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자 퀵 서비스 "법대로 살고 싶어"
  • 安殷周 기자 ()
  • 승인 2000.06.2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업체 난립 해소 · 피해 보상 체계화 위해 '제도권 진입' 추진
빼곡히 늘어선 차와 사람을 요리조리 피해 질주하는 ‘도시의 곡예사’ 퀵 서비스. 급하게 배달할 서류나 물건이 있는 사람에게는 요긴한 운송 수단이지만, 피해를 본 소비자들의 불만도 높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안현숙 과장(소비자 상담팀)에 따르면 택배와 관련한 소비자 불편 신고는 지난 5개월 동안 5백37건에 이른다. 안과장은 “퀵서비스를 이용할 때 물건이 분실되거나 파손되고, 배달이 지연되어 피해를 보았다는 소비자의 신고가 일반 택배 못지 않게 많다”라고 설명했다.

화장품회사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최은영씨(30)는 잡지사나 언론사에 자료나 제품 샘플을 보낼 때 퀵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데 골탕을 먹기 일쑤였다. “기사 마감 시간에 임박해서 보내는 급한 사진을 5~6시간 걸려 배달하거나, 아예 가다가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마감 시간에 자료가 도착하지 못해 기사가 못 나갈 때마다 내가 상사에게 꾸중들었다. 그런 일이 한 번만 더 생기면 시말서를 쓰고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퀵 서비스를 이용하지는 않아도 도로에서 무법자처럼 달리는 퀵 서비스 오토바이 때문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해마다 오토바이로 인한 교통 사고가 만여 건이고, 그 가운데 천여명이 사망한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오토바이 교통 사고 치사율은 자동차에 비해 3~4배나 높다. 그런데도 퀵 서비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오토바이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건설교통부 교통안전과에 따르면, 1999년 말 현재 오토바이 가운데 69%가 책임보험에조차 가입하지 않고 있어 피해자가 보상받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퀵 서비스와 접촉 사고를 겪은 김영수씨(38)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상대방이 잘못해서 차 수리비를 청구했는데,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보상받지 못했다. 운전자는 돈이 없어 보상할 수 없었고, 업주는 운전자의 책임이라며 자신이 보상할 의무가 없다고 발뺌했다. 퀵 서비스는 차선을 마구 넘나들고, 규정 속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질주하다가 사고가 나면 책임마저 방기한다”라고 김씨는 비난했다. 김씨의 경우처럼 업무용 퀵 서비스 오토바이가 사고를 내면 보상받을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처럼 퀵 서비스로 인해 소비자들이 보는 피해가 적지 않은 데다, 피해를 보고도 보상받을 통로가 거의 없다.
“퀵 서비스 80%가 불법 영업”

오토바이를 이용한 화물 특송 서비스는 독립 업종으로 분류되지 않아 치외법권 영역과 같다. 허가를 받을 까닭도, 자격을 갖출 필요도 없다. 2륜 자동차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누구나 퀵 서비스 맨(라이더)으로 활동할 수 있다. 가정용 오토바이가 업무용으로 불법 전용되는 것은 물론이다. 전화를 설치하고 운전자만 모집하면 이륜특송업체 사장도 될 수 있다. 업주는 운전자에게 일정한 지입금을 받고 일감을 소개하기 때문에, 운전자가 일으킨 사고나 피해에 대해 일절 보상하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방침이다. 때문에 퀵 서비스 오토바이에 사고를 당한 피해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운전자와 담판해 겨우 보상을 받거나, 아니면 싸움에 지쳐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륜특송업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체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조직된 ‘이륜 특송업 합법화 운동 추진본부’는 인터넷에 관련 사이트(www.quickplus.co.kr)를 개설하고, 네티즌을 대상으로 합법화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이륜특송협회를 주축으로 한 이륜특송업계도 건설교통부에 법 제정을 촉구하는 등 ‘이륜특송업 합법화 쟁취’에 나섰다.

합법화를 위해 업계가 발 벗고 나선 까닭은 이 업종을 제도화하지 않으면 모두 자멸할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 때문이다. 1996년부터 업체가 난립하면서 가격 덤핑이 심해져 적자를 면치 못하는 업체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주)퀵 서비스 임항신 사장의 설명이다. 서울시 이륜특송협회 최병연 상근 부회장은 이륜차 특송업체 천여개 가운데 80% 이상이 불법 영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서비스 개선이나 소비자 피해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춘 업체를 양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합법화 운동에 나선 소비자들도 퀵 서비스가 제도권으로 진입할 경우 운전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수 있어 교통 법규 준수나 서비스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비자로서 합법화 운동에 앞장선 노희석씨(VBSQL 대표)는 “법 테두리 밖에서는, 운전자에게 서비스 교육을 하고 합리적으로 소비자 피해 보상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제도권으로 들어오면 강제로라도 보험에 가입하게 해 소비자가 피해를 보았을 때 보상받게 할 수 있다. 또 업주나 운전자 모두 직업 의식을 갖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게끔 강제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서울시도 이륜특송업의 교통 법규 위반과 소비자 피해 따위를 개선하기 위해 이륜특송업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업태를 정확하게 파악해 등록제나 허가제로 전환할 방침이다. 하지만 주무 부서인 건설교통부는 ‘법규를 완화하는 추세인데, 새삼스럽게 새로 법을 만들어 업종을 규제할 필요가 있느냐’며 이륜특송업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 건교부 주종완 사무관(화물운송과)은 “교통 법규를 위반하는 것은 도로교통법으로 제재하고, 소비자 피해 보상 문제는 다양한 보험 상품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8월쯤 실태 조사를 마치고 법제화를 제안하면 고려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