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유기 교육부 퇴출 대학 책임져라”
  • 광주·羅權一 주재기자 ()
  • 승인 1998.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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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 설립 인가·감독 부실 ‘원죄’ 커
“정확한 실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4개 대학 설립을 인가하고 학교 부실을 눈감은 무능한 교육부 관리를 처벌하라.” 사상 처음으로 대학교 폐쇄 결정이 내려진 전 서남대 총장 이홍하씨 소유 4개 대학 문제와 관련해 교육부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교육부가 8월3일 폐쇄 계고 조처한 한려대와 광주예술대 교수협의회 대표인 김병현·이보룡 교수는 8월29일 부패추방운동연합과 공동으로 이태수 전 교육부 대학정책실장 등 6명을 직무 유기 및 근무 태만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학교 폐쇄라는 치명상을 입은 교수와 학생 들이 그 화살을 쏜 교육부에 ‘직무 유기’라는 책임을 묻고 검찰의 강력한 수사를 요청한 것이다.

한려대 김병현 교수 등이 고발한 교육부 관리는 이태수 전 대학정책실장과 심명섭 전 대학정책실 심의관, 안오환 전 대학정책실 과장 등 94년 한려대 설립 인가 담당자들이다. 광주예술대 이보룡 교수협의회장이 고발한 이지헌 당시 교육부 감사 2과장 등 5명은 지난해 2월 광주예술대 실태를 조사한 사람들이다.

교육부, 속았나 속아주었나

고발인들에 따르면, 한려대 설립을 인가한 교육부 관리들은 교지 확보 면적이나 실험 실습 설비, 장서 확보 등 교육 시설이 설립 조건에 현저하게 미달하는데도 한려대 재단인 서호학원 설립을 인가했다. 또 설립자 이홍하씨가 교육부의 허술한 틈을 비집고 수익용 기본 재산 확보 현황과 재원 조달 계획 잔액증명서를 위조하고, 학습 기자재 명부와 교수 확보율까지 허위로 보고했는데도 교육부는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오히려 교육부 대학정책실은 94년 12월 ‘학교 운영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이며, 연차별 계획과 소요 예산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계획 이행을 조건으로 설립을 인가함이 타당하다’며 한려대 설립을 인가했다. 문제가 된 4개 대학 모두가 이런 방법으로 너무나 쉽게 법인 설립을 인가받았다. 이 때문에 교육부가 족벌 사학재단의 ‘사기 행각’에 놀아났거나, 아니면 그 사기 행각을 눈감아 주었다는 얘기가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94년 교육부 대학정책실장이었던 이태수 교수(서울대·철학)는 “한려대 교수와 학생 들에게 죄송하다. 그러나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는 서류 심사가 고작이었다”라고 말했다. 설립자와 재단측이 설립 인가와 관련한 서류를 위조할 정도로 치밀하게 사기를 쳤다면 당시 교육부 능력으로는 알아챌 도리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학 설립뿐만 아니라 대학의 증원·증과 과정 역시 이런 ‘사기’의 연속이었다. 4개 대학측이 제시한 서류 대부분이 허위였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검증하지 않고 증원·증과를 허용하는 근거로 사용한 교육부로서는 이홍하씨 소유 4개 대학에 전국 최고 수준의 증원·증과를 승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실 감사 문제도 교육부의 직무 유기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지난해 2월 광주예술대 실태 조사를 끝낸 뒤 학교 비리 해결을 요구하며 탄원서를 제출한 이보룡 교수 등 광주예술대 교수협의회에 보낸 회신에는 ‘교육부의 두 얼굴’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 문서에는 ‘설립자가 학생 등록금을 유용한 사실을 발견할 수 없었음. 대학 시설 및 실습 기자재 확보율도 대체적으로 높은 편 … 타 재단 운영에서도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다(<자료 1> 참조). 지난 8월3일 교육부가 대학 폐쇄 계고 조처를 내릴 당시 ‘설립자가 등록금 4백억원을 횡령했고, 재단의 시설 투자 부족으로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어렵다’고 발표한 자료와는 딴판이다.
“이홍하 비리와 로비 의혹 재수사하라”

이에 대해 광주예술대 실태 조사를 담당했던 이지헌 당시 교육부 감사 2과장은 “93∼95년 실태 조사 대상은 2년제 광주예술학교였다. 지금 4년제 학교가 된 광주예술대학교와는 그 기준이 차이가 있다. 행정 감사를 해서 서류 위조까지 밝혀내기는 역부족이었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이홍하씨의 비리를 수사했던 검찰조차 교육부의 이같은 부실 관리를 성토했다. 검찰은 지난해 4월 이홍하씨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교육부의 감독 소홀이 문제다. 사립 대학교 설립을 허가할 때 교육부가 서류 심사만으로 허가를 내주지 말고 실질적인 재산 출연 여부를 심사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를 교육부 대학지원 총괄과 등에 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검찰 수사 뒤에도 이홍하씨의 서남대 총장 직위와 광양대 이사장 직만 내놓도록 했을 뿐 이씨 소유인 한려대·광양대에 대한 실태 조사나 감사를 한번도 실시하지 않았다. 언론과 방송이 떠들썩하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려대 학생들이 3개월여 수업 거부 투쟁을 하다 집단 유급 위기에 처한 뒤에야 부랴부랴 지난 8월 학교 폐쇄와 정원 감축이라는 대책을 내놓았을 뿐이다.

때문에 한려대와 광주예술대 교수·학생 들은 이번에 검찰이 의지를 가지고 교육부의 무능과 부실 감독 실상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 교육부 등 정·관계에 대한 이홍하씨의 광범위한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보룡 교수협의회장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검찰이 이홍하씨 비리 수사에 들어갔을 무렵 청와대·검찰·감사원·교육부 등에는 ‘광주예술대 교수협의회’라는 이름을 빌린 익명의 제보자가 4건의 문건을 제공했다. 이홍하 전 서남대 총장의 추가 비리를 고발한 이 문서에는, 한나라당 중진인 김○○ 의원, 박○○ 장관을 비롯한 정계 인사 및 국회 교육위 소속 의원들, 교육부 관리 및 안 준 광주시 교육청 교육감, 광주시 교육청 소속 공무원 등 수십 명이 거론되었다(<자료 2> 참조). 그러나 이씨의 로비 혐의 부분에 대한 검찰 수사는 그 뒤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이보룡 교수협의회장은 “이홍하씨 측근들이 끊임없이 정치권이나 교육부의 배경을 과시하곤 했다. 실제로 그들이 이씨를 도와주었는지 아니면 설립자 이씨가 이들의 이름을 빌려 사기를 치고 다녔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행정력의 한계라는 이유만으로 사태를 설명하기에는 이홍하씨 소유 4개 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부실 관리가 너무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사학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서라도 검찰의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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