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생활기록부가 지닌 문제점들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5.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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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많고 교사 부족해 정확한 평가 어려워…“교육 재정 확보해야 성공”
학교 교육 현장에서 교육을 받는 주체인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문서가 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학생이 가는 곳마다 줄곧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생활기록부’라는 문서가 바로 그것이다. 이 문서가 교육 현장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지는가는 교육부가 각급 학교에 내려보낸 ‘생활기록부 취급 요령’이라는 규정의 일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생활기록부는 학생이 졸업한 해로부터 50년간 당해 학교에 보관한다’(제3조). `‘기재 사항의 일부분을 삭제 또는 수정할 때에는… 수정한 글자 중앙에 두 선을 그어 원안의 글자를 알 수 있도록 삭제 또는 수정하고, 삭제 또는 수정한 자가 …날인해야 하며…문서의 여백에 삭제 또는 수정한 자수를 표시하고 관인으로 날인하여야 한다’(제4조 4항).

이처럼 까다로운 취급 규정까지 만들어 이 문서를 소중하게 다루는 까닭은 분명하다. 이 문서에는 해당 학생의 인적·학적·출결·심리검사 상황은 물론, 교과 학습·행동 발달을 비롯하여 특별 활동, 심지어 진로 희망까지 학교 생활과 관련된 모든 사항이 빠짐없이 기록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생활기록부는 `‘문서로 표현된 학생 그 자체’이며 그 학생이 받은 교육적 경험의 데이터 베이스로서 누구나 내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종합 자료인 셈이다.

학생 장점 위주 평가는 긍정적

그러나 최근 이처럼 엄격한 처리 요령에 따라 애지중지 떠받들어온 생활기록부가 교육 현장에서 사라질 날만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다름 아닌 교육 당국의 손에 폐지될 예정이어서 놀라움은 더 크다. 생활기록부제 대신 새로 도입되는 제도의 이름은 `‘종합생활기록부제’이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약 1년 6개월간 교육 개혁의 마스터 플랜을 준비해온 교육개혁위원회(교개위)는 지난 5월31일 `‘학습자 중심의 교육’ `‘열린 교육 체계’를 표방한 이른바 `‘5·31 신교육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그같은 내용을 내놓았다.

생활기록부제 폐지안은 학교 교육은 물론 전체 교육 개혁안을 통틀어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다. 교개위가 생활기록부제에 `‘파산 선고’를 내리면서 들이댄 논고의 내용은 그 타당성을 비교적 널리 인정 받고 있다. 그 요점은, 학교 현장은 물론 학교 바깥에서도 학생을 평가할 때 가장 요긴하게 활용되었어야 할 생활기록부가 국·영·수 중심의 총점 경쟁을 부추겨 몰개성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을 양성케 했으며, 학교 교육을 점수 따기 교육으로 왜곡시키는 등 파행적 교육의 주요 수단으로 오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반면 교개위가 새로 도입하겠다고 밝힌 종합생활기록부제는 발상 자체부터 다르다. 먼저 총점 서열 위주의 평가제도가 개별 학생의 장점 중심 평가제도로 바뀐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 받을 수 있는 적성과 소질이 있으며, 따라서 교육 평가는 그러한 개인의 장점을 밝혀주는 쪽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이하 오른쪽 아래 표 참조). 교개위는 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과열 과외 풍토가 사라지고, 공동화했던 학교 교육도 정상 궤도에 오를 것으로 기대했다.

일선 교사는 물론이고, 교육학자·교육단체·학생·학부모 등 교육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이같은 교개위의 개혁 방향에 대해 일단 수긍하는 분위기다. 서울 언남고등학교 빈중호 교사(국어)는 “생활기록부를 고칠 때에는 교무주임은 물론, 교감·교장에게까지 결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생활기록부는 특별히 문제 학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할 때와 입시 때를 빼놓고는 활용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종합생활기록부제는 학생 생활 상황을 진학과 입시에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교사 ‘업무량 폭주’도 약점

종합생활기록부가 과거 생활기록부와 크게 다른 점은 먼저 종합생활기록부에 기재될 내용과 기재 방식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종전 생활기록부는 전과목 총점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서열화했다. 반면 종합생활기록부에는, 고등학교의 경우를 예로 들면, 2~3학년에서 개인의 적성·능력·진로에 따라 선택·이수한 교과 성적이 `‘총점 기록’(상대 평가)이 아니라 ‘성취 수준 서술’(절대 평가)로 바뀐다. 점수 따기 경쟁을 부추겨온 구조의 일각이 여기서 허물어진다.

무엇보다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종합생활기록부에 특별 활동·봉사 활동 등 교과 활동 상황 이외의 학생 활동 상황에 대한 평가가 실린다는 점이다. 교개위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종합생활기록부에는 초·중등 학교에서 이수한 과목별 성취 수준과 석차·출결 사항말고도 특별 활동, 봉사 활동, 자격증 취득 여부, 각종 대회 참가 및 입상 실적, 그리고 성격과 품행 따위에 대한 내용이 엄정한 평가에 따라 기록된다. 말 그대로 학생의 장점과 특기 따위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기록한다는 것이다.

