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는 주택난, 죽어서는 묘지난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7.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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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2천만기, 국토의 1.2% 차지… 공동 묘지 포화, 납골당 활성화가 해결책
우리 민족에게 한가위는, 산 자와 죽은 자가 엄숙하게 만나는 집단 의식의 장이다. 이를 위해 해마다 2천만명이 대이동을 한다. 차례와 성묘라는 민족의 집단 의식은 첨단 산업사회에 들어선 오늘도 변함 없는 미풍 양속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그 전통도 계승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추석 연휴를 1~2주일 앞두고부터 주말이면 성묘 행렬로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는다. 묘지가 들어선 수도권 야산 곳곳에는 추석을 멀찍이 남겨둔 평일임에도 간단한 제사 음식을 펴놓고 성묘하는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9월3일 경기도 포천군에 자리한 용미리 서울시립묘지에 가족과 함께 나온 김종성씨(38)는 일찌감치 성묘를 하는 이유에 대해 “몇년 전부터는 추석 전 주말에도 차량이 밀려 묘역에 들어오기가 어렵다. 그래서 주말을 피해 평일에 성묘를 하고, 추석날은 가족과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다른 집단 묘역에서도 비슷하다. 30여만 평 묘역에 무덤이 3만여 기 들어서 있는 천안공원묘원의 임동민 관리소장(60)은 “올해는 추석 2주일 전 주말에 차량 2천여 대가 다녀갔고, 1주일 전 주말에 오기로 예정된 차량은 3천여 대이다. 나머지 4천여 대는 추석날 올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변화는 추석 전 성묘 행렬이 늘어난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낫을 들고 정성껏 산소를 벌초하는 모습은 점점 구경하기 어렵다. 대신 벌초 기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마저도 바쁜 일정에 쫓기는 도시민들은 벌초를 남에게 맡기는 경우가 늘어나 묘지 관리가 신종 사업으로 등장했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요즘 ‘명당’은 교통 편한 곳

또 추석날 하루 종일 여기저기 흩어진 조상의 산소를 전전하는 사람도 점차 줄고 있다. 교통이 편리한 곳으로 산소들을 한데 모아 이장하는 풍조가 생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명당’ 개념이 바뀐 것이다. 예전에는 음택 풍수라 하여, 산세와 전망이 좋고 혈이 통하는 곳이라면 깊은 골, 높은 산등성이를 가리지 않고 조상을 모셨다.

그러나 지금은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 가까이에 자리한 무덤이 ‘명당’으로 각광받는다. 자연히 논밭이 무덤으로 변하는 일이 많다. 대청댐 하류에 자리한 대전시 대덕구 삼정동 주민 강전홍씨(39)는 “마을 앞으로 난 국도변의 산자락은 도시 사람들이 앞다투어 가묘를 써놓아 공동 묘지로 변했다. 요즘은 밭농사 지역을 묘터로 조성해 부동산 소개소에 내놓는 농민도 늘고 있다”라고 말한다.

인구의 도시 집중에 따른 세태 변화는 조상의 산소를 좀더 ‘현대적’으로 관리하려는 사람을 늘리기도 했지만, 거꾸로 산소를 버리는 사람도 늘려 놓았다. 1년 내내 한번도 후손의 손길을 받아보지 못하는 무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로 문을 연 지 64년이 된 서울 망우리 공동 묘지의 경우, 전체 3만 기 무덤 중 만여 기에 후손의 발길이 끊겼다. 역시 서울시가 운영하는 용미리 시립묘지 무덤 중에서 약 만기가 무연고 무덤이다. 서울시 장묘사업소의 한 관계자는 “조상의 산소 돌보기를 기피하는 후손의 무관심이 무연고 묘를 만들고 있다. 시가 여러 차례 연고자 일제 신고 공고를 냈지만 후손이 나타나지 않아 묘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절차를 밟고 있다”라고 말한다. 시골 야산 곳곳에 자리한 개인 묘지의 경우도 무연고 무덤이 늘기는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전국에 흩어진 무연고 분묘 수를 약 7백50만기로 추산하고 있다.
1인당 주택 면적 4.3평, 분묘 평균 면적은 15평

이처럼 전국 곳곳에 무연고 묘가 방치된 가운데 새로운 묘터를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지고 있다.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묘지 면적은 9백89㎢로 전체 국토 면적의 1.2%를 차지한다. 또 무덤 수는 약 2천만기이고, 연간 20만기 (면적으로는 9㎢)씩 늘고 있다.

