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선 철길 따라 바뀌는 서울살이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7.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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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개통 후 지하철 수송 분담률 ‘껑충’… 공항 이용 차량 줄고, 마포·왕십리 주요 상권 부상
총공사비 8천4백97억원. 공사 기간 만 6년. 서울을 동서로 잇는 총연장 52.1㎞에 역사 51개를 갖춘, 도시 철도 사상 가장 긴 단일 노선. 지하철 5호선이 96년 12월30일 완전 개통된 뒤로 서울 시민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하철의 시민 수송 분담률이 버스를 따라붙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하철 5호선과 7,8호선 일부 구간이 개통되면서 지하철 수송 분담률은 29.8%에서 34.1%로 치솟았다(표 참조). 이는 버스 분담률 34.9%에 거의 맞먹는 수치이다. 서울시 도시철도공사측은 올해 말이 되면 지하철 수송 분담률은 36%로 올라 35%로 예상되는 버스를 앞지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중 교통에서 수십 년 동안 버스가 지켜온 주역 자리를 지하철이 대신하는 셈이다.

지하철 수송 분담률 변화가 서울시 전체에 해당하는 변화라면, 5호선에 가장 직접적인 교통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강서·여의도·강동 지역 주민들이다.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 2단지에 사는 한 주민은“지하철이 개통되기 전에는 명동 같은 시내로 나가려면 길게는 2시간까지도 걸렸다. 지하철로 가면 30분이면 족하다”라고 말했다. 강서 지역도 승용차 출퇴근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만성 정체 구역인 성산대교와 양화대교를 통해 시내로 들어오려면 최소한 1시간 넘게 걸리는데, 5호선을 타면 30분 정도로 단축되기 때문이다.

5호선이 개통되어 희색이 가득한 곳은 교보문고와 종로서적 등 대형 서점들이다. 실제로 5호선이 개통된 뒤 광화문역과 바로 연결된 교보문고는 이전 같으면 비교적 한산한 평일 오전에도 북적거리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교보문고 주인길 영업부장은“지하철 덕분에 유동 인구가 크게 늘었다. 특히 가족을 동반한 고객이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교보문고·세종문화회관 , 지하철 덕 ‘톡톡’

세종문화회관도 큰 덕을 보고 있다. 5호선이 개통됨으로써 세종문화회관은 예술의전당과 국립극장 등 서울에 있는 비슷한 규모의 공연장 가운데 가장 좋은 교통 조건을 갖춘 곳이 되었다. 세종문화회관 장기풍 공연부장은, 아직은 비수기여서 큰 변화가 없지만 5호선이 뚫린 이후 관람객 수가 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측은 앞으로 관람권 뒤에 전철 교통편을 새겨넣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교통이 편리한 사실을 알릴 계획이다.

지하철 5호선은 김포공항을 도심과 연결해 해외 여행도 지하철로 시작하는 시대를 열었다. 현재 김포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 수는 하루 평균 30만명 정도이다. 실제로 개통된 지 두 달밖에 안되었지만 공항을 이용하는 방식은 뚜렷이 변하고 있다. 우선 주차장을 드나드는 차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 주말이면 꼬리를 물던 국내선 청사 앞의 차량도 크게 줄었다. 서울 방화동에서 공항을 들러 시내로 나가던 41번 시내 버스는 이제 공항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시내로 나간다. 서울 삼성동 도심 공항터미널과 김포공항을 연결하는 리무진 버스 승객도 많이 줄었다. 택시를 이용한 공항 출입 승객도 줄어, 2월11일 국제선 제2 청사 앞에 서있던 한 모범 택시 기사는 오전 11시에 공항에 들어와서 오후 5시까지 한 번도 손님을 태우지 못했다고 울상을 지었다. 택시 기사들은 5호선이 완전 개통된 뒤 손님이 30% 가량 줄었다고 말했다.택시 기사는 울상이지만, 공항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은 지하철이 고맙기 그지없다. 서울과 도쿄를 자주 왕복하는 재일 교포 이 아무개씨는 “김포 공항에 도착하면 택시 기사의 불친절과 바가지 요금 때문에 늘 불쾌했다. 지하철이 생기고부터는 택시 기사와 승강이하기 싫어 조금 불편하더라도 아예 값싼 지하철을 이용한다”라고 말했다.

김포 공항에 지하철이 들어선 사실을 누구보다 반기는 쪽은 광화문 일대에 상주하는 주한 외국 대사관 직원들이다. 광화문에서 김포 공항까지 39분이면 갈 수 있어 이들은 업무를 보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지하철 5호선은 승용차에 깡통과 풍선을 요란하게 달고 공항으로 달려가는 신혼 여행 풍속도 바꿀 조짐이다. 김포공항역 조동환 주임은 짐을 미리 부치고 간편한 옷차림에 배낭을 메고 지하철로 공항에 오는 실속파 신혼 부부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5호선은 여의도·마포·공덕동 로터리·서대문 로터리를 광화문과 연결하는 마포로(일명 귀빈로)를 서울 강북을 개발하는 핵심 축으로 변화시켰다. 원래 이 지역은 시내와 가까웠으나 교통 체증 때문에 사무실이 들어서기에 그다지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전철이 개통되어 교통 여건이 좋아지자 이 지역은 서울의 핵심 상권이자 새로운 부도심으로 떠올랐다. 이미 작은 평형 일부를 제외하고는 빈 사무실이 없고, 대로변 빌딩 사무실을 중심으로 임대료가 꾸준히 오르고 있다. 한국부동산컨설팅 정광영 대표는 평당 월 2백만~2백20만원 하던 마포의 사무실 임대료가 2백50만∼3백만원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방화·목동 지역 아파트값 급등

이 지역에 사무실을 마련하려고 몰리는 업체는 주로 대기업과 금융권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과거 강남을 개발할 때 테헤란로에 사옥을 짓지 않으면 대기업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말이 나왔던 것처럼, 5호선 개통 이후 마포로에 터를 잡으려는 대기업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왕십리도 예외가 아니다. 이 곳은 5호선·2호선·국철 등 세 노선이 겹치는 교통 요충지가 되었다. 의류업·식음료업·금융기관·학원이 앞다투어 들어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덕분에 왕십리길의 상가 임대료는 현재 1층 기준 평당 5백만∼7백만원으로 뛰었다.

5호선 인근 지역의 아파트값 상승도 빼놓을 수 없는 변화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넓은 도로망과 다양한 버스 노선도 중요하지만 지하철 노선이야말로 결정적으로 아파트값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5호선의 시발·종착 역이 된 방화 택지 개발 지구 안의 방화역 주변은 아파트값이 23%, 전세값이 44.3%나 올랐다. 목동역이 있는 서울 목동아파트 7단지는 한 달 만에 고층 아파트값이 20평형 2천5백만원, 27평형 4천5백만원, 35평형은 7천만원 가량씩 올랐다. 재건축 아파트가 몰려 있는 우장산역 인근 아파트값은 평균 23.6%나 올랐다. 목동공인중개사무소 이원근씨는 5호선이 개통되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변화가 없다가 개통되자마자 너무 올라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지하철망은 속속 확장되어 시민 생활을 바꾸고 있지만, 아직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뒷걸음질치는 것도 있다. 1호선보다 심한 5호선의 지하철 소음, 버스와 연계되지 않는 5호선 역, 갈수록 길어지는 환승 통로, 외국어 표지판 부족, 잦은 지하철 사고가 그것이다.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가 5호선 안전 문제를 가지고 서울시를 상대로 시민 감사를 청구한 것은 그래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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