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마저 ''재난 관리법'' 졸속 처리
  • 김 당 기자 ()
  • 승인 1995.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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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함 많은 ‘재난관리법’ 졸속 처리… 여·야 대표 “안전관리청 설치” 약속 ‘실종’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6월29일)는 ‘방재 시스템의 완벽한 부재’를 확인시켜 준 참극이었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연거푸 대형 사고를 겪으면서, 정부 내에서(주로 비상기획위원회와 군) 방재 관련 법령 정비 및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건의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도 ‘무방비 상태’에서 천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는 것은, 부처 이기주의와 정부의 게으름, ‘군에 대한 문민 정부의 불신’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정부의 ‘부작위에 의한 범죄’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바로 이같은 지적이 삼풍 참사에 대한 <시사저널> 보도(제298호 커버 스토리 기사)의 주된 방향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주일이 지난 지금, 이같은 지적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총리실, 국방부의 ‘재해대책안’ 외면

삼풍 참사의 뼈아픈 교훈을 받아들이는 정부·여당의 후속 조처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모색되고 있다. 하나는 법령 정비 및 제정이고, 다른 하나는 방재 시스템 구축이다. 물론 둘 다 늦어도 한참 늦은 사후 약방문이다. 그 중 전자를 대표하는 것은 정부가 이번 임시국회에 제출한 재난관리법(안)이고, 후자를 대표하는 것은 국회 대표연설에서 여·야 대표가 신설하겠다고 공언한 안전관리청(가칭)이다. 문제는 전자는 ‘부실’하고 후자는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국회에서도 여·야가 이를 둘러싸고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우선 방재 시스템 구축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은 민주당 임복진 의원(광주 남구)의 지적(아래 상자 기사 참조)이다. 임의원은 7월13일 열린 국방위에서 “국방부가 두 차례에 걸쳐 국무총리실에 재해대책방안을 건의했으나 국무총리실이 이를 외면해 끝내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때 희생자들이 제때 구조 받지 못하는 허점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군이 제시한 첫 번째 안은 93년 11월에 낸 ‘국가탐색구조 발전계획안’이다. 이는 2백92명이나 되는 사망자를 낸 전북 부안 위도 해상에서의 서해훼리호 전복 사고(93.10.10)를 계기로 군의 재난구조 참여 대책을 모색한 결과였다. 사고 해역은 당시 파도가 높고 해상 구조가 늦어 희생자가 늘었는데, 나중에 인근 군산 공군기지에 최신형 해난구조용 헬기가 6대나 있었으나 1대도 뜨지 못한 것이 자체에서 지적되었다. 이 일은 국가적 재난에 국가의 주요 자원인 군이 아무런 구실을 못했다는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는 후문이다.

군은 이를 계기로 △국가적 규모의 재해통제본부 설치 △부처간 원활한 협조체제 마련 △신속한 상황전파 시스템 구축을 건의했으나 국무총리실은 ‘기구 확대의 어려움’을 들어 이를 외면했다.

군이 내놓았던 두 번째 제안은 성수대교 붕괴 사고(94.10.21)와 연이은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고(94.10.24) 직후이다. 94년 11월4일 당시 국방부는 두 사고를 계기로 각군 관련 처장과 1·2·3군 군수처장, 수방사·특전사 군수처장, 항공사 작전참모, 합참 작전부 차장 등이 참석한 대규모 회의를 열어 군의 긴급재난 구조지원 분야 체제 정립과 신속한 인명 구조를 위한 지원대책 및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공군본부가 작성하여 이 회의에서 통과된 ‘긴급재난구조 발전방안’ 또한 수용되지 않았다. 임의원은 “군이 이 방안에서 제시한 구조기관간 연락체제 자동화, 지역 총괄기구 강화, 초동단계 사태 수습절차, 교육훈련 등이 정부 차원에서 수용되었더라면 과연 삼풍 참사 때 보여준 원시 수준의 인명 구조 및 초동 구조 부재 등으로 인해 사망자가 그처럼 늘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날 이양호 국방부장관은 국방위 업무보고를 통해 재난관리법이 제정될 경우 그에 따른 후속 조처로 합참에 항공기·선박 조난 사고에 대비해 탐색구조본부를 신설하고 각군에 탐색구조부대를 사전에 지정해 24시간 출동 대기 태세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 탐색구조본부 및 부대 운용안은 국방부가 2~3년 전부터 준비해 놓았지만 문민 정부가 외면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해묵은 것’이다.