특히 전체 묘지의 69%를 차지하는 개인 묘지가 국토 이용의 비효율화를 낳는 주요인으로 지목된다. 공원 묘지나 공설 묘지 등 집단 묘는 제도적 규제 및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만(분묘 1기당 3평 이하), 개인 묘지는 보통 수십 평을 넘어서고, 많게는 수백 평짜리 호화 분묘로 꾸며도 이렇다 할 규제를 받지 않는다. 그 결과 국민 1인당 주택 면적은 4.3평인데 분묘의 평균 면적은 15평에 이르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현재의 묘지 제도에서는, 살아서 극심한 주택난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사후에도 묘지난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셈이다.

이런 묘지난은 오랜 관습으로 굳어져 내려온 장묘 문화가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 국민은 예로부터 장례를 후하게 치르고, 시신을 매장해 묘소를 자손 대대로 길이 보살피는 풍습을 미덕으로 삼아 왔다. 조상 숭배와 명당 선호 사상이 얽혀 하나의 제도처럼 굳어진 것이다. 워낙 국민의 관습이 강하다 보니 그동안 정부가 제정한 장묘제도 합리화 관련 법률도 사문화한 지 오래다.

화장 비율 높아지고 납골당도 크게 늘어

그러나 이런 관습은 오늘날에 이르러 더 이상 조상을 모실 곳이 없어지는 사태를 불렀다. 묘지난은 특히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 지역에서 심각한데, 서울시가 운영하는 시립 묘지들은 이미 포화 상태이다. 서울시는 용미리 제1, 제2 묘지와 벽제리 묘지, 내곡동 묘지, 망우리 묘지 등 5개 시립 묘지에 총 2백30여만 평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재 용미리 제1 묘지의 4만평을 제외하고는 모두 만장 상태이다.

이런 실정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심각한 묘지난을 극복하기 위해 발상을 전환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널리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토지 관련 학계와 종교단체가 중심이 되어 펼치는 이 운동은, 국민들이 매장 집착에서 탈피해 화장 및 납골당 안치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불교·천주교 등이 납골당을 종교 시설에 설치하는 등 솔선 수범하는 데 힘입어 현재 국내 장례 방식 중 화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23%까지 올라갔다. 전국 각 공원묘지에서 납골당 설치 붐이 일어 납골당도 54개소가 건립되었다.

지난 10여 년간 민간 차원의 묘지제도 개선운동을 주도해온 한국토지행정학회 김태복 회장(대전 중부대 도서관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 추석에 조상의 산소를 찾는 후손들은 그 앞에서 자기 사후에도 과연 그 산소가 유지되고 관리될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급작스런 사고가 생기거나 자라나는 세대의 가치관 변화로 볼 때 산소를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인지, 공적으로 관리되도록 하는 것이 좋은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는 언젠가는 우리 후손들에 의해서 모든 사망자가 공설 묘지나 공원 묘지 같은 집단 묘지에 안장되는 제도가 정착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가 말하는 미래의 집단 묘지는 전국 시·군·구가 그 지역의 명당을 골라 조성하는 납골 묘지를 일컫는다. 김교수의 이런 전망과 주장은 아직도 매장형 개인 묘지(선산 포함)를 선호하는 대다수 국민의 인식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현재 복지부의 묘지제도 관련 정책은 장기적으로 전국의 모든 묘지를 법령의 통제가 미치는 쪽으로 관리해 간다는 추세이다. 전통적 묘지 제도를 완강하게 고집하는 것으로 일반에 알려진 유림도 이미 정부가 국민에게 화장을 권장하는 것을 시대 조류로 인정하고 공식 수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복지부가 개정 법령 시안에 모든 개인 묘를 6평 이내로 설치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을 신설하기로 한 데 대해서는 기존 법령이 허용한 24평까지는 인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어쨌든 과거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변화 추세에서 자기 조상을 기리는 미풍 양속을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전승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추석을 맞아 조상 산소를 찾는 후손들 각자가 풀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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