교개위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종합생활기록부제를, 신설할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와 국·공립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에 필수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반면 사립 대학의 경우에는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97학년도부터 선택적으로 활용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공립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종합생활기록부제를 반영하는 비율은 97학년도(현 고교 2학년 대상) 40%이며, 98학년도 이후 반영 비율은 대학이 자율로 정한다. 이와 함께 94학년도에 부활한 이후 거의 필수가 되다시피 한 본고사는, 교육부가 폐지키로 함에 따라 적어도 국·공립 대학에서만큼은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교육 당국의 이같은 개혁 의지에도 불구하고 교육계 안팎에서는 종합생활기록부제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는 높이 살 수 있겠지만, 이 제도가 실제로 기대하는 만큼 실효를 거둘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다. 가장 큰 비판의 표적은 종합생활기록부제가 현실을 도외시했다는 점이다. 특히 현장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선 교사들이 종합생활기록부제를 바라보는 눈길은 심상치 않다.

교사들은 현재의 거대 학교·과밀 학급 체계에서는 종합생활기록부제가 지향하는 평가가 효율적으로 적합하게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교육 당국의 공식 통계를 살펴보면, 교사들의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얻는다. 먼저, 학생을 지도할 교원 수가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교원의 법정 정원수 부족은 상급 학교로 갈수록 심각하다. 94년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국민학교 교원의 법정 정원 확보율은 전체 평균이 99.7%인 반면 중학교·고등학교가 포함된 중등학교 교원의 법정 정원 확보율은 전체 평균이 87.4%에 그쳤다. 특히 심각한 곳은 인천과 대구로서, 각각 79.5%와 80.5%를 기록했다. 법정 정원이란 교육법 시행령상의 규정에 따른 용어로, 각급 학교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을 의미한다.

과밀 학급 문제와 교원 부족 현상은 종합생활기록부제를 실시하는 데 두 가지 커다란 문제를 낳을 것으로 우려된다. 첫번째 문제는, 평가가 적합하게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한 또 하나의 문제는, 교사 업무량이 폭주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교개위 방안대로라면, 종합생활기록부상의 교과 활동 부문은 그 과목을 가르치는 사람에 의해 일일이 `‘수작업’으로 평가가 이뤄지게 된다.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수업량이 많아 쩔쩔매는 교사들이, 한 사람당 적게는 3백명에서부터 많게는 천명에 이르는 학생들의 교과 성적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염창중학교 전종옥 교사(국어)는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이제 방학은 사라졌다’는 푸념이 나온다. 방학 때가 아니면 평가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빼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걱정은 평가가 형식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고 말한다.
봉사 활동 의무화도 개선책 없으면 유명무실

학생 개개인에게 개성과 창의력을 발휘케 하고 인성을 길러주기 위한 방안으로 고안된 특별활동 활성화와 봉사 활동의 의무화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학생들에게 자원봉사 활동과 집단 활동을 의무화하는 제도는 교개위가 미국과 일본의 사례에서 본따온 것이다. 교개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자원봉사 활동은 공립 학교를 졸업하는 데 필수 사항으로 규정되어 있다.

교사들은 현재 내실을 거두지 못하고 겉만 맴도는 특별 활동·봉사 활동 운영 체계에 대대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 부분이 `‘시간 때우기’ 또는 `‘점수 채우기’라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별 활동과 봉사 활동이 형식에 치우쳐 있다는 사실은, 각급 학교에서 이들 활동에 대해 할당한 시간을 보면 쉽게 확인된다. 한 달에 한 번씩 특정한 요일에 한꺼번에 몰아 특별 활동을 운영하는 이른바 `‘전일제 특별 활동’을 실시하는 극히 예외적인 학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교에서 특별 활동에 할애하는 시간은 주당 1시간 정도가 고작이다. 현재 교내·교외로 나누어 실시하고 있는 봉사 활동의 경우도, 주요 내용이 화단 가꾸기·청소·교통 정리 등으로 극히 제한되어 있다.

종합생활기록부제가 정작 대학입시 때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예상만큼 교육개혁안 입안자들에게 뼈아픈 부분은 없다. 종합생활기록부가 절대 평가라는 미명 아래 변별력을 잃어버리거나 학교 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면, 국·공립 대학의 경우에라도 입시 전형에서 실질적인 기여를 전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사립 대학은 ‘아직 밝힐 때가 아니다’며 드러내놓고 얘기하지는 않지만 이미 ‘나름대로 축적된’ 고교에 대한 평가 자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지난 7월7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교육정책토론회에서 박도순 교수(고려대·교육학)는 주제 발표를 통해 “고등학교가 실시할 평가 관행(절대 평가)과 대학에서 고수하고 있는 평가 관행(상대 평가)간 차이를 방지할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종합생활기록부는 그저 참고 자료 정도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종합생활기록부제에는 근본적인 약점이 남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몇몇 교원 단체는 `‘충분한 교육 재정을 확보하지 않는 한 종합생활기록부제를 통해 교육 개혁을 이루겠다는 정부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공격한다. 참교육시민모임 등 일부 학부모 단체에서는, 종합생활기록부제를 입시에 반영하는 비율이 높아지면 그만큼 치맛바람도 덩달아 거세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올해 안으로 종합생활기록부제 세부 시행안을 확정할 계획인 교개위는, 현재 분야 별로 연구팀을 구성해 연일 회의를 갖는 등 준비 작업을 서두르면서, 각종 공청회를 통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은 그같은 의견 수렴 과정이, 과거처럼 교육 개혁 당국의 일방적인 입장 합리화 통로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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