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 포커스렌즈 ‘북침 연습’ 중단
  • 김 당 기자 ()
  • 승인 1998.09.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흡수 통일 배제’ 원칙 행동으로 옮겨
최근 종결된 을지 포커스렌즈(UFL) 훈련에서는 해마다 실시해 온 ‘북침 연습’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그동안 정부와 한미연합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을지 포커스렌즈 훈련에서 북한군의 공격에 대한 격퇴(거부 작전)를 넘어선 북침 연습을 실시해 왔다. 따라서 이번에 처음으로 북침 연습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은 새 정부의 대북 3원칙 중의 하나인 흡수 통일 배제 방침이 전시 대비 훈련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이같은 사실은 국정 감사를 앞두고 국회 국방위 하경근 의원(한나라당·전국구)이 요청한 국방부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국방부가 제출한 을지 포커스렌즈 연습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합동참모본부는 해마다 전쟁 발발에 대비한 단계별 연습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한미연합사 주축 전쟁 계획인 OPLAN 5027(작전 계획 5027)의 5단계 작전 계획에 맞추어 연습해 왔으나 올해는 작계 5027의 제3(격멸 작전)·제4(고립화) 단계 훈련을 시행하지 않았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공식적으로 무력 통일 배제 원칙을 천명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도발할 경우에 대비해 한미연합사는 전면전을 상정한 북침 전쟁을 도상 연습해 왔고, 한국 정부도 이른바 응전 자유화 계획(충무 9000)에 근거해 한국군의 독자적인 수복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따라서 한·미 양국은 무력 통일 배제 원칙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전면전에 대비한 5단계 작전 계획에 따라 단계별 도상 훈련을 꾸준히 실시해 왔다. 팀스피리트 훈련과 을지 포커스렌즈 훈련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북한은 한·미 연합군의 대규모 실병 기동 훈련(FTX)인 팀스피리트 훈련과 을지 포커스렌즈 훈련을 대표적인 북침 훈련(연습)으로 규정해 해마다 비난해 왔다. 북한은 올해도 8월19일 발표한 북한군 판문점 대표부 성명에서 한·미 양국의 을지 포커스렌즈 합동 군사 훈련을 ‘북을 선제 공격하기 위한 전쟁 연습’이라고 비난하며 이를 당장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또 북한은 8월18일 외교부 대변인 담화에서 “우리는 이번 을지 포커스렌즈 종합 군사 훈련이 고질적인 연례 훈련이 아니라는 데 주목을 돌리고 있다. 70년대 중엽에 시작된 을지 포커스렌즈 합동 군사 훈련이 냉전이 종식된 90년대 말에 와서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우리 공화국을 군사적으로 압살해 보려는 시대 착오적인 정책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이다”라고 비난했다.

한·미, 국토 수복 범위·관할권 놓고 갈등

북한의 주장처럼 을지 포커스렌즈 훈련이 ‘북을 선제 공격하기 위한 전쟁 연습’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이 훈련은 북한이 선제 도발했을 때 현재의 휴전선을 방어하는 수준을 넘어서 북한군을 청천강 이북까지 ‘격멸’하고 ‘고립화’하는 작전 연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중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또 이 훈련이 해마다 8월에 실시된다는 점도 북한으로서는 위협적 요소이다. 올해의 경우에도 8월17∼28일(11박12일) 동안 주한미군 병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만3천명이 이 훈련에 참여했다. 북한은 북한 정권 창건 기념일인 9·9절을 앞두고 실시되는 점을 ‘도발’로 간주하고 있다.

을지 포커스렌즈 훈련의 중요한 특징은 이 훈련이 한미연합사 작계 5027의 5단계 작전에 맞추어 시행된다는 점이다. 작계 5027은 △1단계(전쟁 이전) △2단계(거부 작전) △3단계(격멸 작전) △4단계(고립화) △5단계(종전 이후)로 나뉘는데, 이 중 3단계부터 기계화 군단(○군단)의 북침이 시작된다. 또 4단계는 청천강까지 북진한 한·미 연합군이 북한군을 추격해 압록강까지 진격하게 된다.
이 중 작계 5027의 3단계부터가 을지 포커스렌즈 훈련의 ‘전후 단계 연습’에 해당하는데, 한·미 양국은 그동안의 ‘전후 단계 연습’에서 이른바 ‘북방 완충 지대’ 인정 여부를 둘러싸고 이견을 드러내 왔다. 즉 미국은 압록강까지 진격했을 경우 중국이 개입할 것을 우려해 ‘전쟁 연습’을 청천강까지 제한한 반면 한국은 완전한 국토 수복 작전을 주장해 왔다.

