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의 외침 “5·18 사이비는 가라”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1999.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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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들 잡음으로 항쟁 정신 얼룩…19주년 행사도 ‘그들만의 잔치’
5·18 19주기를 맞은 지금, 광주에는 ‘민주화의 성지’를 찾는 참배객들이 늘고, 기념 행사도 다채롭게 열리고 있다. 특히 ‘5·18 민중항쟁 제19주년 기념행사위원회’(위원장 강신석)는 올해 행사 주제를 ‘민족과 함께, 다시 서는 5·18’ 로 정하고 추모제와 헌혈 행사뿐만 아니라 실업자들과 함께하는 문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경제난을 겪고 있는 사회 현실을 고려하는 신축성도 보이고 있다.

문제는 매년 5월만 되면 2억여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들이면서도 5·18 단체들이 주도하는 떠들썩한 기념 행사가 진행될 뿐, ‘5·18 민주화 운동’을 이루어냈던 광주 시민들의 참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데 있다. 더구나 오래 전부터 추진해온 ‘5·18 행사 전국화’가 별 진전이 없고 올해 들어서야 겨우 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5·18 관련 단체 회원들이 서울에서 5·18 희생자 19주기 기념 추모식을 열기로 했을 정도다. 5·18 항쟁이 이처럼 5·18 단체들만의 5·18 행사로 갇혀버린 데는 그동안 5월 항쟁의 주역이라고 자처하는 단체들이 해묵은 다툼과 분열을 거듭하면서 자초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최근 광주 지역에서는 초창기 5·18 단체 주역들을 중심으로 5·18 단체 내부 개혁과 단체 간부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지난 19년 동안 정당한 견제와 비판 없이 ‘성역’으로 치부되어 온 5·18 관련 단체들의 내분과 자리다툼을 해소하고, 그날의 ‘통합’과 ‘대동’ 정신으로 돌아가서 간부들의 이권 개입이나 비리 의혹들도 속속들이 밝혀 회원들의 정당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성역’이 되어버린 5·18 단체

현재 광주 지역에서 재단 이사진 구성을 둘러싸고 진통을 거듭하면서도 이사진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5·18 기념재단 창립회원들이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현 집행부의 개혁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는 5·18 구속자회 창립회원 들이 그런 노력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현 5·18 부상자회 간부들의 비리 의혹과 ‘가짜 부상자’ 척결을 검찰에 진정해 경찰 수사를 이끌어냈던 5·18 부상자회 회원 강상원씨(37) 등도 이러한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데 힘쓰고 있다. 이는 5·18 항쟁 당사자를 자처하는 일부 단체 간부와 회원 들이 5·18 정신을 훼손하는 행태를 더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항쟁 주역들의 문제의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광주 지역 5·18 관련 단체들의 내분과 자리다툼은 광주 시민들에게는 이제 식상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전세계에까지 ‘민주 성지’로 대접받는 광주의 치부라는 인식 때문에 그동안 눈감아 주던 지역 언론들조차 서슴없이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판할 정도다. 매년 수십만 참배객이 5·18 묘역을 찾는 민주 성지 광주의 표상이면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민주화운동이자 인권과 저항 정신의 상징인 5·18 항쟁의 주역 5·18 단체들이 왜 광주 시민들마저 외면하는 ‘왕따’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현재 활동하고 있는 5·18 단체의 부끄러운 이면을 보여주는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지난 5월4일 오전 광주 ‘5·18 자유공원’에서는 80년 5·18 구속자들이 수감되어 군사 재판을 받았던 상무대내 영창과 법정을 이전해 복원하는 준공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사단법인 5·18 민중항쟁 구속자회’(이사장 이무헌)가 주최하고 광주시가 주관해 영·호남 지역 학생들까지 동원된 의미 깊은 행사였지만, 정작 항쟁 당시 수감되고 고통을 당했던 5·18 구속자회 회원들은 그리 눈에 많이 띄지 않았다.

이에 대해 준공식에 참석했던 5·18 구속자회 창립회원은 “현재의 구속자회 집행부 가운데 80년에 영창 생활을 하고 법정에서 재판을 받은 사람들은 거의 없다. 영남 지역에서 온 어린 학생들이 지금 안내를 맡고 있는 그들에게 ‘당신은 얼마 동안 여기에서 고생을 했습니까’ 라고 물어보아도 그들은 해 줄 말이 없기 때문에 남에게 들은 말로 거짓말을 해야 할 상황이다”라고 개탄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려 한 이 회원은 또 “항쟁 주역들은 단체의 자리다툼에 질려 다 떨어져 나간 대신 구속자회 간부의 도움으로 2,3차 보상을 받은 얼굴도 모르는 신입 회원들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전횡을 일삼고 있다”라고 말했다.

