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입’에서 시작된다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1997.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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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뭘…’ 관습화된 여성 멸시 언어 난무…“바른 말 없으면 평등도 없다”
“이영아씨 아직도 (회사) 다녀?” 이씨(32)는 2년 전 업무상 알게 된 한 남자로부터 이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이상해졌다. 뭔가 불쾌한 듯했지만 그 때는 왜 그런지, 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 사람의 말이 걱정해 주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씨는 그뒤로 비슷한 얘기를 자주 들으며 비로소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우호적이라는 껍데기를 쓰고 있었지만 ‘여성의 역할과 공간을 가정에 두어야 한다’는 성차별 의식이 말 속에 숨어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말이 결국 ‘여성 기죽이기를 위한 사회적 음모’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회사 안팎에서 만나는 남성으로부터 주로 들은 말은, ‘올해는 결혼해야지’ ‘(여자가) 뭘 그리 힘들게 살려고 해. 백마 탄 기사를 만나면 마음도 편하고 평생 직장이 될텐데’ 같은 것이었다.

여성을 억압하는 일상의 언어들, 이른바 ‘성차별 언어’는 주로 남성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여성발전법·고용평등법 같은 제도가 만들어지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성차별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욕설이나 성희롱 같은 노골적인 표현을 직접 드러낼 수 없게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차별 의식이 깔려 있는 말들은 아직 주위에 많다. 여성의 주체성을 통제하려 하거나 열등감을 주는 표현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은 어떤 것일까. “스스로 무감각해지지 않으면 피곤해서 살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서울 목동에 사는 전업 주부 김소앵씨(38)의 말이다.

서울 송파동에 사는 전업 주부 차숙연씨( 35)는 “상황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여자가’라는 말이 앞에 붙는 말은 거의 여성을 비하하거나 운신 폭을 좁히려는 성차별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벌써 뉘앙스가 다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여자는(가)’이라는 통사가 붙는 말은 주로 여성의 역할과 공간을 규정하는 표현에 많다.

(주) 한솔교육에서 학습 교재 개발 업무를 하는 박명화씨(34)는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이건 여자가 할 일이야’라는 말을 간혹 듣는다. 박씨는 설사 이 말을 직접 듣지 않아도, 여자일과 남자일을 구분해 전통적인 성 역할을 강요하는 일이 일상 생활에서 적지 않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여성의 존재에 대한 위협”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가사를 분담하는 젊은 부부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부엌은‘금남 구역’이다. 연구소에 근무하는 이 아무개씨(26)는 며칠 전 시골에서 올라온 시어머니가 언짢아하던 기억을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평소대로 남편이 설거지를 거들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너는 왜 남자를 부엌에 들여보내느냐”라고 힐난하며 남편의 등을 거칠게 떠밀더라는 것이다. 이씨는 이 일 끝에 시어머니로부터 “여자 드센 것은 못쓴다. 아무리 밖에서 돈을 벌어도 여자는 살림을 잘하는 것이 제일이다”라는 말도 들었다. 시어머니는 같은 여자이면서도 ‘아들을 둔 여자’라는 점에서 대개 남성 중심적 사회를 강화하는 데 큰 몫을 한다.

여성이 역할 중심을 가정에 두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은 여성의 바깥일을 하찮게 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서울 성산동에 사는 조 아무개씨(37)는 지난해 남편에게 독서 지도 교사를 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남편으로부터 “그거 너무 열심히 할 필요없다. 그거 가지고 밥벌어 먹고 살 것도 아닌데.”라는 말을 들었다. 조씨가 결혼한 지 10년 만에 어렵사리 찾은 이 ‘바깥일’을 조씨의 남편은 인정하려 들지 않은 것이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주)동해에서 자재 조달 업무를 맡고 있는 이 아무개씨(29)도 ‘왜 조달업체 상대하는 업무를 여자에게 시키느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씨는 ‘시집이나 가지 동해 귀신이 되려고 그러느냐’는 말은 불쾌해도 참을 수 있지만, 중요한 일을 여자가 하면 안된다는 의식은 곧 ‘존재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전문직 여성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우혜란씨(33)는 “남편한테서 아내의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덜 중요하게 보는 인식이 깔린 말을 간혹 듣는다”라고 잘라 말한다. 가끔 학교 일을 하다가 늦으면 ‘가정이 중요하냐 직장이 중요하냐’는 식으로 양자 택일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성차별 언어는 여성의 열등성을 강조하거나 ‘재수 없는 존재’로 비하하며 남자보다 하위 인격체로 표현하는 데도 널려 있다. 인터뷰에 응한 주부들은 남편으로부터 ‘집에서 뭐했냐’ ‘이때까지 그것도 몰라’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었다. ‘슈퍼 우먼 증후군’을 겪고 있는 취업 주부들과는 또 다르게 전업 주부들의 경우는 ‘당신이 돈벌어 본 적 있어?’라는 경제적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듣고 산다.

취업 여성들이 직장에서 주로 당하는 말은‘똑똑한 여자는 피곤해’‘따지는 여자는 싫어’‘설치는 여자는 싫어’등이다. 한 사무직 여성(38)은 한 여성 장관의 사례가 남성들의 이런 우월 의식에 희생된 경우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한창 ‘울보 장관’이라는 비난을 들을 때 회사에서 과장과 남자 직원이 자기더러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여자한테 이런 일(장관직)을 맡기니까 맨날 찔찔 짜고 그러지”하더라는 것이다.