한 예비역 대장에 따르면, 군에서는 통상적으로 휴전선 회복에서 상황이 종료되는 도상 연습을 해왔으나 89년부터 평양까지 진격해 상황이 종료되는 것으로 도상 훈련을 발전시켜 왔다. 또 93년부터는 을지 포커스렌즈 훈련의 전후 단계 연습에서 처음으로 평양 점령 이후의 상황을 다루었다. 93년 을지 포커스렌즈 훈련에 처음 도입한 정치·군사 모의 연습(POL-MIL 게임)에서는 북한의 남침 기도가 한·미 연합 작전에 의해 격퇴된 상황을 가정해 △북한에 대한 응징 형태를 어떻게 전개하며 △전후 처리(수복 및 통일)는 어떠한 절차와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주요 관심 사항으로 설정해 연습을 실시했다.

따라서 이번 을지 포커스렌즈 훈련에서 작계 5027 상의 격멸 작전 이후를 상정한 전후 단계 연습을 생략한 배경을 두고 그동안 을지 포커스렌즈 훈련을 통해 드러난 한·미 간의 의견 차이를 고려한 조처라는 추측이 돌고 있다. 실제로 전쟁 발생후 한·미 연합군이 휴전선 이북 지역으로 진주할 경우 이 지역의 관할권을 둘러싸고 한·미 양국은 갈등을 빚어 왔다.

한국 정부는 헌법 3조에 의거해 이 지역을 ‘수복 지역’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실제로 한국군의 독자적인 작전 계획을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 훈령 제67호 응전 자유화 지침에도 수복 지역으로 명시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북한이 유엔에 가입한 독립 국가임을 근거로 휴전선 이북 지역을 ‘점령 지역’으로 간주해 이 지역에 대한 한시적인 군정을 시행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작계 5027에 에어랜드 배틀(공지전) 및 종심(縱深) 공격 전술이 도입된 84년부터 휴전선 이북 지역에 대한 관할권 문제를 두고 지속적으로 협의해 왔다. 그러나 △휴전선 이북 지역을 연합사 통제 지역으로 하고 △한미연합사령관 통제 하에 민사 작전을 수행하며 △이를 작계 5027에 명시한다고 잠정 합의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관할권 문제가 양국의 민감한 정치적 사안인 만큼 한·미간 합의 여부에 관계없이 한국 정부와 합참 통제 하에 수복 지역에 대한 민사 작전 수행 태세를 완비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을지 포커스렌즈 훈련 상의 전후 단계 연습에서 한·미 간의 불필요한 갈등 요인을 드러내지 않고 ‘실전’에서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북침 연습’을 생략한 유력한 배경은 북한 정권 수립 50주년 기념일인 올해 9·9절과 김정일 총비서의 국가 수반 취임을 앞두고 북한을 흡수 통일하지 않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지난 7월 동해안 잠수정 침투 및 묵호 무장 간첩 침투 사건을 계기로 처음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두 사건을 ‘정전 협정과 남북 기본 합의서를 위반한 중대한 도발 행위’라고 규정하면서도, ‘평화·화해·협력의 실현을 통해 남북 관계를 개선하려는 정부의 대북 정책은 ①평화를 파괴하는 일체의 무력 도발을 용납하지 않고 ②북한을 해치거나 흡수 통일을 기도하지 않으며 ③북한이 개방과 변화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남북 기본합의서에 따라 화해·협력을 적극 추진한다는 3대 원칙을 전제로 하며, 정부는 앞으로도 이를 계속 견지해 나갈 것이다’라고 명시한 국가안전보장회의 의결서를 채택했다.

북침 위협 제거…북한의 태도 변화 주목

을지 포커스렌즈 훈련은 한국을 방위하는 데 필요한 정부의 전쟁 지도 및 지원을 위한 계획 및 여러 법규 검토, 군사 분야의 작전 절차를 체험함으로써 한·미간 협조와 이해를 증진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유엔사령부 주관으로 60년대부터 실시해 온 포커스렌즈 훈련과 68년 1·21 사태 이후 한국 정부가 실시해 온 을지훈련을 76년부터 통합해 실시하는 훈련이다. 이 훈련은 남북 기본합의서 체결을 계기로 대규모 군사 훈련이 남북한의 신뢰 구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91년부터 비상기획위원회가 주관하는 정부 훈련인 을지훈련과 한미연합사가 주관하는 군사 훈련인 포커스렌즈 훈련으로 분리 실시하다가 북한 핵위기를 계기로 94년부터 종전 방식으로 환원했다.

따라서 올해 처음으로 을지 포커스렌즈 훈련에서 북침 연습을 배제한 것은 새 정부가 대북 정책 3대 원칙 중의 하나인 흡수 통일 배제 원칙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대북 정책의 ‘언행 일치’를 보인 셈이다. 또 새 정부의 이번 조처는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군사적 위협 요인을 스스로 제거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변화이다. 따라서 ‘북을 선제 공격하기 위한 전쟁 연습’이라고 비난해 온 북한의 태도 또한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