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삿속 의심받는 겸임교수제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1999.04.0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부 대학, 홍보·인건비 절감 수단으로 활용… 인기·비인기 학과 불균형 심화시킬 수도
유인촌·장미희·최종원·김희애·최주봉·전무송 씨…. 이들은 잘 알려진 연극인·영화배우·탤런트 들이다. 그러나 최근 이들에게 새로운 직책이 붙었다. ‘대학 교수’가 바로 그것이다.

유인촌씨는 중앙대에서, 장미희씨는 명지전문대에서, 최종원씨는 백제예술대에서 각각 연극·영화 관련 강의를 맡고 있다. 오정해(우석대)·김덕수(동국대)·이정식(김포대) 씨 등 음악인들도 대학에서 음악 관련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언론 분야 전문가들의 대학 진출도 활발하다. KBS 영상제작단 나형수 사장은 순천향대에 나가고, KBS1에서 <아침마당>을 진행하는 이금희씨와 MBC의 이인용씨는 숙명여대에 나간다. MBC 앵커였던 백지연씨는 한양대에서,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중견 언론인 이성춘씨는 고려대에서 매스커뮤니케이션 관련 강의를 맡게 되었다.

이들 유명인들이 대학 강단에 설 수 있는 것은 ‘겸임교수제’에 의해서이다. 겸임교수제는 교육 당국이 산·학 협동을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실시한 제도다.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제7조)에 따르면, 학교의 장은 법에 의해 겸임 교원을 임용할 수 있다. 겸임 교원은 일단 대학 교원 자격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으로서, 대학에서 연구 또는 교육하는 내용과 본직의 직무 내용이 유사하고, 그와 관련된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분야는 무제한. 겸임 교수는 보통 한 학기 또는 한 학년 강의를 맡는다.

탤런트·언론인 등 1천8백명 대학 교수로 활동

겸임교수제에 대한 이제까지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양상이 달라졌다. 겸임교수제가 당초 도입 취지와 달리, 단순히 대학을 홍보하거나 인건비를 줄이는 수단, 또는 교수 확보율을 높이는 방편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이 제도가 자칫 ‘학문의 위기’를 부를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겸임 교수 대폭 증가와, 신규 전임 교수 대폭 축소가 그 근거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각 대학에 겸임 교수로 임용된 전문직 종사자는 1천8백60명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홍익대의 경우 지난해 2학기 신규 채용 교원 10명 중 8명이 겸임 교수였다. 숙명여대가 올해 겸임 교수로 위촉한 전문가는 이인용·이금희 씨를 비롯해 모두 37명, 경기대에는 전무송씨를 비롯해 겸임 교수가 모두 50여 명에 이른다.

반면 대학이 새로 충원된 전임 이상 정식 교원 수는 IMF 체제 이후 급격히 줄었다. 경희대는 98학년도에 교수 20여 명을 새로 뽑을 계획이었으나 15명으로 줄였고, 그나마도 전임은 5~6명 선으로 줄였다. 애초 19명을 모집한다고 교수 초빙 광고를 냈던 광주대는 모집 규모를 줄여 9명만 뽑았다.

이같은 두 가지 상반된 현상은 한 가지 추론을 가능케 한다. 즉, 대학들이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의도에서 전임이 들어가야 할 자리를 겸임 교수로 채우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다. 겸임 교수에 대한 대우는 학교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시간 강사 수준의 강의료나 교통비를 지급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렇지만 겸임 교수(겸임 교원)는 96년 관계 법령이 바뀌면서 정식 ‘법정 교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르면, 겸임 교수 2명은 전임 교수 1명에 해당한다. 최근 대학에서 겸임 교수가 급격히 불어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겸임교수제는 심하게 말하면 옷만 갈아 입은 ‘값싼’ 인력 충원 방식인 셈이다.

유명 인사 위주로 겸임 교수를 위촉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인사들의 유명세를 이용해 학생을 유치하려는 학교 당국의 얄팍한 장삿속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대학간 학생 유치 경쟁은 이미 IMF 체제가 본격화하기 전부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편·입학 제도가 확대 시행되면서 학생들의 대학간 이동이 자유로워지자, 일부 대학에서는 해마다 학생들이 다른 대학으로 빠져나가는 통에 골머리를 앓아 왔다. 미국에선 순기능, 한국에선 역기능?

IMF 체제는 이같은 상황에 기름을 부었다. 이같은 진통을 겪으면서 나름으로 찾아낸 대안이 바로 유명 인사를 앞세운 겸임교수제라는 것이다.

학계 일각, 특히 인문학계에서는 겸임교수제가 최근 시행되고 있는 학부제와 함께 대학 교육에 총체적 부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학부제 도입 이후 이른바 인기 학과와 비인기 학과가 나뉘어 인기 학과에만 사람이 몰리는 등 ‘학문간 불균형’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유명인 중심의 겸임교수제가 이같은 불균형을 더 심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겸임교수제는 현장 경험을 전수하고 고급 전문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여전히 순기능을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본보기는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특히 언론학 분야에서, 신문사·방송사 현직 간부들의 대학 진출이 보편화해 있다. 이들은 ‘전임 교수를 보조하는 교수’라는 뜻을 지닌 ‘어드정트 프로페서(adjunct professor)’로 불린다. 대개 신문사 중역이나 편집국장 등 고급 간부인 이들은, 현직을 유지하면서 직업 현장에서 익히고 얻은 ‘가장 새로운’ 지식을 관련 학과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미국 미주리 대학 교수로서 최근 아주대 ‘석좌 교수’로 초빙된 장원호 교수(신문방송학)는 “미국에서는 겸임 교수가 대체로 무보수로 강의를 맡는다. 최근 이 제도는 경영학이나 법학·의학 분야로도 널리 퍼져 있다”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속담이 있듯이, 한국의 겸임교수제는 이름만 같을 뿐이지 실제 내용이나 구실 면에서 미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의 제도가 말 그대로 강단 교육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면, 한국의 제도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부족한 부분을 가리기 위한 편법이 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