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돈벌이면 뭐든지” 핌피 열풍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6.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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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 개발·사업 유치 앞다퉈… 지역 이기주의 폐단도
지방자치 시대의 새 풍속도가 그려지고 있다. 쓰레기·하수·분뇨 처리장 등 이른바 혐오 시설이라도 돈 되는 사업이라면 내 지역에 유치하겠다는 ‘핌피(PIMFY) 현상’이 온나라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핌피는 ‘부디 우리집 앞뜰에 들어오시라(Please In My Front Yard)’는 뜻이다. ‘절대 우리집 뒷뜰에는 안된다(Not In My Backyard) ’라는 ‘님비(NIMBY)’와는 대조를 이루는 현상이다.

최근 서울시 마포구는 관내 상암동 부지 5만평에 쓰레기 소각장을 건설하겠다는 사업 의향서를 서울시 청소사업본부에 제출했다. 이와 함께 마포구는 ‘주민과의 협의 결과에 따라’ 중구·용산구·종로구 등 소각장 건설이 어려운 인근 구청의 쓰레기까지 대신 소각할 용의가 있음을 비쳤다.

송파구도 관내 문정동 부지 등에 2만평 이상의 소각장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송파구의 경우 소각장 규모가 작으면 오히려 첨단 공해방지 시설을 설치하기 어려우므로 하루 1천2백~2천t 처리 용량을 갖춘 광역 소각장을 세우자는 입장이다. 남는 용량으로 다른 구청의 쓰레기(2백~3백t 추산)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마포구나 송파구나 다른 구로부터 처리비를 받아 수입을 늘리겠다는 속셈이다.

경북 군위군은 대구 동아축산이 건립하기로 한 축산물 종합처리장(도축장) 유치를 둘러싸고 95년 연초부터 영천시와 치열한 경합을 벌여왔다. 연간 20억~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도축세를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군위군은 세 수입뿐 아니라 도축장이 들어섬으로써 관내 축산 농가도 안정적으로 가축을 팔 수 있어 소득 증대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동아축산측에 적극적인 행정 지원을 약속하는 등 유인책을 편 끝에 지난 11월28일 마침내 1만5천평 규모의 도축장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님비 현상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한 최근 몇년 간의 추세를 돌아볼 때 이같은 현상은 ‘신선한 충격’으로까지 여겨진다. 심지어 핌피 현상이야말로 님비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이라는 성급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핌피 현상이 가진 ‘양면성’이다.
핌피 현상은 적극적인 개발 의지와 함께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지역 이기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일으킨다. ‘잘살아 보고자 내 땅 내가 개발하고 입맛에 맞는 자본(기업)을 끌어들이겠다는데 남들이 왜 나서느냐’는 논리에는 대답이 궁할 수밖에 없다. 지역 문제는 지역민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이 지방자치의 기본 정신인 만큼 중앙 정부가 개입하거나 규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개발과 보존의 논리가 항상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환경 문제의 경우 핌피 현상에 따른 갈등은 더욱 심각하다.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 강원도이다. 강원도는 전체 면적의 82%가 산지로서 천혜의 자연자원을 지닌 지역이다. 이는 동시에 족쇄로도 작용한다. 강원도민은 산림법·자연환경보전법 등 개발을 규제하는 중앙 정부의 관련 법들이 지역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강원도는 95년 한 해에만도 폐광 지역 개발과 겨울 아시아경기대회 지원 문제를 놓고 중앙 정부와 한판 힘겨루기를 벌였다. 결과는 강원도의 판정승. 강원도는 전리품으로 ‘폐광 지역 개발지원 특별법’(폐광지역특별법)과 ‘국제경기대회 유치를 위한 지원 특별법’(국제경기특별법)을 챙겼다.

폐광지역특별법은 태백·정선·삼척·영월 등 폐광 지역의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국제경기특별법은 97년 겨울 유니버시아드(전북 무주)와 99년 겨울 아시아경기대회(강원도)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두 특별법은 모두 개발에 장애가 되는 규제들을 완화하고 행정·재정·금융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중앙 관련 부처 및 시민단체가 △폐광지역특별법에 포함된 내국인 출입 허용 카지노 설치와 △두 특별법 모두에 포함된 환경영향평가 협의권의 시·도지사 위임 조항을 문제삼으면서 법안 통과에 제동을 건 것이다(52쪽 상자 기사 참조). 특히 환경단체들은 후자가 곧바로 자연 파괴의 면죄부로 악용될 수 있다며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었다.

