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개혁 마차’내부 마찰로 삐그덕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1997.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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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 사퇴 이어 종회도 공전… “갈등 원인 총무원측이 제공”
‘삐그덕거리기는 하지만 원래 방향대로 잘 달리는 마차’.

94년 조계종 종단 개혁 때‘개혁회의’에서 활약하고, 지금 종단의 국회 격인 종회(宗會) 일을 맡아보고 있는 법안 스님은 월하 종정이 사퇴한 직후 개혁 종단 모습을 이렇게 비유했다. 법안 스님은 지난 3월10일 있었던 월하 종정 사퇴에 대한 일부 언론의 보도에 불만을 표시했다. 언론이 종정이 사퇴한 사건의 의미를 지나치게 부풀렸다는 것이다. 법안 스님은 아직 종단에 개혁 세력이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종정의 사퇴를 총무원에 대한 불신임으로 보도하는 태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개혁 종단은 법안 스님의 말처럼 원래 방향을 향해 잘 달리고 있는가. 정말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부 상황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하 종정은 총무원측의 거듭된‘사표 철회’ 간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퇴 의사를 고수하고 있다(63쪽 상자 기사 참조). 또 3월25~28일 종단의 주요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서울 조계사 총무원 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임시중앙종회는‘의안 상정’도 하지 못한 채 공전했다.

개혁 세력끼리 이견 심해져

특히 눈길이 가는 대목은, 종회가 공전했다는 사실이다. 종회는 전체 종회의원(80명) 과반수의 출석으로 개회되는데 ‘웬일인지’ 의원 상당수가 불참하는 바람에 아예 회의 자체가 성립하지 못했다. 종회의원들이 종회에 불참한 이유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개혁 종단이 출범할 때 함께 구성된 현 종회는 구성 당시 개혁파 대 반개혁파 비율이 6 대 2에 이를 정도로 개혁파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한마디로 개혁파 일색으로 구성되었던 것이다. 이같은 종회가 의원들 다수의 불참으로 개회조차 못했다는 사실은, 개혁 세력 내부에서조차 의견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갈등이 심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부 종도들은 이같은 갈등과 반목의 주된 요인을 총무원측에 돌린다. 송월주 총무원장 체제가‘개혁 완수’라는 이름 아래 서의현 전 총무원장 체제에 버금가는 종권 구축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 총무원장 체제는 94년 실천승가회·선우도량 등을 중심으로 발족한 ‘개혁회의’가 △종풍 선양 △기강 확립 △섭중 화합이라는 3대 목표를 세우고, 과거 집권 세력과 유착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8년간 부귀 영화를 누리던 서의현 체제를 무너뜨린 뒤 출범했었다.

초창기 종단 개혁 세력은 총무원장 단일 지도체제를 전국 24개 본사 중심 운영 체제로 전면 개편했다. 개혁회의는 종헌·종법을 바꾸어 본사 및 말사 주지 임면권을 24개 본사에 주고 총무원측은 이에 대한 인준권과 해임발의권만 갖는 형식으로 종권 구조를 바꾸기도 했다. 또 종단 전체의 운영 체제를 총무원·포교원·교육원으로 3원화했다. 총무원장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됨으로써 전횡과 부패가 발생할 여지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 3권을 분립시킨 것이다.

문제는 최근 개혁 종단 스스로가 이같은 제도 혁신의 기본 정신을 파기하고 권한 남용 또는 권력 확대 쪽으로 치닫고 있다는 의혹이 나온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가, 수입이 많기로 이름난 대구 은해사의 갓바위와 강화도 보문사 등 현재 총무원측이 직영하는 몇몇 기도처의 수입금을 전용한다는 의혹이다. 대구 은해사 갓바위의 경우 은해사 주지측은 지난 3월25일 중앙종회가 열리기 직전 ‘총무원측이 갓바위 수입금 30억원을 직영이라는 명분으로 몽땅 거둬갔으면서도 이를 종단의 정식 예산에 넘기지 않고 총무원 종무 결의 사항 하나로 집행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월하 종정이 머무르는 경남 양산 통도사에 전달한 바 있다.

사리 친견 법회·방생 법회 등 각종 법회를 총무원이 직접 주관하려는 움직임과, 지난 2월 말 30년 만에 부활했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던 ‘거리 탁발’에 대해서도 일부 종도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총무원이‘재정 확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지나치게 돈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법회가 열리면 으레 종도들의 시주가 따르기 때문에 예로부터 법회는 절집 살림 밑천을 마련하기 위한 각 사찰의 고유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우리민족돕기 운동’이라는 명분으로 부활시킨 거리 탁발 역시 총무원 행정승들이 공공연히 돈벌이에 나설 수 있게 해주었다는 이유로 공격받고 있다. 불국사 등 몇몇 교구 본사는 지난 2월26일 종단 차원에서 진행된 탁발 부활식에 불참함으로써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총무원이 타율 체제로 회귀하려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갈등의 불씨는 개혁 종단이 최근 정치 권력과 관계를 복원해‘자율 체제’에서 다시‘타율 체제’로 회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일부의 의혹이다. 특히 이 부분은 불교계의 핵심 현안 중 하나인‘전통사찰보존법’(전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더욱 불거졌다. 지난 3월17일 임시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전사법 개정안의 골자는 ‘전통 사찰 주지가 절집 재산을 처분할 때에는 소속 단체의 대표자, 즉 총무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정 이전 법 조항에 따르면, 절집 재산은 문화체육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만 처리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은 그대로 놓아둔 채‘소속 단체 대표자의 승인’ 조항만 신설함으로써 총무원측이 종단 자율성과 총무원 권한 확대를 맞바꾸었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총무원측은 다른 논리를 내세워 개정 전사법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절집 재산 처분권을 개별 사찰에 맡기면 폐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법안 스님은 “과거에는 개별 사찰 주지들이 종단 모르게 임의로 절집 재산을 처분해 권력과 야합하거나, 사복을 채우는 데 썼다. 따라서 절집 재산을 처분할 때 종단의 승인을 받도록 법을 개정한 일은 오히려 종단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였다”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개혁 종단의 부인과 해명에도 불구하고 ‘종단이 예전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비판은 강도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종정 사퇴에 이은 종회 공전과, 이를 계기로 고개를 들고 있는 총무원 비판론으로 개혁 종단 앞마당의 공기가 날로 험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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