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에 살고,부킹에 죽는다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8.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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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나이트클럽 ‘별세계’ 현장 취재
서울 강남에서 가장 ‘물이 좋다’는 한 호텔 나이트클럽이 주최한 댄스 페스티벌에서, 여자 참가자는 왜 속옷까지 벗어 던지면서 정신없이 춤을 추었을까. 물론 정답은 ‘상품에 눈이 어두워서’이다. 그러나 그런 간단한 정답만으로는 나이트클럽을 찾는 여성들이 목숨 걸고 몸을 비틀고 흔들어 대는 이유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해프닝이 알려지면서 나이트클럽이 퇴폐 행위의 온상으로 비치고, 급기야 국세청이 세무 조사라는 칼까지 빼들었지만, 나이트클럽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죽 불황이었으면 승용차를 내놓으면서까지 손님들을 모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주최측도 예상하지 못한 ‘긴급 상황’ 이 발생했겠는가. 오히려 호황을 누리는 것은 나이트클럽이 아니라 신나는 댄스 그 자체이다.

PC통신에는 수많은 동호인 모임들이 있지만 나이트클럽 동호인 모임만큼 흥미를 끄는 것도 없다. 전국의 ‘물 좋은’나이트클럽 정보를 컴퓨터 통신으로 주고받거나 자신의 사진을 올려 놓고 함께 춤추러 갈 사람을 구하기도 한다. 이 중에는 당당히 자신의 직장이나 연락처를 밝히거나 자신을 주부라고 공개한 사람도 꽤 있다.

PC통신 통해 함께 춤추러 갈 사람 구하기도

그러나 정작 나이트클럽을 사람들로 북적거리게 하는 것은 춤보다는 부킹이다. 부킹이라는 풍속은 몇년 전 일부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처음 생겨날 때만 해도 일부 고객에 한해 호텔측이 특별히 베푸는 사은 행사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또 그 대상도 같은 숫자의 남녀 손님을 짝맞춰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트클럽에서 춤이 우선인지 부킹이 먼저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국세청이 강남 지역 5개 호텔 나이트클럽에 대해 세무 조사를 벌이겠다고 선언한 다음날인 11월12일 밤 찾아간 강남의 한 호텔 지하 나이트클럽. 웨이터 보조까지 합해 족히 30명은 넘어 보이는 웨이터들이 주로 하는 일은 여자 손님들의 팔목을 잡아 끌고 남자 손님 테이블에 앉히는 일이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눠 보고‘아니다’라는 판단이 들면 ‘재미있게 노세요’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금세 자리를 떠버린다. 아예 좌중을 한 번 둘러보고 바로 자리를 떠버리는 솔직한 ‘실속파’들도 있다. 길어야 5분. 선택의 폭을 조금이라도 넓히려면 예스냐 노냐를 판단하는 데 들이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일단 ‘예스’가 결정되면 그 뒤부터는 파트너 바꾸기,‘엔드리스 부킹’이 시작된다.

남자 손님 서너 명이 자리잡은 테이블이나 룸으로 안내된 여자 손님들은 친구들과 놀러왔다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일단 뜻이 맞으면 연락처를 주고받고, 조금 더 진전되면 바로 객실로 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 웨이터는 귀띔한다. 지방 대학 무용과에 다닌다는 한 여학생은 “한번도 부킹에 성공한 적은 없지만 늘 기대감을 갖는다”라고 말했다.

이 나이트클럽의 웨이터들이 여성 손님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무조건 팔목을 나꿔채 남자들 테이블에 끌어 앉히는 것만큼이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팔목을 잡힌 여자 손님들 중 이를 뿌리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선택권은 모두 여성 손님들의 몫. 낯선 손님들 사이에 끼어 앉은 자신을 짧은 시간 안에 재미있게 해 주지 못하면 곧바로 ‘순번 대기’하고 있는 다른 테이블로 이동한다. 이제 부킹은 컴퓨터를 부팅하는 것보다도 훨씬 쉬운 일이 되어 버렸다. 신나게 춤을 추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여성, 테이블에서 혼자 맥주를 홀짝거리거나 화장실에서 나오는 여성…. 웨이터들은 가리지 않고 무조건 팔목을 잡고 부지런히 남자들 테이블로 이들을 ‘배송’한다.

양 손에 한 명씩 여자 손님을 끌고 테이블 사이를 종횡 무진 누비는 한 웨이터의 팔목을 붙잡고 물었다. “부킹을 많이 성사시켜 주면 별도의 팁이 얼마나 붙습니까?” 그러나 답변은 간단했다. “그런 것 없어요, 고객 만족이 최우선 아닙니까.” 강남 일대에서 ‘물이 좋다’ ‘부킹이 잘 된다’라는 소문이 나지 않으면 그 업소에는 손님이 끊어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IMF 이후 불황에 허덕이는 업소들 처지에서는 손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물 관리’가 필수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나이트클럽에서는 얼굴이나 몸매가 빼어나거나 ‘잘 노는’여성 손님들을 특별 관리한다. 이른바 ‘푸싱’이라는 제도이다. 특별 이용권이나 할인권을 우송해 주면서 단골 고객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푸싱’도 최근 들어 너무 남발되는 바람에 희소성이 없어졌다. 나이트클럽의 불황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물 관리’위해 잘 노는 여성 특별 관리

부킹이며 푸싱이며 물 관리까지 필수가 되어 버린 나이트클럽은 30∼40대들로서는 도무지 적응하기 어려울 장소이다. 소줏잔을 돌리면서 일단 고기부터 구워 먹고 2차나 3차쯤으로‘발바닥에 때나 벗겨볼까’하며 나이트클럽을 찾던 이들은 전형적인‘고팅’세대였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낮에 나이트클럽 한 모퉁이를 아예 전세 내서 여학생들을 만나던 것을‘고고팅’, 줄여서 ‘고팅’이라고 불렀었다. 이 세대에게 술보다는 춤과 부킹이 전부인 요즘 나이트클럽은 낯설 수밖에 없다. 신나는 댄스 음악과 사이키 조명이 갑자기 꺼지면서 흐느적거리는 음악으로 분위기가 바뀌는 블루스 타임이 나이트클럽에서 인기가 없어진 지도 오래이다.

