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주식회사’ 곳곳에서 땅 싸움
  • 부산/박병출 (pbc@sisapress.com)
  • 승인 1996.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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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 등 경영 마인드 도입 후 분쟁 늘어…법·관리 체계 모호해 해결 난망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은 지난 10월5일 ‘내 땅을 남이 팔아먹지 못하게 해 달라’는 내용의 부동산처분금지 가처분신청 한 건을 접수했다. 신청 대상 면적이 39필지 9만2천여 평에 달하는 대규모인데다가, 신청인과 피신청인의 이름이 범상하지 않았다. 신청인 오규석은 부산 기장군수, 피신청인 손유섭은 경남 양산시장이다. 양산시가 기장군 관내 공유지 중 일부를 매각하려 하자, 기장군이 땅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부처 이기주의로 몰려 감사 받기도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영 마인드’를 도입하는 바람이 분 이후, 단체장들은 자기를 ‘○○(시·군) 주식회사 사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돈이 되는 행정을 펴겠다는 뜻이다. ‘사장님’들이 ‘땅=돈’이라는 등식에 눈을 돌리면서, 이웃 자치단체들과 영토 분쟁을 벌이는 자치단체들이 늘고 있다.

기장군은 부산에서 유일한 군 단위 지역이다. 양산군 관내에서 지난해 3월 분리 독립됨과 동시에 부산시로 편입되었다. 문제의 땅은 분리되기 이전부터 양산군이 보유하고 있던 것인데, 부산에 편입될 때 재산 인계에서 제외되었다.

그 이후 이 땅은 기장군 안에 있는데도 재산권과 관리권은 양산시(종전 양산군)가 가지는 불합리한 형태로 남아 있다. 기장군에는 이런 땅이 양산시 시유지 39필지 9만2천여 평, 경남 도유지 1백40필지 3만3천여 평 등 13만평에 가깝다.

기장군은 분가를 시킬 때는 살림도 나눠줘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반면 양산시는 ‘줘도 그만 안줘도 그만’인 느긋한 처지이다. 내무부는 일단 양산시의 손을 들어주었다. 몇 차례 행정 협의에서 결론이 나지 않자, 기장군은 95년 12월 내무부에 중재를 신청했다. 내무부는 해당 토지가 순수 잡종지이고 기장군이 장래 공공 목적에 사용할 계획이 없다는 이유로 양산시가 계속 관리하도록 했다.

지방자치단체의 공공 재산은, 행정 재산과 법정재산으로 구분되어 있다. 도로·하천·체육관·청사 등 공공 시설은 행정 재산, 구체적 용도가 없어 매각할 수 있는 임야나 대지는 잡종 재산이다. 지자제법대로라면, 기장군처럼 신설되는 자치단체는 돈을 만들 수 있는 땅은 고사하고 유지 관리비가 필요한 짐만 떠안을 수밖에 없다. 기장군이 지방자치법 대신 민사소송법을 통해 시비를 가리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산 강서구와 경남 김해시 사이에도 ‘땅 싸움’이 벌어졌다. 김해시는 94년 국토관리청 허가를 얻어 낙동강 지류인 서낙동강변에 농지를 3만평 조성했다. 이 과정에서 지형상 부산시계 안의 강 7천평 남짓을 사업 구역에 포함한 것이 싸움의 발단이다. 사업이 마무리되자, 부산 강서구 쪽에 조성된 땅을 처리하는 문제를 두고 대립한 것이다.

부산 강서구로부터 폐천 부지(강)를 무상 양여 받는 절차를 거친 후 토지를 강서구민들에게 매각한다는 것이 김해시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강서구는 이를 조성 원가로 강서구에 양여해 달라고 요구했다. 김해시로서는 불쾌한 주문이었다. ‘본전 장사’를 할 경우 분양 차익을 고스란히 강서구에 넘겨주는 셈인 데다, 상대적으로 김해 지역 분양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묘수를 찾던 김해시는, 해당 토지를 조성한 원가가 13억원이라는 계산을 내놓았다. 부산시계 안에 집중된 기반 시설 조성 비용을 모두 강서구로 떠넘긴 것이다. 강서구가 계산한 7천평에 대한 조성 원가는 2억8천만원이다. 애당초 성사될 수 없는 흥정이었다.
양측의 마찰은 대표적인 부처 이기주의로 지목되어 감사원 감사를 받기도 했다. 94년 말 감사원 감사에서는, 강서구가 지적 정리를 지연시켜 사업 일정에 차질을 주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김해시는 공용 시설인 제방·도로·배수 시설을 위치만을 기준으로 해 강서구쪽 조성 원가에 전액 합산한 것은 부당하다는 점을 시인했다.

그럼에도 강서구가 공사 준공 2년 반이 다 된 지금까지 지적 정리를 미루고 있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조성한 금싸라기 땅이 공식으로는 아직 강으로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동안 경남도와 부산시가 세 차례, 김해시와 강서구가 10여 차례 행정 협의를 벌였지만 ‘양여 가격 합의 후 지적 정리’라는 강서구와 ‘지적 정리 후 합의’라는 김해시의 입장차를 줄이지 못했다.

내무부는 잡종 재산에 대해 자치단체를 땅 주인으로 하는 사유지 개념의 토지라는 일관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장군이 지방자치법이나 내무부의 조정 대신 민사소송법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장군의 이런 기대는, 일단 희망적으로 보인다. 법원은 지난 10월12일 기장군의 가처분신청을 ‘이유 있다’고 받아들였다. 양산시는 가처분 결정 취소 청구소송 등 법적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가처분 신청이 소유권 이전 청구소송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만일 본안 소송에서 기장군이 승소할 경우 파장은 상상하기 어렵다. 지난해 신설된 서울 광진구 등 전국 9개 자치구와, 광역시 설치 과정에서 일부 행정 구역이 개편된 지역의 ‘땅 송사’가 봇물 터지듯 일어날 것이다.

자치단체, 땅 욕심만큼 관리 능력 있는가

다만 자치단체들이 땅에 대한 욕심만큼 관리 능력도 갖추고 있는지에는 의문이 많다. 10월16일 부산지검에 구속된 전 김해시청 일용직 공무원 박 아무개씨(33) 사례는 그 잣대가 될 만하다.

김해시는 94년부터 ‘시 재산 찾기 운동’을 벌여 왔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찾는다는 것은 잃어버린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해시는 극심한 교통 체증을 겪으면서도 간선로변의 너비 2m 길이 6㎞나 되는 도로 부지를 잃어버렸다가 94년 찾아 확장 공사를 벌였다. 박씨는 부산 사상구에서 김해 시유지 2천평을 찾아내 시장 직인까지 찍어 빼돌려 팔았다가 이번에 적발되었다.

관계 전문가들은 국·공유 재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자치단체 간의 분쟁 소지를 없애기 위해 관련 법률을 명확하게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자제법 하천법에 ‘협의에 의한다’‘할 수 있다’등 모호한 규정이 많아 제대로 효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같은 국·공유 재산이라도 잡종 재산은 재산관리계가, 도로 부지는 도로과가, 체육관은 체육시설계가 맡는 식으로 관리 체계가 분산된 것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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