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 사업 문제점,국방부는 알고 있다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8.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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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국방부 특별 평가팀 작성 ‘조사 자료 요약본’ 내용 분석
국방 예산 2억9백44만 달러를 쏟아붓는 통신 감청용 정찰기 도입 사업(암호명 백두 사업)을 둘러싸고 갖가지 의혹과 논란이 일고 있다. <시사저널>은 백두 사업을 취재하면서 군사 비밀로 분류된 백두 사업 관련 자료들을 필사하고 백두 사업에 직접 또는 간접 참여한 전문가들의 증언을 청취했다. <시사저널>은 도입 장비의 성능이나 검증에 이상이 있거나 사업 진행 방식과 협약 체결에 잘못이 있다면 군사 기밀로 분류된 정보라도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실행 효과가 의심스럽고 예산만 낭비하는 사업을 군사 기밀이라고 해서 무조건 덮어 놓으면 비리가 싹트고 군 전력 증강에도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편집자>

‘백두 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 국회 국방위원회가 국방부 감사를 마치고 내린 결론이다. 국방위 소속 임복진 의원(국민회의)은 “국방위는 비공개 회의를 열고 국정 감사 기간이 끝났어도 백두 사업에 대한 추가 감사를 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은 국방부 감사 비공개 회의에서 계약 체결 방식과 장비 선정에 하자가 있었고, 장비 성능을 한국군이 검증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시사저널> 취재진이 필사한 국방부 특별 평가팀 평가 요약본에 따르면, 백두 사업은 계약 체결 방식, 시스템 성능과 시험, 소프트웨어 등 사업 전분야에 걸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사업을 주관하는 국방부 정보본부는 지난 11월4일 백두 시스템이 한국군이 요구하는 작전 요구 성능(ROC:Request Operation Capability)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결론짓고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주임무 장비, 제 성능 발휘할지 의문

백두 시스템은 군사 분계선 주변 상공에 통신 감청용 항공기를 띄워 북한에서 발생하는 전파와 주파수를 비롯해 갖가지 전자파를 수집·분석·처리·가공해 중요 정보를 얻는 첨단 정보 수집 장비이다. 국방부는 주임무 장비로 미국 E시스템 사가 제작한 원거리 조종 감시 체계(RCSS)를 도입하고, 장비를 탑재할 항공기로 미국 레이시온 사가 제작한 호커 800XP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백두 시스템은 일부 언론이 밝힌 것과 달리 △수집 장비 4식 △공중 신호 수집 항공기 4식 △지상 수신 처리 시스템 1식으로 구성된다.

백두 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지금까지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북한 전략 정보를 독자적으로 얻게 된다. 한국군이 현재 북한의 전략 신호를 수집할 수 있는 범위는 비무장 지대 이북 30∼40㎞에 불과하다. 백두 사업은 금강 사업과 함께 진행된다. 금강 사업은 영상 레이더를 실은 정찰기를 띄워 평양 이남에 있는 축구공만한 물체까지 촬영·식별하는 장비를 획득하는 사업이다. 이 두 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70만 한국군은 눈과 귀를 얻게 된다. 백두 사업은 96년 시작해 2001년에 끝난다. 91년 9월 국방부는 주임무 장비와 탑재 항공기를 외국에서 직구매하는 방식을 채택했고, 93년 5월에는 미국 장비를 FMS 방식, 즉 미국 정부가 보증하고 민간 업체가 개발하는 방식으로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이양호 당시 국방부장관과 무기 중개업체인 IMCL 린다 김(한국명 김귀옥) 회장이 장비와 항공기 선정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비리 의혹이 싹텄다. 96년 6월 국방부는 확대 방위력 개선위원회를 열고 사업 집행을 승인했다.

97년 6월 백두 사업 운용 부대인 ○○○○부대가 백두 시스템이 작전 요구 성능에 미치지 못한다고 밝히고 체계규격서(계약서)에 동의하기를 거부하면서 백두 사업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부대는 백두 사업 예비 설계안(PDR·Prelimiary Design Process)을 검토한 뒤 4개 항목에 이의를 제기했다. ○○○○부대가 제기한 4개 항목은 2급 군사 비밀로 분류되어 있어 상세히 밝혀진 적이 없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입수한 ○○○○부대의 지적 사항을 살펴보면, 주임무 장비가 제 성능을 발휘할지 의심스럽다.

우선 통신 첩보 수집(COMMINT·Communi- cation Intelligence) 장치의 방향 탐지 정확도가 검증되지 않았다. 이 장비는 수평과 수직 ±10°만 검증할 수 있는데, 이는 운용 부대 요구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통신 첩보 수집 장비는 북한내 통신 장비에 대한 정보와 통신 내용을 수집한다.