나이트클럽에서 블루스 타임이 천덕꾸러기로 바뀌면서 기성 세대는 우리 사회의 춤 문화에서 밀려난 것이나 다름없다. 인기 그룹 디제이 덕(DJ DOC)이 관광 버스 춤을 선보이며 ‘젓가락질을 잘 못해도 밥만 잘 먹는’10대에게 쓸데없는 잔소리를 퍼붓지 말라고 기성 세대에 야유를 보낸 것도 어찌 보면 기성 세대를, 일종의 ‘불구’로 보고 있다는 반응인지 모른다. 온몸의 근육을 놓아둔 채 팔과 어깨만으로 추는 ‘관광 버스 춤’에만 익숙한 기성 세대는 이미 10대들의 시각에서 보면 육체적 불구일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생 상대 춤 선생 월수입 50만원

기성 세대에게는 춤이 얼큰한 취기 끝에 묻어나오는 객기 정도라면 10대들에게 춤은 취미요, 생활이요, 탈출구이다. 관심 갖고 보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사회 참여의 통로를 봉쇄당한 그들로서는 ‘비주류의 자기 표현’인 셈이다.

79년생, 열 아홉 살인 김영우군(고려대 병설 보건전문대 식품영양학과 1학년)은 ‘춤 선생’노릇으로 한 달에 50만원이 넘는 부수입을 얻는다. 그러나 중년 여성들을 상대로 컴컴한 조명 아래서 스텝을 밟아 주는 것이 아니라 여대생이나 직장 여성들을 상대로 이른바 ‘나이트 춤’을 가르친다. 이화여대나 연세대 등 명문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전문대 1학년인 그의 제자들이다. 고교 시절부터 춤에 몰두하기 시작한 김군은 텔레비전에서 가수들이 노래 부르는 장면을 녹화해 두었다가 혼자서 맹연습을 해 춤의 대가가 되었다. PC통신에서 여자들이 많이 찾을 만한 방만을 골라 ‘나이트클럽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사람을 대상으로 춤을 가르쳐 주겠다’는 광고를 내고 지난 여름 방학부터 학생들을 모집했다. 현재까지 그의 손을 거쳐간 사람이 적지 않은데, 지금도 7명이 1주일에 한 번씩 김군의 집 거실에 모여 자연스럽게 웨이브를 타는 방법이나 섹시하게 허리를 돌리는 방법 같은 춤 동작을 하나하나 배운다. 한번 강의가 끝나면 복습을 해 오라고 숙제를 내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강남의 나이트클럽으로 ‘제자’들을 이끌고 ‘실습’을 나간다. 전공을 살려 요리사 시험을 준비하는 김군은 “춤은 나의 장래 희망과는 무관한 취미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음악에 맞추어 적당히 흔드는 것이 춤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기성 세대들은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춤판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하철 강남역이나 신천역 일대 나이트클럽을 드나들었던 김군의 눈에 비친 나이트클럽 문화도 흥미롭다. “나이트클럽은 돈 많은 사람이 최고잖아요. 웨이터들에게 돈 많이 쥐어 주면 끝까지 부킹시켜 주고, 부킹 당한 여자들에게도 외제차 모는 사람들이 최고 인기고…. 정말로 춤추러 가는 사람들은 나이트클럽 안 가요. 나이트에서 가수들 춤 추면 너무 튀잖아요. 쪽 팔리게….”

그래서 김씨가 주로 찾는 나이트클럽은 10대들이 많이 찾는, 신천역 주변의 ‘해커’나‘스파크’, 아니면 강남역 뒤쪽의 ‘피즈’ ‘탱고탱고’ 정도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 강남역 주변 나이트클럽에서는 김씨도 ‘노계’취급을 당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신촌과 강남역 일대에 생기기 시작한 록 바(rock bar)는 춤추기 좋아하는 10대들에게는 나이트클럽을 대신할 만한 최적의 장소이다(60쪽 상자 기사 참조). 여기서 엄정화의‘포이즌’이나 김현정의‘혼자 한 사랑’에 맞추어 똑같이 춤을 출 수 있으면 일단 성공이다. 하지만 이렇게 가수들 흉내를 내려는 사람들이 록 바로 몰려들기 때문에‘개성이 없어서 싫다’는 10대들도 적지 않다. 공간만 있으면 춤을 출 수 있는 10대들에게 나이트클럽이니 록 바니 하는 공간 구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이쯤 되면 댄스 페스티벌에서 흥이 머리 꼭대기에 이르도록 춤에 몰입하다가 속옷을 벗어던졌다는 여자 손님을 꼭 ‘바람 난 암캐’처럼 취급해 버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한 사람 때문에 강남의 유명 나이트클럽들은 세무 조사라는 철퇴를 맞기도 했지만, 반대로 ‘물 좋은 나이트’의 진가가 무엇인지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부수 효과를 거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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