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계획(작계) 5027’ , 북한 소멸로 계획 수정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8.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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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연합군, 남침 때 북한 소멸 작전 계획 수립
북한군이 휴전선을 넘어 남침할 경우를 대비해서 작성한 한·미 연합군의 ‘작전 계획(작계) 5027’이 최근 개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작전 계획 5027-98’이라는 이름이 붙은 새 작계는 인민군이 남침하면, 이를 저지한 다음 압록·두만 강까지 반격해 실지(失地)를 회복하고 민족 최대 비원(悲願)인 남북 통일을 이룩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러한 작전계획 개정은 국내 언론에 일절 보도되지 않았으나, 외신과 북한 반응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작전 계획은 군사 기밀이어서 내용이 절대로 공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근년 들어 작계 5027 존재 사실이 알려지면서, 몇몇 언론이 작계 5027을 거론한 바 있다. 작계는 한반도와 주변국 상황 변화 등을 반영해 수년에 한번씩 개정되는데, 이전 작계인 ‘작계 5027-95’까지는 반격 한계선을 ‘원산·청천강 선’으로 정해 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절대 다수의 한국군 장교들은 “북한이 남침해 이 땅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의 전쟁 목표는 완전한 남북 통일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해 왔다. 반면 전시 작전권을 가진 미군은 청천강 너머로 진격할 경우, 공업 지대인 만주 근처까지 미군이 올라오는 것을 두려워한 중국이 인민해방군(중국군)을 참전시킴으로써 제2의 6·25처럼 국제전으로 번질 수 있다며, 청천강·원산 선까지의 진격만을 고집해 왔다고 한다.

이렇게 될 경우 북한 정권은 평안북도와 함경남·북도로 축소된 영토를 기반으로 여전히 존재할 수 있어 남북 대치가 계속된다. 중국은 북한 정권이 축소된 영토에서 중국과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한국 사이를 분리하는 ‘완충 지대’로 기능하도록 지원할 것이 분명해, 한민족은 두 차례나 민족 상잔을 치르고도 외세에 의한 분단이 계속되는 상황이 된다. 때문에 한국군은 미군측 주장이 ‘신라 통일’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압록·두만 강까지의 실지 회복을 주장해 왔다.

작계 5027 개정은 미국의 세계 전략 변화 의미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면 북한 정권을 소멸시킨다는 취지로 작계가 개정되었음을 처음 알린 이는 하와이에 거주하며 각종 매체에 기고하는 전 <뉴욕 타임스> 기자 리처드 핼로런 씨였다. 핼로런 씨는 지난 11월14일 뉴욕 대학의 ‘전쟁·평화·뉴스 미디어 센터’가 발행하는 인터넷 자료 서비스 <글로벌 비트>에 보낸 기고문에서 ‘새로운 작전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면 김정일 통치는 중단되고 북한 정부는 소멸할 것이다. 북한 전체는 한국 정부의 통제 에 놓일 것이다’라고 밝혀, 압록·두만 강까지 진격하는 것으로 작계가 개정되었음을 밝혔다.

그는 또 ‘새 작계가 실행되면 중국 인민해방군과 통일 한국군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경계하는 상황이 된다. 따라서 중국은 새 작계가 실행되는 상황에 반대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핼로런 씨 원문은 을 통해 볼 수 있다. 이 기사에서 핼로런 씨는 작전 계획(Operation Plan)을 전쟁 계획(War Plan)으로 잘못 표현했다).

핼로런 씨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군 장교 말을 인용해 ‘북한의 남침은, 북한의 경제 붕괴로 인민군까지 희생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인민군들이 자포 자기 심정으로 일으킬 수 있다. 미군은 이러한 상황을 염려해 새로운 작전 계획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 행정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제네바 핵합의를 지키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본다며, 북한이 새로운 지하 시설(금창리를 언급하는 듯)에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미국은 제네바 핵합의를 무력화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전쟁 도발 때 북한 소멸’ 쪽으로 작계를 바꾸는 데 동의한 것은, 미국의 세계 전략이 변했음을 뜻한다. 동유럽과 소련이 붕괴해 냉전 체제가 종식된 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제3세계가 핵·화학 무기·미사일 따위 대량 학살 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매우 염려해 왔다. 이러한 나라들이 지역 패권을 추구하는 지역 전쟁을 일으켜 미국의 세계 지배 구도를 무너뜨리거나, 미국을 상대로 테러 행위를 하는 것을 극력 저지해 왔다.

이러한 구도에서 미국이 참여한 대표적인 전쟁이 90년 걸프전이었다. 이라크가 지역 패권을 목적으로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은 다국적군을 동원해 이라크군을 격멸하고 쿠웨이트를 해방시켰다. 그러나 자기 국경선 안으로 쫓겨난 이라크는 후세인 지배 체제를 유지하며 미국에 적대적인 행위를 거듭했다. 후세인 체제를 살려둔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미국은 북한이 전쟁을 도발하면 북한 체제를 소멸시키고 한반도를 한국이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운 것이다.

