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소녀, 불을 찾아 헤매는 어린 불나방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5.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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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출 소녀 약 3만이 윤락업소로…접대부 절반이 미성년인 곳도
지난 8월30일 밤 10시30분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사창가(속칭 텍사스) 골목. 취재진은 한국청소년선도회 대원들과 함께 골목 초입에 있는 한 윤락 업소를 불시에 방문했다. 이 업소는 가출했다가 이 선도회 대원들에게 붙들린 15세 쌍둥이 소녀 2명이 각각 손님 60여 명에게 몸을 팔았다고 진술한 곳이었다. 간판도 없이 ‘○난이’라고만 불리는 이 업소에는 첫눈에 10대로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앳된 소녀 3명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 16세 동갑내기들인 정아무개·최아무개·이아무개 양이었다. 중학교 2학년을 중퇴했다는 이들은, 집을 나와 자취 생활을 할 뿐 가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자신들이 술집에 나가는 사실은 부모님들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번 돈의 절반을 집에 갖다 드린다는 정양은 “부모님들이 얼마나 애가 타겠는가. 술집에 나가는 건 안좋아하시겠지만 그래도 돈을 벌어 가니까 말리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최양은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양은 처음부터 이런 곳에 다닌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돈에 맛 들이다 보면 이런 곳에 오게 된다. 싫은데도 끌려오는 사람은 없다. 돈이라도 버니까 허송세월하기 싫어서 제 발로 찾아온다. 미용실에서도 일해 봤지만 하루 종일 일해 봐야 한달에 15만원도 안주더라”고 말했다. 그밖에 다른 일터도 고생스럽기만 하고 수입은 변변치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에 중학교 2학년을 중퇴했다고 밝혔던 정양은 “실은 중3부터 고등학교 들어가기까지 술집을 들락날락했다. 단란주점도 카페도 다녀 봤다. 여기(사창가)라고 더 나쁠 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처음 술집에 대한 정보를 얻은 곳으로 벽보나 생활정보지를 들었다. 또 “빠리(빨이·모집해 들이는 남자 아이)들이 소개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웃자란 국민학생도 나온다”

세 소녀는 경찰이 가끔 단속을 나와봐야 문 닫고 커튼 치면 그뿐이라고 말했다. 검문을 받더라도 스물세 살 넘는 다른 여자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를 줄줄 외워 두었다가 대면 된다면서, 한 번도 단속에 걸린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최양은 “이 골목에서 일하는 여자애들 가운데 반 정도는 미성년자일 거다. 키만 크고 몸매만 되면 열서너 살짜리 국민학교 애들도 나온다. 우리 때는 보통 중2였는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미성년자의 술집 취업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죄의식은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방이동의 ‘○스’, 문정동의 ‘○라파’라는 단란주점도 찾았다. 가출했다가 한국청소년선도회에 붙들린 16세 소녀들이 손님과 2차(외박)를 나갔다고 지적한 업소였다. 주인들은 한결같이 그 사실을 부인했다.

사단법인 한국청소년선도회는 ‘가출청소년찾기본부’를 운영하는 문화체육부 청소년정책실의 산하 단체로서 12년째 7천3백명이 넘는 가출 청소년을 찾아 왔다. 이 단체가 94년 1∼3월 전국 중·고등학교 4천2백38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가출하는 중·고등학생은 연간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단체 박부일 회장(52)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 수는 2년 전부터 여자가 남자를 앞질러 지금은 여자가 4%쯤 더 많다. 이렇게 뒤바뀐 까닭은 레스토랑·카페·단란주점 등 가출 소녀가 돈을 벌 수 있는 유흥업소가 거리에 널려 있다시피 해 집을 나서도 숙식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이혼 등 결손 가정 급증 탓

10대 소녀들은 대개 2명에서 6∼7명까지 집단으로 가출한다. 사회에 나간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여럿이 나가야 방을 얻기가 쉽기 때문이다. 몇백만원 하는 셋방 보증금을 대려면 일수돈을 빌려야 하는데, 혼자 가면 업주들이 방을 잘 얻어주지 않는다. 박회장은 “가출 소녀의 70%는 윤락업소에서 일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가출 청소년들의 배경에는 부모들의 빈약한 애정이 있다. 한국청소년선도회가 올해 들어 찾아낸 가출 소녀는 9월 초 현재 6백 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30명은 지난 8월21일 방화 사건으로 37명이 숨진 경기도여자기술학원에 들어갔다. 박회장에 따르면, 이들 30명은 아이들 의지와 무관하게 부모들이 집어넣은 경우이다. 박회장은 “밤에 유흥업소를 뒤져 애들을 붙들어 오면 상담을 마친 뒤 새벽쯤에나 부모들에게 전화하게 된다. 그러면 그 즉시 달려오는 부모는 많지 않다. 태반이 날 밝은 뒤 찾으러 오겠다거나 직장을 마친 뒤 찾으러 오겠다고 한다”며 부모들의 한심스러운 자세를 꼬집어 말했다.

그는 가출 청소년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로 급증하는 이혼 가정을 들었다. 이혼한 부모는 각자 재혼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 쪽에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가출한 자녀들은 대개 ‘막가는’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한국 YMCA 청소년센터 김국성씨도 “부모의 이혼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요즘 아이들은 정서가 감각적·충동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유명한 연구소 공학박사의 딸인 오아무개양(17)은 “엄마는 내가 주는 거 없이 밉다고 했다”며 엄마의 질책 한마디를 가출 동기로 밝히기도 해, 갈수록 충동적으로 변해가는 청소년들의 세태를 반영했다.

한국청소년선도회는 청소년 가출을 억제하는 대안으로 △국가의 ‘대리모’ 역할(가정법원에 ‘청소년 문제 중재위원회’같은 기구를 신설해 이혼 가정 자녀들 보호) △청소년 기본 육성 정책 전환(탈선 청소년을 선도할 법적 근거 마련) △‘가출청소년보호법’제정(실효성 있는 청소년 재교육시설 창설을 주된 내용으로)을 들었다.

가출 자체도 심각한 문제지만 가출하게 만드는 상황, 또 가출했을 때 탈선하게 만드는 환경이 더 큰 문제이다. 청소년 가출 문제는 더 이상 팔짱 끼고 볼 남의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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