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의 귀국 간청 편지는 날조된 것”
  • 김 당 기자 ()
  • 승인 1997.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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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주장…서신 공개한 <월간 조선>에 법적 대응 방침
95년 11월 타계한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씨 유가족이 최근 <월간 조선>에 실린 윤씨의 편지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혀 파문이 예상된다. 유가족들은 그 근거로 94년 윤씨가 정부와 귀국 문제를 협상하는 과정에서 이홍구 부총리(현 신한국당 상임 고문)와 교환한 편지 사본을 제시함에 따라 누가, 어떤 목적으로 편지를 조작했는지 그 배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두번째 박스 기사 참조).

사건의 발단은 94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윤이상 음악 축제(94.9.8∼17)를 주최한 예음문화재단(이사장 최원영)은 67년 동베를린 사건 이후 한국 입국이 거부되어 온 윤씨의 ‘38년 만의 귀향’을 추진했다. 그러나 윤씨의 귀국 문제는,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과 조문 시비에 이어 조성된 공안 정국 와중에서, 자신에 대한 명예 회복을 요구한 윤씨와 과거 행적(친북 활동)에 대한 사과 표명을 요구한 정부 당국의 입장이 타협점을 찾지 못해 무산되었다.

그런데 최근 <월간 조선>(97년 4월호)은 ‘독점 공개/윤이상씨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귀국을 애원한 두 통의 편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의 요지는 당시 정부 당국이 밝힌 표면적인 이유는 귀국 협상 조건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윤씨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비밀리에 보낸 ‘귀국 허용 간청 편지’가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당국은 윤씨가 보낸 두 통의 편지를 공개해야만 귀국을 허용할 수 있다고 한 반면에 윤씨는 절대로 안된다고 맞서는 바람에 9월2일로 예정된 귀국이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7월 편지’ 서체, 육필과 달라

<월간 조선>은 그 근거로 ‘94년 6월26일 베를린에서 윤이상’이 쓴 편지와 ‘94년 7월25일 伯林 尹伊桑’이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두 통 다 김영삼 대통령한테 보낸 편지였다. 그러나 두 편지의 글씨체는 서로 다르다. 그래서인지 이 기사는 첫번째 편지(6월 편지)는 윤씨의 친필이 아니고 윤씨가 작가인 부인(이수자씨)에게 대필을 시켜 보낸 것이고 두번째 편지(7월 편지)가 윤씨가 직접 쓴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 기사는 7월 편지의 글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윤씨가 몹시 힘겹게 쓴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글씨가 떨리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건강이 나빠진 윤씨가 손을 심하게 떨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두 편지는 글씨체뿐만 아니라 내용도 상반된다. 윤씨는 A4 용지 한 장에 빽빽하게 쓴 6월 편지에서는 ‘대통령께서만 저의 명예를 회복하여 주심으로써 저의 고국 방문은 성공할 것입니다’라고 자신의 명예 회복을 김대통령에게 강력히 요청했다. 그러나 7월 편지는 사실상 ‘반성문’이나 다름없는 짧은 글이다. 그 전문(全文)은 이렇다.

‘親愛하는 大統領 閣下! 本人의 歸國을 위하여 念慮해 주셔서 忠心으로 감사드립니다. 원치 않던 政治的 소용돌이에 휘말리어 여러가지 誤解를 불러일으켰으나 이제부터 歸國하면 음악 예술활동 외 어떠한 政治活動도 하지 않기를 약속드립니다.’

그런데 당사자인 윤씨 유가족의 주장은 이와 완전히 다르다. 6월 편지는 윤씨 본인이 직접 쓴 것이고 7월 편지는 ‘尹伊桑’이라는 서명을 빼고는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조작 편지라는 것이다. 부인 이수자씨는 그 근거로 자신의 필적이 담긴 ‘월간 조선 앞으로 보내는 공개장’과 당시 이홍구 부총리에게 보낸 윤씨의 육필 편지(8월16일 편지) 등을 최근 한국을 방문한 딸 윤정씨(아래 인터뷰 참조)를 통해 제시했다.

부인이 공개한 편지는 당시 음악제를 앞두고 예음문화재단이 발행하는 공연예술 전문지 월간 <객석>에 보낸 육필 원고와 일치한다. 또 당시 귀국 교섭 과정에서 윤씨와 10여 번 팩시밀리로 편지를 주고받아 윤씨의 필적을 잘 아는 예음 관계자들도 한결같이 윤씨가 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수자씨는 자기가 남편의 편지를 대필한 적도 없고 남편이 천식으로 다리가 부어 고통스러워했지만 손을 떤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월간 조선>에 편지를 공개한 해당 기자는 “편지 사본을 제공한 사람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그렇게 말해 별다른 의심 없이 믿었고 이수자씨에게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유가족은 이같은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또 94년 윤씨의 귀국을 앞두고 사과 표명을 요구하는 여론을 조성하는 등, 사실상 윤씨의 귀국을 막는 데 앞장선 신문이 <조선일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이수자씨는 4월17일 “남편은 결코 귀국을 구걸하지 않았다. 편지를 위조해 남편의 명예를 훼손한 장본인은 물론 그런 편지를 실어 고인의 고결한 정신을 모독한 <월간 조선>의 처사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라고 밝히고 법적 대응 방침을 분명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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