북한과 이라크는 핵·화학 무기·미사일을 개발해 온 공통점이 있다. 미국은, 이라크와 북한 등 6개국을 미국(인)을 상대로 한 테러를 지원하는 나라로 분류해 단호하게 대처해 왔다. 케냐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자, 미국은 8월20일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에 있는 화학 무기 제조소와 테러 훈련 시설에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북한 간에 제네바 핵합의가 이루어지기 직전인 94년 미국 국방부는 영변에 있는 북한 핵시설 폭격을 깊이 검토했다. 그러나 북한이 방사포와 스커드B 미사일로 서울과 한국 군사 시설에 보복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보류했었다. 북한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수단·이라크와는 ‘격’이 달랐다. 유사시 한국을 볼모로 잡을 수 있는 데다, 핵과 화학 탄두 장착이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로 중무장하고 있어 미국도 북한을 만만하게 상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면 ‘후환’이 남지 않도록 북한을 소멸시켜야 한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북한이 도발해 전쟁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새로운 작계가 전개되었을 때 가장 염려되는 것은 중국이 ‘오해’해 참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미국과 한국은 중국에 대한 외교를 강화해 오해를 줄여 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해병대, 북한 상륙 작전 감행”

핼로런 씨는 북한군의 공격을 격멸하기 위한 한·미 연합군의 첫 번째 타격 대상은 서울을 사정권 안에 두고 있는 240㎜ 방사포 2백여 문과 각종 포 1만6백여 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이러한 포들을 최전방 산속 지하 갱도 안에 설치해 놓았다가 유사시 이를 꺼내 사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핼로런 씨는 미국이 첩보 위성과 정찰기를 통해 이 갱도 포대의 위치를 전부 파악하고 있어, 이 포들은 밖으로 나오는 순간 모두 폭격 대상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군이 남침할 경우 미국은 한·미 상호 방위 조약에 따라 증원군을 파견하는데, 첫 번째 파견 부대는 태평양 공군 사령부의 지휘를 받는 5공군(일본 주둔)·11공군(알래스카)·13공군(괌), 그리고 태평양 해군 사령부의 지휘를 받는 7함대(일본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함)가 될 것이다.

지상 전투 병력으로는 오키나와에 있는 해병대 3사단과 미국 시애틀에 있는 육군 2사단 3여단이 가장 먼저 투입되고, 이어 태평양 육군사령부의 지휘를 받는 24사단(하와이)과 1군단(포트 루이스)·3군단(텍사스)의 한국 이동이 예상된다. 전쟁이 발발한 뒤 미국이 이러한 증원군을 파견하는 데는 최소한 20∼30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한국 전역을 전쟁 지역화해 미국이 증원군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을 만들려고 한다. 이를 위해 10만명이 넘는 특수 부대(과거의 특수 8군단. 지금은 교도대 지도국)를 양성하고 있는데, 이들은 AN2기나 고속정을 이용해 한국 전역으로 쳐들어 올 전망이다. 핼로런 씨는 새로운 작계에 북한의 특수전 기도는 물론이고 북한 난민이 대거 휴전선을 넘어오는 상황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국이 해병대를 동원해 북한 상륙 작전을 감행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대중 정부 ‘북한 급변 대책’ 세워야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북한 급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들어 햇볕 정책이 추진되고 각종 군내 사건·사고가 잇따르면서 북한 급변 대책에 대한 논의가 사그라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군의 오랜 비원인 ‘남북 통일’을 작계 5027에 반영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금창리 지하 시설을 사찰하지 못하게 되면 제네바 핵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필연적으로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높일 수밖에 없다.

평화 통일은 가장 좋은 통일 방안이다. 그러나 평화 통일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군사 대치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대치 속에서 북한은 이판 새판으로 선제 타격을 시도하고, 이에 따라 북한 소멸을 목표로 한 작계 5027이 전개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한 북한 소식통은 “평화 통일 과정은 긴장의 연속인데 오히려 국민 의식은 해이해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은 ‘대북 정경 분리 정책’일 뿐인데, 적지 않은 국민이 이 정책이 시행된 후 북한군은 저항도 못하고 무너질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되었다. 이런 국민이 바로 93년 북한이 ‘서울 불바다’ 위협을 했을 때 라면 박스를 사들고 피난을 생각하던 그때의 국민이다. 북한군도 구식 무기로 무장하고 있지만, 한국군 역시 수명 연한이 지나서 오발 사고를 일으키는 나이키 미사일을 운영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작계 개정이 대북 관계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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