그 다음으로 지적되는 것은 전자파를 발생하는 물체에 대한 정보를 얻는 전자 신호 첩보 수집(ELINT·Eletronic Intelligence) 장비. 이 장비의 방향 탐지 정확도는 시계 120°가 요구되지만 정방향에서만 검증이 되었다. 또 항공기가 지상 중계소 바로 위를 비행할 때 데이터를 주고받는 데 차질이 생겼다. 송·수신 사각 지대가 나타난 것이다.

근거리 통신을 지원하는 무지향성 수직 안테나를 추가 설치하는 데도 하자가 발생했다. 마지막으로, 수집한 정보를 분석·처리·가공하는 컴퓨터 센터인 지상분석처리소(GIPP)에 온도 표준을 반영하지 않았다. 군사 장비는 일정 기준의 온도·먼지·진동·습도에서 견딜 수 있게끔 설계해야 한다.

논란이 일자 국방부 정보본부는 97년 10월 백두 사업을 자체 평가했다. 정보본부는 ○○○○부대와 전혀 다른 평가를 내렸다. 정보본부는 통신 첩보 수집 장비가 미군이 가진 U2기나 RC12와 대등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전자 첩보 수집 장비도 한국군의 작전 요구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항공기와 중계소 사이 통신 불가 지역은 전체 통신의 0.01% 이하이고, 그것마저 항공기 비행 경로를 적절히 선정하면 영향 요인을 배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정보본부는 사업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태가 급변했다. 백두 사업에 대한 비리 의혹이 추가로 불거져 나온 것이다. 올해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군 전력 증강 사업을 총체적으로 정밀 조사했으며, 지난 6월 국방부 감사관실은 백두 사업에 대한 감사에서 미흡한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 감사관실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곳은 감사원이었다. 감사원은 지난 7월부터 백두 사업에 대한 전면 감사에 들어갔다. 감사원 감사는 올해 12월까지 계속된다. 감사원은 7월 말 초기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백두 사업 추진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전문 지식이 부족해 감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후 국방부는 전문가로 구성된 자체 특별 평가팀에 백두 사업을 정밀 평가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 특별 평가팀은 국방과학연구소 임중수 박사를 비롯해 정보 시스템 전문가 18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각각 국방과학연구소·한국국방연구원·국방품질관리연구소·국방정보체계연구소에서 차출되었다. 공군과 조달본부도 특별 평가에 참여했다. 군 산하 연구기관들은 전자 통신 첩보 수집 장비·중계 시스템·지상 처리 시스템·전파 시스템 등을 평가했고, 공군은 항공기 성능을 조사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전자·통신 첩보 수집 장비를 비롯해 주요 시스템을, 한국국방연구원은 라이프 사이클 비용을 평가했다. 라이프 사이클 비용 평가는 장비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비용을 산정하는 것이다. 국방품질연구소는 품질 보증·성능 검증 방법·신뢰도를 조사했다. 국방정보체계연구소는 이 연구를 총괄했다. 조달본부는 계약 체결 과정과 내용을 조사했다.

국방부는 9월 초 나온 특별 평가팀 평가 내용을 2급 비밀로 분류해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취재 과정에서 필사한 특별 평가팀 평가 자료 요약본 내용은, ○○○○부대가 제기한 사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전 요구 성능 충족 여부 검증 안돼

우선 통신·전자 첩보 수집 장비의 성능이 체계규격서(SSS·계약서)에 명시된 작전 요구 능력을 충족하는지 검증하기 곤란했다. 다음으로 전자 첩보 장비에는 불규칙 주파수를 자동 탐지하는 기능(Radio Frequency Agile)이 반영되지 않았다. 항공기에 요구되는 표준 대기 조건도 반영되지 않았다. 또 불규칙 주파수를 자동 탐지하는 기능을 체계규격서에 반영하고 통신이 되지 않는 범위를 줄이기 위해 미국과 다시 협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스템에 들어가는 갖가지 소프트웨어가 작전 요구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지 검증할 방법이 빠져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소프트웨어는 첨단 정보전 장비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문이다. 소프트웨어를 이전받는 방식도 문제되었다.

그러나 국방부 정보본부와 획득관리실은 특별 평가팀이 수행한 평가 과정과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반면 국방부 감사관실은 평가팀 선정 과정과 평가의 객관성을 감사했으나 문제가 없다고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 특별 평가팀에 참여한 연구진들은 국방부 감사실의 조사를 받았다. 결국 보고서를 ‘한·미간 협상 때 협상 자료로 이용한다’라고 마무리하면서 이 문제는 유야무야 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후 백두 사업과 관련된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가 진전을 보였다. 서울 지검 공안1부와 국군 기무사령부는 지난 10월2일 이와수 대령(백두 사업 주미 연락단장)을 비롯한 영관급 장교 4명, 정찰기 운용 부대 소속 1급 군무원 권기대씨(예비역 육군 준장), E시스템의 로비 업체인 IMCL 사 관계자 신동윤 사장과 김장환씨 등을 군사기밀보호법과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하지만 권씨를 제외하고 모두 불기소 처리되어 석방되었다.