5·18 단체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또 한 가지 예가 있다. 지난 2월26일 5·18 기념재단 창립회원들의 총회가 열릴 예정이던 광주 YMCA 강당에서는 5·18 관련자들 간에 욕설이 난무하며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날 창립회원 30여 명의 총회 진행을 저지하기 위해 몰려온 5·18 구속자·부상자회 회원 2백여 명이 회의장을 물리력으로 점거하자 결국 총회는 열리지 못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창립 회원들만이 난장판이 된 행사장에서 한숨을 쉬고 있었을 뿐이다. 자신을 창립회원이라고 밝힌 한 회원은 “광주 시민과 국민에게 부끄럽다. 재단의 재산이 올해 66억원으로 늘어나자 5·18 재단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존 이사진과 전국화를 요구하는 창립회원들 간에 다투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라며 ‘5월’이 도매금으로 매도당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5·18 관련 단체 간부들이 중심이 된 현재의 이사진이 5·18의 전국화·세계화를 위해 전국적 인물들로 이사진을 개편한다는 약속을 뒤집고 이사진 전원 유임을 결정하면서 비롯된 ‘5·18 기념재단 사태’는 몇번 협상을 했지만 아직까지도 원만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1월30일에는 5·18 구속자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회원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총회 소집을 요구하자 구속자회 집행부와 비상대책위 위원들 간에 격렬한 몸싸움과 욕설, 폭언이 오갔다. 이처럼 물리력을 앞세운 회의장 점거나 몸싸움은 이제 5·18 단체들의 행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5·18 단체의 현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 지난해 5·18 부상자회의 한 간부는 5·18 지원 부서를 방문해 회원들의 야유회에 광주시가 운영하는 버스를 대절해 달라고 요구했다. 해당 공무원이 난처해 하자, 이를 비아냥으로 해석한 부상자회 간부가 계장급 공무원의 빰을 때렸다. 참다 못한 주위 공무원들과 5·18 단체 회원들이 서로 몸싸움을 벌이고 사무실 집기를 부수는 추태로까지 발전한 이 사건은, 현재 5·18 관련 단체들의 내부 갈등은 물론 ‘민폐’와 ‘관폐’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일부 간부 이권 개입 의혹도

단체를 이끄는 간부들의 부도덕한 이권 개입과 비리 연루 의혹도 광주 시민들이 5·18 단체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현재 광주 지역의 5·18 관련 단체는 모두 7개다(아래 표 참조). 11개 단체가 난립하던 때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사실상 유족회·부상자회·구속자회 세 단체를 중심으로 5·18 단체들의 입장이나 방침이 결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단체 가운데 일부는 재정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중소기업 부도 상품전’ 같은 야시장 영업을 수차례 중개하고 수천만원대 금품을 받아 단체 운영비나 단체장의 판공비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또 5·18 공원이나 관련 시설, 광주시가 운영하는 각종 시설의 매점이나 점포 운영 등 이권에 개입하려 했다는 소문은 이미 구문이 된 상황이다.

때문에 5·18 관련 단체들이 지난해부터 잇달아 사단법인으로 전환한 것에 대해 합법적으로 이권에 개입하려는 의도로 보는 시각들이 많다. 실제 5·18 부상자회의 경우 국가 유공자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합법적으로 군과 경찰에 납품하는 의류업체를 운영하기 위해, 후원자를 물색해 이미 광주 송정동에 ‘5·18 복지공장’이라는 공장을 짓는 등 사전 준비를 완벽하게 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박영순 5·18 부상자회 이사장은 “5·18 부상자회의 운영비도 필요하지만 총상 후유증 등 질환을 앓고 있는 회원들의 복지 사업에도 자금이 필요하다. 다른 국가 유공자 단체들도 하는 사업인 만큼 5·18 희생자들도 생계를 유지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의류 사업을 추진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5·18 단체들의 은밀한 사업 진출 채비와 별도로 ‘5·18 단체장 가운데 지금까지 수십억원대 치부를 한 사람이 있다’는 입소문부터 시작해 ‘5·18 당시 핏방울 하나 안 튄 멀쩡한 사람을 구속자나 부상자로 인정받게 해주고 돈을 받아 챙겼다’는 소문도 5·18 단체 회원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이야기다.

5·18 부상자회 회원 강상원씨는 “박영순씨 등 일부 단체장들이 허위 부상자·구속자를 만들어 주고 그들을 측근으로 삼아 충성을 맹세하게 한 뒤 자신들의 사리 사욕과 이권 개입, 정치적 욕심을 챙기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소문은 회원들이라면 다 알고 있다. 두 단체가 사단법인인 만큼 검찰이 나서서 수사해야 한다”라며 검찰의 수사를 촉구했다. “기념 행사 앞서 내부 개혁부터”

이와 관련해 국민회의 김종배 의원(전국구)이 주도해 추진되어 온 5·18 희생자들을 국가 유공자로 지정하려는 ‘국가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은 최근 ‘5·18 가짜 부상자’ 수사 파문에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전몰군경유족회·전몰군경미망인회 등 세 단체가 반대해 난항을 겪고 있다.

강상원씨가 주장한 부상자 조작 건에 대해 5·18 부상자회 박영순 이사장은 “허위 부상자를 만들어주었다는 말은 낭설이다. 확실한 증인이 확보된 사람만 심사위원회가 부상자로 인정했다”라며 극력 부인했다.

흔히 ‘5·18 당사자’로 지칭되는 5·18 관련 단체들의 내분과 이권 다툼 등 부끄러운 모습은 그동안 광주 지역에서만 쉬쉬한 채 전국적인 현안으로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는 민주 성지라고 일컬어지는 광주의 치부이기도 하지만, 자칫 5·18 정신까지 추락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광주에서는 또 하나의 성역으로 굳어버린 5·18 관련 단체가 거듭나야 마땅하고, 5·18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사태가 없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아가고 있다. 전남대의 한 교수는 “5·18 관련 단체들의 ‘호가호위’와 이권 개입, 정치적 결탁을 눈 감을 경우 광주는 5·18 정신과 가장 동떨어진 도시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뼈아픈 말을 남겼다.

21세기를 앞둔 지금 광주는 성대한 5·18 기념행사를 치르기에 앞서 항쟁 당사자들이 자기 반성과 내부 개혁을 추진해야 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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