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의 바다’에 빠진 한국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9.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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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양의 섹스 비디오, 인터넷 통해 무한정 유통… 인권 침해 심각, 병적 관음증 증폭
‘개방과 공유.’ 인터넷의 모토다. 인터넷에 뜨는 가상 공간에는 모든 정보가 올라오고 원하는 사람은 모두가 이 정보를 공유한다. 금기라는 것이 없다. 누구나 자유롭게 표현하고 정보를 얻는다. 인습과 편견에 구애되지 않아도 된다. 현행법이 금하는 행위도 서슴없이 벌어진다. 제재나 처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철저한 익명성.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속성을 조금만 이해하면 자기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어떤 행위도 저지를 수 있다.

네티즌들은 현실의 법과 관습이 가상 공간에 침투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표현의 자유나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극력 반대한다. 인터넷이 가진 최대 미덕인 개방과 공유라는 테제는 가상 공간의 헌법 제1조이다. 하지만 인간이 창조한 것이 모두 그렇듯이 인터넷도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전형적인 사례가 ㅇ양의 성행위를 담은 비디오 테이프 유통이다.

ㅇ양의 섹스 테이프는 ‘단군 이후 가장 빨리 유통된 물건’이 되었다. ㅇ양이 공인이 되기 전인 대학 2학년 때 남자 친구와 함께 한 성행위를 ENG 카메라를 가지고 각각 흑백과 컬러로 24분과 15분씩 찍은 이 테이프는 <쉬리>의 인기를 비웃으며 엄청난 속도로 유통되고 있다. 미스 코리아 진 출신 탤런트가 벌인 성행위여서 ‘흥행’요소는 충분하다. 하지만 이처럼 빨리 유통될 수 있었던 것은 발달된 컴퓨터 기술 탓이다.

이 비디오 테이프는 컴퓨터 동영상 파일로 바뀌면서 날개 돋친 듯이 퍼졌다. 동영상 파일은 200 메가바이트와 400 메가바이트 두 가지로 나뉘어 콤팩트 디스크(CD)에 담겼다. CD에 담긴 파일은 인터넷 뉴스 그룹이나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거래되기 시작했다. 은밀할 수밖에 없는 이 거래는, 익명성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가상 공간의 특성 때문에 원활하게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ㅇ양의 섹스 파일이 있다는 사실이 빛의 속도로 전파되었다.

동영상의 일부분을 보여준 뒤 관심이 있으면 전자 우편으로 연락하라고 E메일 주소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CD를 팔고 사는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서로가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 돈과 CD를 교환한다. 파일이 커서 전자 우편으로 거래하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유통 초기 CD 한 장에 백만원을 호가했다. 이 파일은 시중에 많이 유통되면서 지금은 3만∼5만 원까지 떨어졌다. 지난 3월17일 인터넷 뉴스그룹에서 photo라는 검색어로 찾은 하위 그룹에는 1천1백90여 개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 대부분이 ㅇ양의 섹스 비디오를 찾는 글이었다.

여성 배설 장면 인터넷에 공개 ‘사이버 테러’

인터넷이 유통 채널 구실을 했다면 광고·선전은 스포츠 신문이 대행했다. 광고료 한푼 받지 않고 1면 통단으로 ㅇ양의 섹스 비디오에 관한 기사와 야하기 그지없는 사진이 연이어 실렸다. 그 이상의 광고 효과가 없었다. 20∼30대 남성이 주독자층인 스포츠 신문들이 앞다투어 광고를 해주니 수요가 폭증할 수밖에 없다.

인기가 치솟자 KGirls라는 홈페이지가 마련되었다. 외국 서버를 빌려 인터넷에 개설한 이 홈페이지에서는 ㅇ양의 섹스 파일뿐만 아니라 <빨간 마후라>, 인기 탤런트 이 아무개씨 포르노 테이프, 한국 여대생이라고 자처하는 여자의 성행위 장면을 담은 파일이 거래되고 있다. 한 달치 50달러나 6개월치 80달러를 내면 회원 아이디(ID)와 비밀 번호를 받는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인기 연예인들의 은밀한 장면을 얼마든지 엿볼 수 있다.

ㅇ양의 섹스 비디오가 인기를 끌자 유사품도 등장했다. 컴퓨터 합성 기술을 이용해 만든 인기 탤런트의 포르노 사진과 테이프가 나돌고 있다. 인기 탤런트 ㄱ·ㅊ·ㅎ 씨의 성행위를 담은 테이프가 있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외국 포르노 배우의 몸에 국내 인기 탤런트의 얼굴을 합성한 누드 사진은 쉽게 구할 수 있다.

가상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생활 침해는 인기인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ㅇ양의 섹스 비디오와 함께, 한 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4학년 ㅈ씨가 화장실에서 소변 보는 장면을 담은 50 메가바이트 동영상 파일이 최고 인기를 끌며 유통되고 있다. 뒷모습만 잡혀서 비디오에 나온 인물이 자막에서 밝힌 인물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이 파일은 인터넷을 통해 ㅇ양의 비디오 못지 않게 빨리 그리고 널리 유통되고 있다. 누군가 ㅈ씨에게 앙심을 품고 저지른 테러라고 여겨진다. 인터넷이 가진 미덕인 개방과 공유가 사이버 테러에 이용당한 사례이다. 섹스 비디오 유통업자 적발 힘들어

인권과 초상권 침해라는 명백한 범법 행위가 너무나 쉽게 벌어지는 것은 인터넷이라는 확실한 유통 채널이 있기 때문이다. 검찰과 경찰이 보다 못해 이 테이프를 유통시킨 범죄자들을 색출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가상 공간에 구축된 유통망을 검찰과 경찰이 나서서 얼마나 적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컴퓨터 네트워크 기술로는 이같은 범죄 행위를 적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함정 수사를 펴거나 뉴스그룹을 열람해 CD를 교환하는 현장을 덮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또 CD를 무료로 얻은 이가 회사 컴퓨터 네트워크 게시판에 파일을 올려놓았다면, 이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 따라서 회사 안에서 직원 한 사람이 갖고 있으면 그 회사 구성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국내 시스템 통합(SI) 업체에 다니는 한 직원은 “회사 게시판에 올라 있는 것을 다운로드(download·컴퓨터 자료를 전송받아 저장함)받았다. 누가 올려놓았는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할리우드 최고의 섹스 스타 파멜라 앤더슨의 성행위 테이프가 나돌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성 문제에 개방적인 미국 사회에서는 촌극으로 끝났다. 앤더슨은 테이프를 영리 목적에 이용한 업체에 거액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걸어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한국의 파멜라 앤더슨은 한국 땅에서 추방되어 미국에 피신해 있다. 유교 사상이 아직 뿌리 깊은 한국 사회는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어떻게 저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가’라며 ㅇ양을 손가락질하고 있다. 하지만 한 네티즌은 최근 PC통신에 이런 글을 띄웠다. ‘그 손가락은 한 여성의 실수를 흥밋거리로 유통시켜 인권과 사생활을 깔아뭉갠 우리의 의식 구조에 돌려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 저변에 깔려 있으나 유교 사상에 눌려 있던 관음증이 인터넷이라는 해방 공간을 만나면서 병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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