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국 사장 투신 자살 미스테리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4.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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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200억원 조성→‘치부’ 숨기려 연임 청탁→모든 것 드러나자 자살
3월11일, 아침부터 하늘이 노랬다. 심한 황사 때문에 시계(視界)가 뚝 떨어져 있었다. 외출을 삼가라는 황사 주의보가 올 들어 처음으로 내려졌다.

대우건설 남상국 전 사장(59)도 논현동 자택에 머물렀다. 지난해 12월 사장 직에서 물러난 그는 사장 상담역으로 대우빌딩 25층 사무실로 출근하곤 했다. 하지만 이 날 남씨는 출근하지 않았다. 오전 10시 그는 가족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았다.

노대통령이 회견 도중 “남상국 사장은 청탁했다는 이유로 연임이 안되게 했다”라고 말했다. 남씨 얼굴이 굳어졌다. 오전 11시, 그는 회사 근처에서 부하 직원과 약속이 있다며 옷을 갈아입었다. 부인 김 아무개씨(53)는 느낌이 이상했다. 부인은 함께 외출하자고 했지만 남씨는 혼자 가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집을 나선 남사장은 부인 승용차를 직접 운전했다.

오후 1시, 부인 김씨는 대우건설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이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오지 않았다.” 불길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전화가 또 울렸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경찰이었다. 한남대교에서 발견된 차의 소유자가 맞는지 물어온 것이다.

남사장은 대우빌딩으로 향하다가 한남대교 남단에서 차를 세웠다. 대우건설 신 아무개 법무팀장에게 “내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다”라고 전화한 뒤, 그는 한강에 몸을 던졌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다. 부인 김씨는 “기자회견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부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3월11일 당일 정황만 보면 남씨의 죽음은 부인 말대로 대통령 기자회견이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비극은 지난해로 거슬러올라간다. 그가 짊어지고 간 ‘짐’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2일 대우건설 채권단은 경영진 추천위원회를 열어 남사장 대신 박세흠 전무를 신임 사장으로 뽑았다. 노대통령이 밝힌 대로 대통령의 형 건평씨에 대한 로비가 역풍을 맞아 연임에 실패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사장은 긴급 체포되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검사 5명, 수사진 60명을 동원해 대우건설을 압수 수색했다. 검사 1명과 수사진 20명이 투입되는 관례에 비추어 이례적인 규모였다. 대규모 압수 수색으로 검찰은 ‘치부책’을 손에 넣었다. 뜻밖의 수확이었다. 검찰은 3백억원대 비자금을 확인했다.

검찰은 남사장을 상대로 정·관계 로비를 추궁했다. 정대철(3억원) 안희정(1억7천5백만원) 박상규(2억원) 송영진(2억원) 서정우(15억원) 등 정치권 인사의 불법 정치 자금 수수가 속속 밝혀졌다. 워크아웃 기업이어서 정치 자금을 제공할 수 없는데도 경선 자금부터 대선 자금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했다. 남사장은 1월27일까지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을 번갈아가며 출퇴근 조사를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처음에는 비협조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시인했다”라고 말했다.
남사장이 짊어진 짐은 1999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그 해 대우건설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그때 남사장이 구원 투수로 나섰다. 그는 ‘제2의 대우 신화’를 위해 현장을 누볐다. 대우건설은 2002년 건설 수주 2위, 2003년에는 1위에 올랐다. 지난해 대우건설은 3년 4개월 만에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했다. 그 덕에 지난해 12월 남사장은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건설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건설업계에서 그는 워크아웃 기업을 일으켜 세운 뛰어난 경영자로 통했다.

그런 그가 1999년부터 채권단 몰래 딴 주머니를 찼다. 추측이 난무했다. 재벌 오너도 아닌 전문 경영인이 검은돈을 조성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우건설 노동조합 관계자는 “비자금 경영이 알려졌을 때 직원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라고 말했다. 그가 검은돈을 조성한 이유를 업계에서는 두 가지로 본다. 워크아웃 졸업비와 ‘김우중 보험금’이다.

건설업계 관행에 따라 공사 수주를 위해 정치권뿐 아니라 관계에까지 광범위하게 로비를 했고, 해외에 체류하는 김우중 전 회장의 무사 귀환을 위한 보험용으로 정치권에 목돈을 건넸으리라는 그럴듯한 소문이 돌았다. ‘김우중 보험금설’은 남사장의 이력 때문에 나왔다. 남사장은 김우중 전 회장의 경기고 후배로서 최측근 인사다. 검찰 관계자는 “김우중씨와 관련해서도 물었지만 부인했다”라고 말했다.

3월6일 남사장은 다시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특수 2부가 아니라 특수 1부였다. 문제의 노건평씨 로비 관련 조사였다. 민경찬 펀드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방재선씨를 수사하다가 남사장의 노건평씨 로비 사실을 밝혀냈다.

방씨는 남사장과 10년 지기. 3월12일 영등포구치소에서 기자를 면회한 방씨는 “10년 전부터 남사장을 알고 지냈다”라고 말했다. 방재선씨는 아침 신문을 보고 남씨의 자살을 알았다고 했다. 검찰에 따르면, 방씨와 함께 구속된 박세진씨 등은 민경찬씨 소개로 건평씨를 만났다. 8월부터 방씨 등은 건평씨에게 수 차례에 걸쳐 ‘대우건설 대표이사 결정권을 가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청와대를 통해 청탁해서 남사장을 유임되게 도와 달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8월29일 하얏트호텔 일식당 아카사카에서 남사장은 건평씨를 만났다. 9월5일에는 방씨와 민경찬씨 등이 건평씨 집을 직접 찾았다.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건평씨가 안방으로 들어가자 박세진씨가 쫓아 들어갔다. 박씨는 대우건설에서 드리는 선물이라며 건평씨에게 3천만원이 든 쇼핑백을 전달했다. 건평씨는 평범한 선물로 알고 받았다가 돌려주었다고 해명했다. 구속된 방재선씨는 “돌려받을 때도 진영에 직접 내려가 받았다. 건평씨가 돌려주면서 별 말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방씨는 건평씨와 관련된 말을 아꼈다.

남사장이 건평씨에게까지 연임 로비에 매달린 이유는 그가 짊어진 짐 때문으로 보인다. 연임되지 않을 경우 그의 ‘치부책’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탑산업훈장까지 받은 건설업계 신화의 주인공에서 검은돈을 조성한 장본인으로 몰락한 그는 극단적인 길을 걸었다. 황사로 세상이 온통 뿌연 날, 남사장은 한강에 몸을 던졌다. 다음날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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