‘아침부터 여자가 잔소리(전화)하고 야단이야 재수 없게’ ‘ 여자가 재수 없게 앞에서 운전하고 있어. 아줌마 죽고 싶어 환장했어?’와 같은 말은 성차별을 넘어 인격 모독으로 치닫는다. 이런 언어 표현이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여성을 제재하기 위한 말로도 나타난다. ‘감히 여자가 (남자에게)’‘일개 여직원이’같이 여성 전체를 통칭하는 표현으로 바뀌는 것이다.

여성을 재수 없는 존재로 여기는 표현과 맥락이 닿아 있는 것이 남자보다 하위 인격체로 보는 표현들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느니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는 말이 예전부터 여성을 폄하했던 말이라면 ‘(남자와) 똑같이 놀려고 한다’는 것은 오늘날 여성을 짓누르는 말이다. 서울 목동에 사는 전업 주부 이미나씨(39)는 어떤 화제를 갖고 남편과 대화하다가 남편이 몰리면 으레 하는 말이 이것이라고 말한다. 사회 인식·가부장 이데올로기에 근본 원인

여성들이 남편에게 ‘혼났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여성 스스로 자기가 혼나도 좋은 인격체라고 여기는 것인데, ‘남자와 여자가 같으냐’식의 말에 길든 측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여성에 대한 호칭이, 비슷한 처지의 남성들이 아무개씨나 선생님으로 불리는 것과 달리 미스 아무개 혹은 아줌마인 것도 여성 전체를 하대하는 인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외모에 대한 표현은 여성에게 좀더 치명적이다. 남성에게는 주로 ‘남 자랄 때 뭐했냐’는 식의 키와 관련된 말을 하지만, 여자는 몸 전체가 대상이 된다. ‘예쁜 여자’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예쁘고 늘씬한 미혼 여성들이 ‘잘 팔리겠다’는 말을 듣는 것이나 뚱뚱하고‘안 생긴’여자들이 ‘너는 견적이 많이 나오겠다. (수술하려면) 1억도 모자라겠다’는 말을 듣는 것은 한 갈래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심지어 성과 관련된 언어 폭력도 적잖게 행해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 생산직 노동자는 생리 휴가를 쓰려는 여성에게 ‘(생리를) 안하는 방법 가르쳐 줄까’라든지, ‘지난 달과 날짜가 다른데’ 하며 무안을 주어 휴가 쓰는 것을 억제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한다. 증권회사에 근무하는 한 여성(26)도 ‘여기는 옐로 하우스(사창가)구만’하는 말을 남성 상사로부터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주식을 입출고하는 과정에서 여직원들이 한 줄로 앉아 있는 모습을 그 남자는 기막히게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욕설이나 성과 관련된 농담은 말할 것도 없지만, 얼핏 성차별 언어로 볼 수 없는 말가운데에도 상황에 따라 이런 의도를 풍기는 말이 적지 않다. 가령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은 분명히 차별하는 표현이지만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은 차별과 무관할 것일까. 이에 대해 여성학자들은 뱁새가 여성, 황새가 남성을 지칭한 것이라면 차별 언어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정부투자기관에서 일하는 여성(35)은 실제로 이 말을 남성 상사로부터 들은 경험이 있다. 이 상사가 경합 관계인 동료 남성과 자신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기를 써 봐야 남성을 이길 수 없다는 뜻을 자기에게 전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성차별 언어가 주로 남성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에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관념과 인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성차별 언어가 일부 남성이 특정 여성을 반드시 악의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말해지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어떤 여성을 평가할 때 그 여성의 어떤 점을 말하기보다 일단 여성 집단 전체를 통칭해 무시하려는 태도가 습관처럼 되어 있다. 여성을 주체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 보지 않아도 이제까지 별 저항에 부딪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전형에서 벗어난 ‘튀는’여성이 나타나면 개개인의 특성이나 능력과는 상관 없이 규제와 제재를 가하기 위한 비난이 퍼부어진다.

가부장 이데올로기도 성차별 언어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큰 몫을 하는 사회 문화적 배경이다. 가부장 중심 사회에서 생산되는 말은 남성 경험 중심일 수밖에 없다. 자연히 여성 경험 언어는 수다나 잔소리로 폄하되기 일쑤다. 세대간·성별간 위계 질서가 분명한 유교 문화의 영향도 말의 성차별을 낳는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아내가 남편보다 서너 살 적기 때문에 나이 많은 남성에게 항의할 수 없도록 키워진 측면이 있는 것이다. ‘시집 가서 벙어리 3년’은 현재도 없다고 볼 수 없다.

성차별 언어를 반복해 들을 때 여성들이 쉽게 빠져드는 대응책은 체념이다. 익숙해져 불쾌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느껴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혹은 남성 중심의 직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 참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의 관용과 체념과 포기가 집안의 안녕과 남성을 위한 것일 때는 곧잘 관대함의 미학으로 포장되어 버린다. 여성 스스로 자신이 늘 부족한 죄인이라는 비하 의식도 심는다. 착한 여자 또는 좋은 여자 이데올로기에 안주하게도 만든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성은 남성의 뒷전에 서서 조용히 있으면 ‘괜찮은 여자’가 되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 운동가들은 여성을 억압하는 법과 제도를 개선하면 불평등 구조가 개선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인 기대는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인식과 관습의 두터운 벽 앞에서 무력해지고 만다. 성차별 언어를 연구한 여성개발원 이춘아 연구원은 “남성 중심적 관습을 끊임없이 지탱하고 강화해 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언어이다. 성차별하는 말에 대해 대안 언어를 내는 등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한 양성 평등은 멀어질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언어에는 소속 집단의 사회 문화적 상징과 담론이 담겨 있으며, 집단 소속원의 의식·무의식 사고 체계가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사소하게 그까짓 말을 갖고’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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