같은 날 열린 국회 내무위에서는 주로 정부가 제출한 재난관리법(안)의 졸속성과, 다른 재해 관계법과의 혼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다른 법령과의 혼선은 여당 의원들도 함께 걱정하는 부분이다. 민자당 김형오 의원은 “재난관리법안이 자연 재해와 인위적 재난 대책을 분리함으로써 혼선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재난 종류와 관계없이 종합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재난관리기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정부의 법안 제안 이유에서 보듯, 재난관리법은 이번 삼풍 참사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재난관리체제 구축과 긴급구난구조체계 확립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예컨대 풍수해대책법의 경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해 응급대책 또는 복구에 필요한 물자 및 자재를 비축하고 재해대책기금을 반드시 적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규정에 따라 삼풍 참사 직후인 6월30일 현재 내무부는 헬기 16대, 구급차 4백70여 대 등 구조 장비와 라면·모포 등 구호물자, 불도저 3백대, 크레인 1백30대, 덤프트럭 3천여 대를 비축하고 있었고, 서울시도 재해대책기금 3백15억원을 적립해 놓았다.

그러나 내무부와 서울시는 자연 재해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물자와 돈을 고스란히 쌓아 둔 채 사고 이후 줄곧 구조복구대원들의 끼니마저 민간단체에 구걸하는 안쓰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나 정부와 서울시의 이같은 ‘법대로’는 왼쪽 <표>에서 보듯 구포 열차 전복 사고(93.3.28)를 계기로, 자연 재해에만 적용되는 풍수해대책법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각종 사고(인재)에 대비하기 위해 제정한 ‘재해의 예방 및 수습에 관한 국무총리 훈령’(93.7.23 발령)에 비추어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각종 사고 예방과 수습에 대한 정부의 종합대책을 담은 훈령은 사실상 새로 제정한 재난관리법에 준하는 내용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있는 법’ 안지키면서 ‘없는 법’ 만드니…

따라서 정작 우려되는 것은 ‘있는 법령’도 지키지 않는 관계 당국이 ‘없는 법’을 새로 만들어 재해 대책에 대한 혼선과 중복조직에 의한 예산 낭비만 하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다. 재해를 자연 재해와 인위적 재해로 구분하는 것은 발생 원인에 의한 구분일 뿐, 그에 따른 대책(응급 조처와 구난 구조)에 차이가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그 원인이 자연 재해인지 인재인지 모호할 때 법률이 이원화되어 있을 경우 어느 법을 적용해 대처할지도 고민거리이다. 그에 비해 미국의 재난관리기본법(STAFFORD)은 인위적 재해와 자연 재해에 대한 구분이 없이 연방비상관리청(FEMA)이 이를 총괄하여 지휘토록 되어 있고 일본·독일·프랑스도 비슷하다.

게다가 재난관리법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된다. 왼쪽 <표>에서 보듯, 재난 관리와 복구에 쓰일 물자 및 기금을 비축·적립하는 것이 필요한데 해당 규정이 없다. 또 긴급구조구난본부신설을 규정하고 있지만, 상근자 조직과 훈련에 대한 분명한 규정이 없어 여전히 ‘실제 상황’에서 혼선이 예상된다. 놀라운 사실은, 여·야 대표 모두가 재난관리 전담기구(안전관리청) 설치를 공언했지만 정작 이 날 통과한 재난관리법에는 그것이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삼풍 참사는 또 하나의 부실, 즉 입법의 부실을 잉태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 부실 입법이 ‘제2의 삼풍 사태’에서 방재가 부실한 때문이라고 검증될 경우 그 책임은 정부와 국회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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