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사 된 라종일 전 외교안보보좌관 인터뷰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4.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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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더 이상 뒷돈 바라선 안된다”
지난 3월5일 정부는 해외 공관장 23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일본 주재 대사에는 라종일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임명되었다. 오랫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외교 안보를 조언해온 라종일 대사는 국민의정부 시절 햇볕정책의 틀을 닦고, 국정원 개혁의 설계사 노릇을 했다. 참여정부에서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이자 외교안보보좌관을 맡아 통일·안보·외교 라인을 조율했다. 라종일 대사를 만나 참여정부 1년의 외교 정책 성과와 신임 일본대사로서의 포부를 들었다.

참여정부의 외교 정책 1년을 평가한다면?
외교 노선이 많이 안정되었다. 어떤 사람은 이번 정권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졌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1945년 이후 미국과의 관계는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친미 대통령으로 꼽히는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 대단히 저항적이고 갈등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제3 세계 지도자였다. 경제 발전, 민주화, 햇볕정책을 놓고도 미국과 갈등이 있었다. 우리 외교 라인은 이 갈등을 잘 조정해 한·미 관계를 안정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 북한과의 관계를 잘 조정하는 일에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본다.

1년 동안 남북 관계가 진전하지 않았다.
핵 문제와 특검 문제 등 악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북한 관계는 잘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지난해 개성공단과 철도 연결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수많은 문화·체육 행사가 열려, 양적으로도 가장 활발한 남북 교류가 있었던 한 해였다. 이를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남북 관계가 더뎌 보인다. 남북 문제를 푸는 데 어려운 점이 무엇인가?
우리와 미국과의 관계가 남북 관계와 상충하지 않고 상생하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참여정부 1년 동안 북한과 상충하지 않았다. 6자 회담도 기본적인 원칙에는 합의했다. 외교의 큰 틀은 완성했다. 북핵 회담에서 다자 협력 체제라는 ‘새로운 아기’가 잉태되도록 만들었다. 이제 건강하게 태어나 성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정부에서 햇볕정책 입안에 참여한 핵심 인물이다. 참여정부의 대북 정책에서도 핵심에 서 있었는데. 대북 특검을 추진한 것이 남북 관계를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는가?
명백한 불법이어서 특검을 안 할 수 없었다. 남북 관계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불법적인 관계로는 발전이 없다. 꺼림칙했던 국민 정서를 해소할 수 있었다. 결국 북한에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북한도 스스로 돈을 만들어야지 뒷돈을 바라서는 안된다. 우방에게도 앞으로 남북 관계가 투명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특검이 남북 관계에 악영향만을 미친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노대통령이 사면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우리 나라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성 차별, 지역 차별, 학력 차별이 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차별을 완화하려고 노력한다는 맥락에서 두 대통령은 서로 비슷하다. 외교적으로도 공통점이 많다. 김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추진했고, 노대통령은 햇볕정책 2기인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겠다는 초제로섬 게임을 하던 남북 관계가 햇볕정책으로 인해 갈등의 정도가 끌어내려져 있다. 김대통령 시절이 좀 무리해서라도 교류를 해야만 하는 시기였다면 이제는 제도적으로 북한에 요구하고 할 말은 해야 하는 시점이다. 1기에서 정·경이 분리되었다면 2기에서는 두 부문이 함께 가야 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구조상 외교 라인의 혼선을 가져온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데.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지금 형태로 준비된 것으로 안다. 어떤 제도건 제도를 운영하는 인물과 운영의 묘가 잘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 운영이 잘 되고 있다고 본다.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수장으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 평가도 있다.
내게 부과된 임무가 미국과 관계를 안정되게 유지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활성화하는 것이었다. 비교적 성공했다고 본다.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면 80%는 된다.

한국 외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한국의 미래는 아시아 발전과 직결된다는 세계사적 의미를 가진다. 나는 강국과 대국으로 분리해서 생각한다. 강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월등한 나라다. 대국은 다른 나라에 도덕적·발전적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나라다. 우리 나라가 대국이 되어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우리 민족은 지난 세기 고난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중요한 메시지가 안 나왔다. 인도 독립운동 과정에서의 간디나 남아공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만델라처럼 의미를 부여해 세계에 그 메시지를 전파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햇볕정책이 우리 나라 통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가는 세계적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우리 민족은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반도기를 다시 생각했으면 한다. 인류의 보편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으면 한다. 프랑스 혁명에서 쓰인 것은 프랑스 지도가 아니라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삼색 깃발이었다.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동아시아의 잠재적 역량은 크지만 나라간 협동 체계가 잘 갖춰지지 않았다. 가장 큰 요인은 리더십 부재다. 국경을 넘어 공유할 수 있는 가치, 경험과 인식을 도출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본다. 유럽은 기능 통합 이전에 가치를 공유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으면 유럽연합이 될 수 없다. 동아시아는 공통적인 가치의 공유라는 측면에서 아직 역사 인식이 부족하다. 큰 문제다. 일본에 대사로 가겠다는 것도 이런 측면이 좀 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인식에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 노대통령도 이에 대해 지적했는데.
일본 지도자들에게 할 말은 하되 우리가 일본인들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를 높이 평가한다. 도덕적으로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좋은 입장을 정리했다고 본다. 소설가 한수산씨의 글처럼 일본과의 관계는 ‘맑음, 때때로 흐림’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과도 말이 통하는 유일한 한국 외교관으로 알려져 있다. 왜 일본 대사인가?
내가 자리를 비워도 다른 인재가 많다. 한·일 관계는 양자만의 관계가 아니다. 한·미·일 세 나라 사이는 미국을 통해 동맹 관계다. 한·미·일, 한·중·일이 협력 관계, 공동체 관계로 묶여 있어야 한다. 한·일 관계에서는 국가 간의 이해 관계를 떠나 시민 사회의 협조가 자리 잡고 있어 희망적이라고 본다.

일본 주재 대사로서 중점을 두는 분야는?
한·일 관계를 공고히 해서 한·미·일과 동아시아 전체를 기초가 단단한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큰 포부가 있다. 지난해 셔틀 노선과 수학여행 학생 비자 면제 등 한·일 관계에서는 많은 진전을 보였다. 이를 발전시키겠다. 4월에 재개되는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잘 이끌어내고, 북한 핵 문제 해결에 관해서도 일본과 잘 협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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