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 미사일로 하늘 지키겠다고?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8.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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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 방공 미사일 나이키, 전투기 요격 불가능… ‘호크 PIP 2’ 도 고물, 신형 도입해야
지난 12월4일 인천시 공군 방공포대에서 일어난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나이키) 오발 사고는 한국군 방공(防空) 체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자세한 사고 원인은 조사를 통해 밝혀지고 이에 따라 책임자 문책이 있겠지만, 이 사고가 ‘예고된 사고’였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나이키는 호크와 더불어 내습하는 북한 전투기를 요격하는 대표적인 방공 미사일이다. 51년 미국이 개발에 착수해 58년 10월 최초로 작전 배치한 나이키의 수명 연한은 23∼32년이다. 수명 연한이란 제조 회사가 성능을 보장하는 기간이므로 실제로는 이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이지 무작정 연장할 수는 없다.

미사일 수명을 좌우하는 첫 번째 요소는 추진체 안에 있는 연료이다. 연료는 미사일을 목표물까지 쏘아 보내는 ‘화약’인데. 화약은 수명 연한이 지나면 물성(物性)이 변할 수 있다. 나이키는 수직 발사하는 2단 추진 방식이다. 연료 물성이 변한 미사일을 발사하면, 상승 도중 갑자기 추진체에 점화된 불이 꺼지면서 제자리로 떨어지는 ‘지랄탄’이 될 수도 있다(나이키 시험 발사 중 실제로 이러한 일이 일어난 적이 있다).

나이키는 주한미군이 작전 운용하다가 65년 한국군에 이관했다. 이때부터만 따져도 나이키는 수명 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난 미사일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대만과 더불어 나이키를 작전 운용하는 세계에서 둘뿐인 국가였다. 그러나 97년 대만이 패트리어트 PAC 2로 대체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나이키 운용 국가가 되었다.

“나이키로 요격할 수 있는 것은 여객기뿐”

나이키가 골동품이라는 사실은 가격에서도 확인된다. 요즘 나오는 휴대용 방공 미사일 미스트랄은 1.86m 길이에 무게는 19.5㎏에 불과하지만, 1기당 가격이 1억3천만원 정도이다. 반면 나이키는 12.5m 길이에 무게는 4.9t이나 되지만 1기당 가격은 7천2백만원이다. 한마디로 ‘쇠 값’도 제대로 못 받는 것이 나이키이다.


LG정밀은 미사일을 비롯한 유도 무기와 레이더를 생산하는 방산업체이다. 그래서 나이키 정비도 담당하는데, 나이키 정비는 기술자 사이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다. 나이키의 추진 연료와 유도 장치에 들어가는 진공관식 전자 부품은 단종(斷種)된 지 오래여서, 부속품을 구하려면 ‘세계 골동품 시장’을 뒤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근년에는 대만이 나이키를 처분했기 때문에 그런 대로 부속품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LG정밀 구자준 부사장은 이런 현실을 “다이너스티가 씽씽 달리는 시절에 포니를 모는 격이다”라고 설명했다. “아마 포니 값은 10만원도 안되겠지만, 부속품이 없어서 고장 나면 수리비가 엄청날 것이다. 나이키가 이런 식이다. 나이키는 운용하면 운용할수록 손해이다.”

구부사장은 미사일 제작 엔지니어다. 그는 “공군을 비방할 뜻이 아니다. 애국심 때문에 이런 말을 한다”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북한이 쏜 미사일을 나이키로 요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유사시 북한 공군이 전파 방해를 하면 나이키는 어떠한 북한 전투기도 요격하지 못할 것이다. 나이키로 요격할 수 있는 것은 여객기뿐일 것이다.”

나이키를 대체할 방공 미사일 도입 사업(SAM-X)은 오래 전부터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공군은 국방부와 합참에서 소군(小軍)이고, 방공포병은 공군 중에서도 또 소군이다. 때문에 방공 미사일 도입 사업은 번번이 우선 순위에서 밀려 왔다. 93년 5월 북한이 노동 1호를 동해로 시험 발사하자 미국의 패트리어트 PAC 3이나 러시아의 S300 가운데 하나를 도입해 나이키를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나중에’를 연발하는 국방부와 합참에 밀려 소리 없이 사그러졌다. 94년 국방부는 국방과학연구소에 나이키 잔존 수명 평가를 의뢰해, ‘몇 년 더 사용할 수 있다’는 ‘예정된 답변’을 끌어내 방공포병의 입을 수 년 동안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호크 PIP 2 미사일, 제2의 나이키 될 판

호크는 중고도 중거리로 침투하는 전투기를 요격하는 ‘세계 유일’의 무기이다. 따라서 방공포병에게 호크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무기이지만, 한국 방공포병의 현실은 나이키만큼 처참하다. 호크를 쓸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서 미국은 지속적으로 성능 개량 작업을 추진해 호크 PIP 3을 개발
해 선진국 군에 보급했다. 하지만 한국 공군은 호크 PIP 2를 사용하고 있다. PIP 2와 PIP 3의 차이는 한마디로 ‘아토스와 그랜저’ 정도라고 한다.

호크 PIP 2 역시 수명 연한이 꽉 찬 상태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10여 년 더 사용할 수 있다고 보고 2010년쯤 한국형 중고도 방공 미사일(M-SAM)을 개발해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그러나 10년 뒤까지 호크 PIP 2를 사용하라는 것은 ‘제2의 나이키’를 만들겠다는 의미이다. 또 한국 실력으로는 중고도 방공 미사일 개발이 불가능하고, 설사 개발한다 하더라도 10년 후에는 새로운 첨단 전투기가 등장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의 방공 현실이 이러한데도 언론과 정치인·국민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과소 평가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북한이 한국군의 방공 능력으로는 도저히 요격할 수 없는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31일 북태평양으로 발사된 대포동 1호는 북한이 미사일 개발을 위해 ‘눈물 겹게’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위 미사일 그림은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을 통해 보도된 대포동 1호 발사 장면을 토대로, 일본 방위청이 추정한 대포동 1호의 구조이다. 주변 물체와 비교했을 때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대포동 1호의 길이는 약 25m로 추정된다. 이 미사일은 밑에서부터 3분의 2쯤 되는 곳에 ‘트러스(truss)’형태의 철 구조물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일본 방위청은 이런 점에 주목해 대포동 1호가 ‘노동 1호 미사일에서 탄두부를 제거한 후 그 위에 스커드 B 미사일을 올리고 트러스 구조로 고정해서 만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처럼 북한은 전략 목표 달성을 위해 주어진 조건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방어 수단도 없는 한국군은 ‘북한을 이길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을 가지고 햇볕 정책을 펼치고 있다. 햇볕 정책은 우리의 대응 태세가 완벽할 때에만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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