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창’ 가속도 붙은 교육산업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1997.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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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입시학원에 어린이 영어·컴퓨터 학습 가세
서울 강남에 ‘세계화’와 ‘정보화’ 열풍이 불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교육 1번지인 이곳 학부모들은 세계화를 영어 익히기로, 정보화를 컴퓨터 배우기로 이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만난 한 초등학교 3학년 어머니는, 이곳 학부모들은 아이가 영어와 컴퓨터를 모르면 머지 않아 사회에서 낙오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자기집 아이가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이 아니냐며 조바심을 쳤다.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영어 공부를 시킨 것 자체는 최근 현상이 아니다. 학습지를 구독하고 그룹 과외를 시키며 동네 학원 등에 보낸 것은 오래된 일이다. 이런 꾸준한 수요는 어린이 전문 교육을 표방하는 학원들이 1∼2년 전부터 다투어 생겨나면서 이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시사영어사와 파고다학원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개설한 ECC 어린이 교실과 파고다 주니어, 민병철 어학원의 주니어 교실, 원더랜드, A+랭귀지스쿨 같은 학원들은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를 겨냥했다. 학원 시장이 개방되자 키즈클럽코리아, 잉글리쉬 퍼스트 같은 외국계 어린이 전문 학원 체인들도 속속 들어왔다. 이들 어린이 전문 학원들은 실내 디자인을 동화 속 나라처럼 꾸몄으며, 카드 놀이와 게임, 낱말 맞추기, 역할 놀이 등을 통해 영어를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했다. 물론 지난해부터 어린이 영어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진 것은, 올해부터 영어가 초등학교 3학년 정규 과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 맡기를 극도로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아이들이 영어를 많이 배우고 있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교육부는 지난해 전국에서 영어 과외를 하는 초등학생이 전체의 14%나 되는 53만명(3천5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한 초등학교 교사(35)는 “전반적으로 준비가 소홀해 잘 가르칠 여건도 아니지만, 우선 교사들을 주눅들게 하는 것은 아이들에 비해 발음이 나쁘다는 사실이다”라며, 40대 이상 교사들은 더욱 입이 ‘얼어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CD 롬·PC 통신 활용한 학습 등장

서울시교육청 집계에 따르면, 3년 사이에 서울에만 어린이 전문 영어 학원이 4배로 늘어나 78개(96년 8월 말)나 된다. 같은 시기 강남 지역에서는 3개에서 25개로 8배나 늘어났다. 이 통계는 어린이 전용만 파악한 것이어서 성인 겸용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과열 양상을 빚고 있는 이 시장에 얼마전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동성화학그룹이 어치브에이 어학원을 만들어 도전장을 냈다. 미국 일리노이 주립 대학 메리 프리츠 교수팀이 미국 문교부 후원을 받아 비영어권 어린이를 위해 개발한 어치브에이 프로그램을 들여와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어치브에이 어학원 김용채 원장은, 자신들의 강점으로 우수한 강사진 외에도 영어와 컴퓨터 함께 하기를 내세우고 있다. 집에서 온라인 학습을 할 수 있으며, 미국 어린이들과 ‘컴팔(인터넷을 이용한 펜팔)’을 유도하는 프로그램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컴퓨터 학원들도 양상은 비슷하다. 미국의 3대 어린이 컴퓨터 학원 체인인 퓨처키즈·컴퓨터 토트·포스알이 국내에 진출했고, 여기에 컴피네트·컴키즈 같은 국내 브랜드가 가세해 경합하고 있다. 퓨처키즈코리아 박승환 사장은 “어린이들이 어렵게 여기는 컴퓨터를 쉽게 구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논리적 사고와 창의성을 기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멀티 미디어 바람이 불고 있는 것도 영어와 컴퓨터 알기 욕구를 두루 충족하려는 의도가 적지 않다. 이 분야에는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대기업 가운데 열심인 회사는 LG소프트이다. 두산동아·계몽사·삼성출판사 같은 출판사와 (주)대교 같은 학습지 업체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어 각축하고 있다. (주)대교가 최근 출시한 <스쿨버스 100>이나 중앙교육진흥연구소가 94년에 내놓은 은 CD 롬 타이틀과 PC 통신으로 집에서 과외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CD 롬 타이틀이나 온라인 학습법 같은 컴퓨터 학습법이 책·연필과의 싸움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앙교육진흥연구소 한정재 정보자료실장은 멀티 미디어 관련 교육 방법이나 교재들을 가정에 끌어들인 소비자가 아직은 매우 적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실장은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에 눈을 돌린다면 이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게 되고, 그래서 업체간 과열 현상도 나온다고 말한다.

멀티 미디어를 채용한 학습법이 아직 초기 단계라는 사실은, 학습지와 참고서 시장이 엄청나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디딤돌 에듀비전은 지난해 <봄봄> 학습지로 종합 학습지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96년 처음 이 시장에 뛰어든 디딤돌은 첫해에 회원을 14만명이나 끌어모아 단숨에 2위에 올랐다. 회원수 27만명으로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중앙교육진흥연구소()를 위협할 만했다. 학교 영업을 하지 않는 디딤돌이 이렇게 떠오른 것은, 문제 출제 위원들에게 출제료가 아닌 인세를 지급해 문제의 질을 높이고 신세대 취향에 맞게 학습지를 디자인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황금알 낳는 시장” 대기업도 앞다투어 참여

디딤돌이 학습지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학습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고교생 대상 종합 학습지가 아니다. (주)대교의 추산에 따르면, 1조3천억원의 학습지 시장 가운데 유아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가정 방문형 단일 학습지가 80% 남짓을 차지하고 있다. 학습지 회사들은 요즘 부쩍 논리·이해·창의성을 높이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수능과 논술로 대학 입시 제도가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한국학원총연합회의 추정에 따르면, 입시·외국어·속셈 등 학습을 목적으로 하는 학원은 96년말 현재 만개가 훨씬 넘는다. 망하는 학원도 많지만 자고 나면 생기는 것이 학원인 것도 사실이다. 대형 입시 학원들이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교육산업’의 본령은 대학 입시산업이다. 96년 국감 자료에 따르면 초·중·고교 학생의 연간 사교육비는 20조원을 넘는다. 교육부 예산(15조원)보다 많다. 이 가운데 교과서 구입비·하숙비·교통비 등을 제외하면, 입시 비용인 입시학원비·개인 과외비·재능 학원비는 6조7천억원(33.5%)에 달했다. 여기에 학습지·참고서 같은 부교재 구입비(2조5천억원)와 음성적인 고액 과외비를 포함한다면 입시산업 규모는 10조원을 훨씬 넘을 것이다. 한국 최대 산업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이 엄청난 규모의 입시산업에 기업이나 대학 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리 없다. 이미 삼성·LG·동양·코오롱·두산 그룹이 교육 시장에 들어왔고, 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대기업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세대·서강대·외국어대 등은 어학 시장에 진출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천세영 부연구위원은 “문제는 사교육비가 엄청나다는 점보다 심화 학습이나 관심 분야 학습이라는 사교육의 본질이 충족되지 않거나 왜곡되어 있다는 점이다”라고 주장했다. 사교육의 양보다 질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교육 수요는 입시로 통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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