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한의사협회, 에티오피아서 의료 봉사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1996.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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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한의사협회 에티오피아서 의료 봉사…환자 폭주, 무료 진료권 웃돈 붙여 거래되기도
 
대한한의사협회 산하 해외의료봉사단(단장 권용주·한의사)이 올해 초 에티오피아 주재 정 신 대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의료진을 현지에 파견키로 결정했을 때, 한의사들은 봉사 활동이 과연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회의했다. 이들이 베풀‘한의학 의술’ 자체가 현지인들에게 영판 낯설어 환자들이 와줄지가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곧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7월22일부터 나흘간 아디스아바바 시내 국립 블랙라이언 병원에서 있었던 한의사들의 의료 봉사에는 연일 5백 ~7백명씩 환자가 몰려들었다. 진료에 동원된 연 인원은 한의사와 한의학 교수 14명을 비롯한 의료봉사단 15명, 외무부 산하 국제협력단(KOICA) 소속으로 현지에 파견된 자원 봉사자 4~5명, 에티오피아 랑가노 지역에서 3년째 선교 활동을 벌이는 박수일 목사 부부, 그리고 현지 의료진 등 줄잡아 50여 명에 이르렀다. 7월25일 마지막 진료가 끝나고 난 뒤 진료진을 이끌었던 정현국씨(전북한의사협회 회장)는 “당초 목표보다 훨씬 많은 3천2백명이 몰려 진료하는 데 크게 애를 먹었다”라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5세 미만 유아 사망률 천명당 2백명에 달해

에티오피아에 대한 한의사들의 무료 의료 봉사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에티오피아 대사 발령을 앞두고 있던 정 신 대사가 개인적 친분이 있던 해외의료봉사단 권용주 단장과 술자리를 벌이다가 현지 보건·의료계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했고, 권단장이 의사를 보내주기로 한 것이다. 올 2월 현지에 취임한 정대사가 한의사협회측에 서신을 띄워 의료 봉사단 파견을 정식으로 요청하자, 권단장이 이를 받아들였다.

대한한의사협회 해외의료봉사단은 93년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출발했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인술을 베푼다는 것이 첫번째 목적이었고, 외국인들에게 서양 의학과는 원리와 체계가 다른 한의학을 선보임으로써 한의학의 대중화·국제화에 이바지하겠다는 것이 두번째 목적이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5백㎞ 넘게 떨어진 시골에서 소문을 듣고 밤새 달려온 사람, 한두 번의 간단한 처방만으로도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을 10~20년 달고 다니는 사람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한의사들은 에티오피아의 열악한 의료·보건 수준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봉사 활동에 참가한 최방섭씨(전주 대화당한의원장)는 “소화기계의 위장염, 호흡기계의 천식과 관절염·고혈압·구충 환자가 특히 많았다. 질병의 대부분은 한방 개념으로 ‘음허증’으로 분류되는데, 대부분 못 먹어서 생긴 병이다”라고 설명했다.

봉사 활동이 본격화하면서 환자들 사이에 무료 진료권에 웃돈을 붙여 거래하거나, 진료권 한장을 여러 사람이 돌려가며 사용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원래 무료 진료권은 한국대사관측이 봉사단의 진료 일정과 진료 가능한 환자 수를 고려하여 2천장 한정 발행한 뒤 진료를 원하는 현지인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한의사들의 봉사 활동이 현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환자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진료 내용이 전해지면서 환자들이 폭주해 결국 사흘 만에 진료권이 동이 났다.

“현지 주민들에게 우리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의술이 남달라서가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워낙 돈이 없어 모든 환자를 일일이 정성들여 치료해줄 만큼 그 곳 의료 수준이 체계적으로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라고 봉사에 참여했던 한 한의사는 풀이했다. 5세 미만 유아 사망률이 인구 천명당 2백명이고, 의료 수혜 가능 인구가 의사 1인당 7만5천명이라는 에티오피아 당국의 공식 통계는, 한의사의 이같은 설명이 단순히 자신을 낮추기 위한 겸양의 언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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