동안 학교를 바꾸어 수학하는 전남대·경북대의 교류 사업은 영·호남 상호 이해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학 캠퍼스를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스스럼없이 섞이는 또 하나의 ‘화개장터’로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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