“죽 쑤어 재벌 준다” 우려 목소리

이에 대해 강원도는 ‘총력 항전’을 선언했다. 우선은 지역 출신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국회에 구성된 특위가 나서서 활발한 로비 활동을 폈다. 이즈음 환경영향 조사차 현지에 내려간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지역 주민들의 실력 저지에 밀려 그냥 돌아오는 사태가 발생했다(95년 12월2일). 지역 언론도 이를 거들었다. 강원도의 한 유력 일간지는 ‘강원도를 무시하지 말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사설을 통해, 중앙 정부(환경부)나 환경단체가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는 것은 강원도민의 양식을 무시하고 지역 발전의 ‘발목을 잡는’ 처사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한 지역 방송사는, 국제경기특별법이 자연 파괴에 악용될 위험성을 지적한 뉴스를 중앙 방송사가 내보낸 바로 다음날 ‘환경부가 형평의 원칙 없이 갈팡질팡 규제를 남발하며 강원도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뉴스를 프라임 타임대에 편성했다. 97년 겨울 유니버시아드 개최지인 전북 무주 일대의 덕유산이 국립 공원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개발을 허가받은 것을 꼬집는 내용이었다.

시민단체마저 편이 갈렸다. 춘천·강릉 경실련의 경우 ‘보존을 위한 최소한의 개발은 불가피하다’며 특별법 지지 입장을 밝혀 중앙 경실련과는 의견이 다름을 드러냈다. 이를테면 중앙과 지방 간의 총체적 싸움처럼 돼 버린 셈이다. 정기국회 막바지 무렵 마침내 두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강원도는 ‘도민의 저력을 보여주었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지역 이기주의 형태로 나타나는 핌피 현상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혐오 시설 설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무조건 ‘님비’로 몰아붙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정부 정책이 불신 받고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한 님비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핌피 현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역간 균등 발전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 낙후한 지역의 주민들이 개발 의지를 다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춘천 경실련 한동환 실장은 “지역 주민의 소외된 정서를 헤아려야 한다. 이제까지 강원도민은 정성들여 녹지를 가꾸고 보존해 왔다. 이들에게 합당한 대가가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개발의 방향이다. 이상돈 교수(중앙대·환경법)는 특정 재벌의 이해 관계가 핌피 현상과 결합하는 사태를 경계한다. 이를테면 골프장·스키장을 건설·확장하려는 재벌의 욕구가 주민의 숙원 사업인 양 가장돼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지역 주민 고용 기회 확대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결국 주민들은 청소부·잡역부 등 하층 노무직에 종사하게 되고, 지역 경제는 ‘먹고 마시는’ 유흥향락업 위주로 재편된 미국 디즈니 월드의 예를 들어, 특정 재벌의 이익과 지역 주민의 이익이 일치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번 특별법의 경우도 자칫하면 스키장 사업자가 건설해야 할 도로·교량 등 인프라를 정부 돈으로 대신 지어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진정한 발전 방향을 제시해야 할 지역 지도급 인사들이 오히려 주민들의 왜곡된 지역 정서에 편승하는 것 또한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맹지연 간사는 “이번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드러난 의원들의 행태에 실망했다. 지역 정서에 야합함으로써 특정 재벌에 특혜를 주고 표는 표대로 안정되게 챙기자는 행동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 같다”라고 걱정한다. 지역 언론 또한 이를 부추기고 있다. 한 예로 특별법이 제정된 직후 강원 지역 언론들은 앞을 다투어 이 지역 출신 김기수 의원(신한국당)과 류종수 의원(신한국당)의 공을 치켜세우고 있다.

‘지방 시대’ 중앙 정부 조정 역할 더 중요

96년 총선, 97년 대선 등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더욱 심해지리라 예상되는 핌피 현상과 맞물려 중요하게 지적되는 것이 중앙 정부의 역할 재정립 문제이다. 지방자치 시대가 개막된 만큼 중앙 정부의 역할과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중앙 정부의 조정 기능까지 포기하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번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김중위 당시 환경부장관이 협상 막바지인 11월27일 국회 특위 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환경영향평가 협의권 위임에 전격 합의해 버린 것이 한 예이다. 이를 두고 환경부 직원들 사이에는 “역시 현역 국회의원 출신 장관은 어쩔 수 없다” “담당 국장만 바보가 됐다”는 얘기들이 떠돌았다.

정치로부터의 독립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원칙을 지키는 일관성 있는 행정이다. 이번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강원도는 전북 덕유산의 경우 훨씬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천연보호림(주목 군락)이 훼손되었는데도 환경부가 자신들만 문제삼고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래서는 중앙 정부가 권위를 세울 수 없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진하겠다는 환경부의 장기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핌피 현상을 조정할 수 있는 길은 중앙 정부가 중립성과 형평성을 지키는 창구 노릇을 제대로 하는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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