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대 "조금 가르치고 창의력 키우겠다"
  • 宋 俊 기자 ()
  • 승인 1998.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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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기 신임 포항공대 총장 인터뷰
취임 포부를 밝힌다면?

포부를 말할 계제가 아니다. 포항공대는 커다란 숙제를 안고 있다. 세계적 대학으로 발돋움하려면 연구와 교육 두 측면에서 질적 도약을 이루어야 한다. 지금이 그 고비다.

지난 5월 <아시아 위크>가 포항공대를 아시아 최고의 과학 기술 대학으로 선정하지 않았는가?

어느 단계의 성공 요인이 다음 단계의 결정적 장애물이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교육을 예로 들어 보자. 주어진 문제를 푸는 능력에서는 우리 학생들이 뛰어날지 모른다. 그렇지만 문제 자체를 발견하고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 시대의 과학은 창의력이 결정적 요소다. 학제간 교류가 빈번해지고, 기술과 학문과 문화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다. 기술자로서 ‘기술의 섬’에 고립되지 않으려면 문제점과 의문점을 스스로 제기하고 연구 과제도 자기가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은 수업 중에 무엇을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도 어색해 한다. 뭐가 궁금한지 모르면서 무엇을 연구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궁금해 하는 요령’을 가르쳐야 할 텐데, 방법이 있는가?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지식을 전수하기보다 깨우치는 방법을, 지식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다. 주입식 지식의 내용은 이미 도서관·논문집·인터넷에 널려 있다. 그것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만 가르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응용하는 요령을 전해 주면 된다. 나머지는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다. 오히려 학생에게 생각하고 궁리할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조금 가르치고 많이 대화하는 것이 그 비결이다. 먼저 졸업에 필요한 학점 자체를 줄이고, 꼭 필요한 과목말고는 되도록 통폐합하거나 생략하고, 자발적으로 비판적인 사고를 하도록 유도하고….

그러려면 교과서·커리큘럼·교수법을 다 바꿔야 할 텐데, 갑자기 가능하겠는가?

몇년 전부터 교과 과정 변화를 모색해 왔다. 내년이면 그 결과가 매듭지어진다. 2000년부터는 상당수 수업이 새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새 교과서를 만들기 전까지는 현재 교과서를 이용하되, 압축할 부분과 생략할 부분 따위를 재구성해 활용하겠다. 학과 별로 상당 부분 정리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든 기초 필수 단계에서부터 창의력을 극대화하자는 데 교수들이 뜻을 모았다.

최근 무시험 전형 입학 제도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데, 포항공대의 경우는 어떤가?

96년부터 학교장 추천을 받아 신입생 일부를 모집해 왔는데, 결과가 기대에 못미쳤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생의 특성을 무시하고 모범생 위주로 추천한 영향이 큰 탓으로 보인다. 이공 계통에는 그에 맞는 인재가 있다. 예를 들면, 이공 계통에서 수학은 또 하나의 언어에 해당한다. 내년 신입생 모집 요강은 이미 정해져 할 수 없지만, 그 다음 학기부터는 수학 가중치를 매기거나 고교간 순위 가중치를 두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꼭 필요한 분야의 재능이 탁월하다면 거리가 먼 과목이 부진한 학생도 뽑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 같은 영재가 있다면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입학시킬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럴 용의가 얼마든지 있고, 훌륭한 연구자로 기를 자신도 있다. 아직 교육법상 제한이 있지만 교육부가 풀어 주기만 한다면 실현 가능하다.

연구 부문의 과제란 무엇인가?

우리 학교의 연구 수준은 세계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슷해지자는 목표로는 부족하다. 적어도 몇몇 분야에서는 세계를 리드하는 연구 성과가 나와야 한다. 그 질적 변화를 이루기 위해 집중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분야를 어떻게 정할 수 있는가? 다른 분야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포항공대가 더 발전할 수 없다는 데 교수들이 뜻을 같이하고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분야는 저절로 지원 대상이 될 것이고, 학교가 탄생한 인연을 보아 철강 등 재료금속 분야도 꼽힐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유망 분야의 전략적 가치에도 신경을 쓸 것이다. 가치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지식 산업 시대를 선도하는 잠재력이 큰 분야도 지원할 대상이다.

‘연구 중심 대학’으로 자리잡기까지 포항공대가 겪어 온 시행 착오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또 어떻게 극복했는가?

세계 유명 대학에서 튼튼히 자리잡고 있던 교수들이 조국에 세계적인 대학을 일으켜 보자고 모였다. 이렇다 할 시행 착오랄 것은 없지만, 초기에 견해 차이가 있었다. 공정성이 그 문제를 해결했다. 날카롭게 평가하고 처우를 공정하게 하니까 차츰 일이 풀렸다. 어차피 능력 중심 사회가 되어야 국제 사회에서 통할 수 있다.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능력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학연이건 지연이건 우리끼리 쓰는 룰로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바람직한 교육 개혁의 요인을 몇 가지 꼽는다면?

매일·매학기·매년 개혁이 계속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각 대학의 특질을 최대한 살려 자율적으로 변해 가는 것, 개성을 중시하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 한두 가지 기준을 개인이나 각 학교에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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