10월 하순부터 국회 국방위가 벌인 국방부 국정 감사에서 국회의원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단어는 백두 사업이었다. 국민회의 임복진 의원은, 시스템 개발 업체가 미국내 통신 감청용 사업에 적용하는 기술 표준 30개 항목(32쪽 딸린 기사 참조)을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기술 표준은 체계규격서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지난해 미국 정부가 보낸 체계규격서를 국방부가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서명했기 때문이다. 누락된 기술 표준에는 시그널을 분석·처리하는 지상 처리 시스템과 첩보 수집 장비의 성능에 영향을 주는 소프트웨어 표준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논란을 일으킨 항목을 체계규격서에 반영하기 위해 지난 10월29∼30일 미국 공군체계사령부(NCC)와 재협상을 벌였다. 국방부는 미국측이 체계규격서에 성능과 검증 항목에서 미흡한 점을 수정할 것을 약속했다고 밝히고, 11월4일 백두 사업을 강행할 뜻을 비추었다. 국방부 획득관리관 이원영 소장은 “백두 사업의 문제점은 한·미간 협의를 통해 해결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소장은 또 지금 백두 사업을 중단하면 국방 예산 1억3천만 달러를 잃게 되고 자주 국방의 기틀을 세울 기회도 놓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설사 한·미간 협의를 통해 몇 가지 지적 사항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백두 사업이 아무 탈 없이 굴러가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백두 사업은 사업 초기부터 난항을 예고했다. 우선 첨단 정보전 장비와 시스템 전문가가 배제되었다. 전문가가 없다 보니 시스템에 내장되는 소프트웨어를 기존 제품 가운데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전량 개발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없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이미 개발된 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은 상식이다. 따라서 일부 부품이라도 기존 제품을 구입했다면 그만큼 예산을 아낄 수 있었다. 기술 내역과 국제 표준에 문외한인 군 고위층이 비용과 성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멋대로 결정해 예산을 낭비한 것이 아니냐 하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획득관리관 이원영 소장은 “만일 소프트웨어를 따로 구입해 시스템을 구성한 뒤 소프트웨어끼리 맞지 않거나 일부 소프트웨어에 하자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일부 부품이나 소프트웨어에 하자가 생기면 미국 정부가 나서서 보수해 주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소장은 사업을 안전하게 추진하기 위해 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내 시스템 통합(SI) 업체와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도 첨단 시스템을 설계·구성하는 제너럴 시스템 엔지니어가 적지 않다. 민간 시스템 통합 업체에서 근무하는 한 엔지니어는 이렇게 말한다. “국내 민간 연구소에는 외국 유명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한 시스템 엔지니어가 많다. 백두 시스템을 설계·통합·시험할 수 있는 인재는 충분하다.” 이 엔지니어는 첨단 시스템 기술과 관리를 모르는 군 고위층이 무기 획득 사업을 주무르기 때문에 미국 업체로부터 바가지를 쓰고,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백두 사업의 파행은 계약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계약 체결 과정에서 한·미 정부 사이에 역할과 책임이 명쾌하게 규정되지 않았다. 계약의 큰 줄기를 규정한 체계규격서를 작성하면서 작업기술서(SOW)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업기술서 내용이 부실한 탓에 개발 과정에서 일부 공정을 생략하고, 시스템 설계 검토 회의(SDR)를 수행하지 않았으며, 주요 산출물을 문서로 남기지 않았다. 또 작업 분할 구조(WBS)를 사업 초기부터 체계적으로 개발하지 않아, 사업이 진행될수록 일정 관리·비용 통제·위험 관리·범위 관리·통합 관리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가 곤란했다.

무기 획득 사업은 전문가 집단에 맡겨야

계약 자체가 충실하지 못하다 보니 계약 요구 자료 목록(CDRL)에 많은 항목이 빠져 개발 과정을 관리하기 쉽지 않았다. 시스템 개발 업체인 레이시온 사는 비용 절감을 내세우며 백두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적용해야 할 주요 표준을 고의로 빠뜨린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 논의에서 아예 배제되었다.

백두 사업을 강행하려는 국방부의 의지가 확고하므로 백두 시스템이 실전에 배치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마무리를 아무리 잘해도 엉망이 되기 마련이다. 계약 과정과 사업 초기에 빚어진 혼선 때문에 앞으로 백두 시스템을 운영·유지하고 성능을 유지하는 데 추가 예산이 많이 들 것으로 보인다.

자주 국방을 실현하기 위한 방위력 증강 사업은 계속 진행하되 시행 착오는 줄여야 한다. 해마다 방위력 증강 사업에 국민 세금 4조원 가량이 지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동복 의원은 국방부 감사장에서 “백두 사업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매니지먼트(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발생했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앞으로 무기 획득 사업은 군 고위층이 주관할 것이 아니라 미국 국방 첨단 연구 및 프로젝트국(DARPA) 같은 전문가 집단에 맡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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