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무는 장교 의문사,의혹 뭉게뭉게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8.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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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 중위 이어, 박도진 중위 등 3명도 유족들이 사인 규명 요구
올들어 <시사저널>이 다섯 차례에 걸쳐 추적 보도한 판문점 경비부대 소대장 김 훈 중위 의문사 사건에 대해 정치권에서 진상 파악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다. 국민회의 임복진·장을병 의원과 자민련 이동복 의원, 그리고 한나라당 하경근·정창화 의원 등 국방위 소속 의원 5명은 최근 `‘육군 김 훈 중위 사망 진상 파악 소위원회’(위원장 하경근 의원)를 구성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김 훈 중위 의문사 사건은 현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2월24일 그가 판문점 공동 경비 구역(JSA)내 한 벙커에서 근무중 의문의 총상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사건 직후 군 당국은 초동 수사도 없이 서둘러 자살이라고 발표했다가 유족(김 척 전 1군단장)의 집요한 의혹 제기에 떠밀려 수사에 착수했으나 역시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살’이라고 결과를 발표했다. 그 뒤 사건을 은폐 조작한 의혹이 꼬리를 물자 육군본부 고등검찰부가 사건을 이첩받아 재수사에 들어갔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김 훈 중위 사건의 경우, 누구보다도 군 내부 실정을 잘 아는 육군 고급 장성 출신인 부친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로 타살 의혹을 파헤쳐 들어가고 있지만, 유사한 사건을 겪고도 알려지지 않은 채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족들이 적지 않다.

순직 처리 약속해 놓고 발뺌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4월12일 안동에 있는 육군 50사단에서 발생한 박도진 중위(26) 의문사 사건이다. 서울시립대를 졸업하고 학군 35기로 임관한 박중위는 이날 소속 부대 장교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사건 초기에 당황한 부대측이 안동소방서 119구급대에 연락해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출동했다. 소방대원들은 이미 사망한 박중위의 시신을 들춰보며 육안 검시를 마친 뒤 현장에 먼저 온 군의관으로부터 ‘저산소증으로 질식사했으니 돌아가라’는 통보를 받고 발길을 돌렸다. 이에 대해 당시 출동한 소방서의 한 관계자는 “사건 현장을 수없이 다녔지만 군의관의 말처럼 저산소증 때문이라면 그런 모습으로 죽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유족이 언젠가 소방대를 찾아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어쨌든 현장에서 곧바로 사망 원인까지 단정한 군부대측은 곧바로 박중위 유족에게 ‘자살’로 통보했다. 그날 오후 사건 현장에 도착한 박중위의 부친 박규완씨(54)는 군부대측으로부터 ‘비닐을 뒤집어쓰고 자위 행위를 하다 질식사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어서 부대측은 유족이 조용히 있어 주면 순직 처리해 국립묘지에 안장토록 한다고 약속한 뒤 부검 후 화장 처리를 서둘렀다. 당시 상황에 대해 박규완씨는 “부모로서 건강한 자식이 자위 행위를 하다 질식사했다는 말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이미 사망한 뒤여서 그 모양으로 아들을 잃었다는 얘기가 나돌까 민망해 부대측이 약속한 순직 처리를 믿고 사인 규명 요구를 포기했다”라고 말했다.그러나 사태는 유족의 가슴에 두 번 못질하는 쪽으로 전개되었다. 군 당국은 사건이 난 지 한달 후쯤 유족에게 연락해 ‘공상 처리를 할 수 없으니 유골을 가져가라’고 통보한 것이다. 군 당국에 기만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박중위의 유족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휩싸인 채 국방부에 사건 진상 규명과 공상 처리를 호소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당초의 약속을 뒤집은 이유에 대해 부대측은 “우리는 영내 관사에서 취침중 사고로 사망한 경우를 적용해 순직 상신을 했지만 육군본부가 심사 과정에서 본인의 중대 과실에 의한 사망이라고 판단해 공상 처리를 거부했다”라고 발뺌했다. 군 당국의 이런 태도로 박중위의 가정은 풍비 박산이 났다. 어머니는 믿었던 군 당국이 공상 처리 불가 통보를 해온 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밤이면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정처없이 거리를 떠도는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가정 파괴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박중위의 유족들은 현재 본격적인 사인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국방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유족이 제기하는 타살 의혹 주장은 다음과 같다.

△박중위는 당시 학군 35기 부회장을 맡고 있었으며 사망 2개월 전 장기 복무를 지원했을 만큼 군 생활에 투철한 의지를 보여 자살할 이유가 없다. △군 수사 기록은 박중위가 성적 충동을 높이기 위해 머리에 비닐 봉지를 뒤집어쓰고 두 손으로 비닐을 잡은 채 매트리스에 성기를 마찰시키다 절정에 달하자 나른한 상태에서 저산소증으로 질식사했다고 했지만 상식적으로 그런 방법의 자위 행위는 가능하지 않다. 일반 의료진들도 그렇게 사망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사건 현장에 찾아가 육안 검시를 한 119소방대원도 그런 사망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이들이 본 사망자의 최초 의상은 군 당국의 수사 기록과 차이가 난다. △박중위가 숙소로 돌아오기 전에 방문이 열린 채 불이 켜져 있었다는 부대원의 진술로 보아 누군가 박중위 방에 먼저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다. △설령 군 당국의 사인을 받아들이더라도 자위 행위를 중과실이라는 법률적 용어를 들어 공상 불가로 처리하는 것은 법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다. 초동 수사도 하지 않고 “자살했다” 발표

