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문 경찰청장 1년 중간 평가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4.03.3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사권 독립’ 소신 지켰으나…/“과감하게 개혁할 돌파력 부족”
3월26일은 경찰에게 길고도 곤혹스런 하루였다. 오전 9시, 대검찰청 공안부는 탄핵 무효 촛불시위를 주도한 최 열 대표 등 4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보도 자료까지 내 ‘경찰이 신청’한 데 따른 청구였다고 밝혔다. 그러자 경찰을 향해 비난이 쏟아졌다.

탄핵무효 범국민행동 집행위원장인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구두로 경찰에 자진 출두 의사를 밝혔는데도 영장을 청구했다며 반발했다. 경찰은 억울했고 당황스러웠다. 김기식 사무처장의 말대로 경찰은 체포영장 신청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검찰이 전격적으로 주도했다.

3월25일 오후 6시30분쯤 대검 공안부는 서울중앙지검을 통해 종로경찰서에 체포영장을 신청하라고 지휘했다. 검찰은 영장 대상자까지 짚어 주었다. 종로경찰서는 부랴부랴 영장 서류를 만들어 다음날 오전 6시 검찰에 넘겼고, 검찰은 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은 검찰의 조처에 갸우뚱했다. 통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최 열 대표 등 4명에 대해 3월30일까지 출두하라고 세 번째 출석요구서를 보낸 상태였다. 보통 출석요구서를 세 번까지 보내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것이 경찰의 관례다. 관례를 무시하고 검찰이 ‘오버’한 것이다. 이 날 저녁 법원은 4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검찰의 과잉 대응을 시민단체에 대한 ‘기선 제압용’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경찰 안에서는 한 가지 해석을 덧붙인다. 자신들을 향한 엄포용이라는 것이다.

촛불시위에 대한 경찰 대응은 검찰보다 한 발짝 앞선 소신 행보였다. 예전 같으면 검찰의 눈치를 살필 사안이었다. 검찰이 먼저 판단하고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3월17일 최기문 경찰청장을 비롯한 수뇌부는 심야 긴급 회의를 열고 촛불시위는 정치 행사라고 결론을 냈다. 불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전날 주무 장관인 허성관 행정자치부장관의 합법 견해마저 뒤집은 것이었으니,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독자적인 판단으로 수사권 독립의 단초를 마련했다고까지 평가했다.이번만큼은 검찰이 주도권을 상실한 셈이다.

경찰의 이같은 행보 뒤에는 최기문 청장이 자리 잡고 있다. 역대 청장 임기는 평균 13.8개월. 1년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3월21일 자로 경찰청장 임기는 1년이라는 마의 고비를 넘긴 ‘최기문 호’가 순항하고 있다. 물론 몇 차례 좌초 위기도 있었다.

행정고시 출신인 최기문 청장은 정보통이다. 정보를 오래 다룬 사람답게 별명이 ‘자물통’이다. 매사에 언행이 조심스럽다. 자기 부인마저 공무용 차량을 이용하지 못하게 할 만큼 자기 관리도 철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절 이무영 전 청장과 비교하면 최청장은 ‘허세’ 청장이었다. 경북 영천이 고향인 최청장은 현정권과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경찰 고위 간부를 지낸 한 인사는 “최기문 청장은 대구 경북 지역 인사들과 가까웠다. 그쪽 정치인이면 뻔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지난해 내내 최청장은 흔들렸다. 취임 2~3개월 만에 교체설이 나돌았고, 구체적으로 대안 카드까지 거론되었다. 이상업 현 경찰대학장이 차기 청장감이라는 말이 돌았다. 이상업 학장은 문희상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매제다. 이학장은 문실장을 통하지 않더라도 최청장에 비해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부터 터져 나온 ‘총선 징발설’은 최청장 흔들기의 정점이었다. 여권이 최청장을 그의 고향인 경북 영천에 공천한다는 계획은 그에게는 곧 낙마설이었다. 최청장은 양날의 칼을 뺐다. 그때 마침 이한선 치안감 사건이 오비이락 격으로 불거졌다. 경찰종합학교장이던 이한선 치안감은 교내 골프장 건립과 복장자율화 등으로 감찰을 받았다. 감찰반은 서면 경고에 그치려 했지만 이치안감이 정식 감찰을 요구했다. 수뇌부는 항명으로 받아들였고, 경찰청 특수수사과까지 투입되어 그의 비리를 탈탈 털었다. 수사 기록만 무려 4천 쪽에 달했다. 그런데도 검찰에 구속 송치를 하지 못했다. 당연히 표적 감찰이라는 뒷말이 돌았다. 현직 경찰 중간 간부는 “솔직히 사표 받고 직위 해제하면 그만인 사항이다. 그리고 그렇게 털면 남아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뒷말이 돈 것은 이치안감과 이상업 경찰대학장의 관계 때문이다. 이치안감은 이상업 학장의 고려대 후배로, 흔한 말로 라인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수세에 몰린 이치안감은 정치권에 구명 손길을 뻗은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 이 아무개·정 아무개 의원뿐 아니라 청와대 실세에게 구명을 요청했다. 그러나 물거품이었다. 최기문 청장은 관사까지 찾아가 3시간을 기다린 이치안감을 만나주지 않았다. 한 경찰 중견 간부는 “이 사건으로 기강이 확립된 것은 사실이다. 교체설이나 낙마설이 쑥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현재 이치안감은 불구속 상태에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조직을 다잡은 최청장은 지난해 12월 경찰청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임기 2년을 보장받았다. 청장임기제는 경찰의 숙원이었지만 다급하지는 않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여당이 아니라 야당 의원(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이 발의해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했다.

‘허세’ 청장으로 출발해 임기를 보장받은 최기문 청장은 지난 1월 자신의 색깔이 묻어난 인사를 단행해 친청 체제를 구축했다. 하지만 흠도 있었다. 이상업 경찰대학장이 기사회생했다. 이학장과 나이가 같은 1946년생 치안정감들이 모두 용퇴한 반면 이상업 치안정감은 연임했다. 청와대 배려설이 돌았다. 최청장(치안총감) 처지에서는 자신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이상업 치안정감(57) 유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불씨’는 남아 있는 셈이다.

최청장은 지난 1년 동안 경찰 직급을 조정하며 인사 적체에 따른 불만을 잠재우고, 파출소 통폐합 등을 통한 지구대 창설로 내부 개혁을 꾀했다. 하지만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개혁은 부족했다는 평이다. 한 현직 경찰 간부는 “정보를 오래 다루다 보면 대세 추수형이 되기 쉽다.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는 돌파력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정보통 출신인 임기제 첫 청장이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쓴소리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