이런 이유를 들어 유족측은 사망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한편 ‘병영내 숙소에서 의문사한 것을 마치 `자위 행위라는 범죄 행위를 저지르다 사망했으므로 공상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처리한 것은 너무나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육군 장교로 자식을 군에 보냈다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유족은 또 있다. 지난 8월26일 육군 5사단 소속 손철호 소위(25)가 근무지인 전방 철책선 부근에서 수류탄 폭발로 사망한 사건이다. 군 당국은 사고 직후 초동 수사도 하지 않고 언론(연합통신)에 손소위가 수류탄으로 자폭했다고 흘렸다. 그 뒤 유족이 항의하자 군 헌병대는 부대원들을 상대로 수사를 벌여, 사고 당시 손소위 주위에 아무도 없었고, 그날 따라 손소위가 부대원들과 떨어져 혼자 지냈으며 수류탄이 손소위 본인 소지품이었다는 점을 들어 ‘염세적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최근 접수된 의문사 관련 민원 32건

그러나 손소위의 유족측은 군 당국의 수사가 자살로 꿰어맞춘 뒤 모든 정황을 몰고 가는 것이라며 정확한 사인 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유족 대표인 손소위의 매형 오정석씨는 “손소위는 사고 당시 1주일만 있으면 후방인 의정부로 전출하기로 되어 있었다. 여자 친구에게는 전출 직후 받게 되는 휴가를 이용해 동해안으로 같이 놀러가자고 약속하고, 기차표를 사놓으라는 편지까지 보냈는데 군 생활에 염증을 느껴 유서 한 장 없이 자폭했다는 군의 발표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손소위를 그런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을 정확히 규명해 달라는 것이다. 유족측은 현재 서명 명부를 첨부해 국방부장관 앞으로 이 사건 재수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쓰고 있다.

올 들어 발생한 장교의 의문사 가운데는 군 당국의 자살 처리에 반대한 유족의 반박으로 시신이 3개월째 민간 병원(경북 김천의료원)에 방치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해군 9531함대 소속 김태균 중위(26) 변사 사건이 그것이다.

지난해 한국해양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학사 장교로 해군 소위가 된 고인은 지난 7월 1일 중위로 진급한 뒤 해군 9531부대 보급 장교로 부임했다. 그로부터 40일 만인 지난 8월10일 진해 해군 기지에 정박해 있던 소속 함대에서 근무 도중 ‘괴전화’를 받고 사색이 되어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가 9월8일 경북 김천에 있는 한 야산에서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되었다.

시신을 발견한 후 해군 당국은 김중위의 유족에게 `‘개인적 이유로 부대를 이탈했다가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통보했다. 김중위는 사망 추정일(8월15일)로부터 20여 일이 지난 뒤 시체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부검 결과만으로 정확하게 사인을 규명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해군측이 자살 결론을 내리자 유족은 청와대·국방부 등으로 진정서를 제출해 사건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해군 함선 내의 보급 장교로 근무하던 김중위가 내부에 누적된 보급품 비리를 확인하게 되면서 누군가의 유인에 의해 타살된 뒤 목을 맨 자살 시체로 위장되었다는 주장이다. 김중위의 부친 김용복씨(53)는 그 근거로 김중위가 부대를 이탈하던 날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 사색이 되어 나갔으며, 행방 불명 후 3일 만인 8월13일 유족이 함정을 방문했을 때 상급자들이 ‘광개토대왕함 소속 중위도 자살했다지?’라고 말한 점(김중위는 그로부터 이틀 뒤에 사망 시체로 방치되기 시작함) 등을 들고 있다. 또 목을 맨 자국이 자살 시신에서 흔히 나타나는 목 뒷부분에 있지 않고 왼쪽 귀에 있으며, 앞니가 부러진 상태인데도 수사 당국은 날짐승이 쪼아서 부러졌다고 주장하는 점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자살했다면 사망 후 두 다리가 일직선이 되어야 하는데 오른쪽 정강이가 ㄱ자로 굽혀진 상태로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다른 곳에서 타살된 후 비좁은 가방에 담겨 옮겨졌음이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유족의 반발이 거세자 해군 수사 당국은 현재 김중위의 시신 재부검 작업을 벌이고 있다. 김중위가 소속해 있던 군함의 함장은 11월10일 기자와 동행한 유족측을 만나 “부하 장교의 순직 처리를 위해 관계 법령을 검토했지만 기본 임무 위치를 이탈한 뒤 사망했으므로 법적으로 공상 처리가 어려우니 유족들이 시신을 가져가라”고 말했다. 이런 통보에 대해 유족측은 부대 안에 김중위를 유인해 타살한 혐의자가 있다고 주장하며 사건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는 한치도 물러설 수 없다고 맞섰다. 결국 양측의 지루한 공방으로 시종 일관한 이날 면담은 서로 불신만 키운 채 끝났다.

이처럼 군에 보낸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는 유족이 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 올 들어 10개월 동안 국방부에 접수된 군대내 의문사 관련 민원만도 32건에 이른다(표 참조). 이 기간에 특히 장교들의 의문사가 적잖이 발생했다. 군에 자식을 보내 놓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자살 통보를 받은 부모의 심정은 장교나 사병을 가릴 것 없겠지만 장교의 경우 사건 처리 과정에서 또 다른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 뚜렷한 원인 규명도 못해 주는 자살 통보와 직업 군인의 길을 걷던 자식의 명예를 위해 한가닥 희망을 품은 국립묘지 안장을 군 당국이 거부하는 순서가 그것이다.

장교의 경우 임관 순간부터 생사를 국가에 맡기고, 국가는 그들의 생사를 성실한 자세로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런 사태가 대다수 직업 군인의 사기에 영향을 주리라는 측면에서도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도 국방 당국은 군대내 사망 사건에 대한 군 수사기관의 현행 초동 수사 체계와 유족에 대한 대응 태도가 지닌 문제점을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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