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와 무기상 ‘뒷돈 커넥션’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5.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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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 중개상 20여 명, 스위스 은행 통장 전달…국내 방산업체 ‘뇌물’도 무시 못해
6공 당시 주요 무기 도입을 중개한 굵직한 무기상들이 또 해외로 빠져나갔다. 혹시 노태우 비자금 파문의 불똥이 튈까 염려해서이다. 2년 전에 있었던 감사원의 율곡사업 특별 감사 때와 똑같은 현상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이 무기상들에게까지 뻗지 못하고 있다. 이미 핵분열을 일으킨 노태우 비자금에 대한 수사는 뭉칫돈을 건넨 재벌들을 조사하기에도 벅찬 형편이다. 때문에 검찰이 천문학적 비자금 가운데 무기 도입 대가로 받은 거액의 뒷돈을 따로 갈라낼 여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면서도 검찰은 노태우씨의 해외 은행 계좌에까지 수사 영역을 넓히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스위스 은행에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해외 비자금 실태를 밝히기 위해 검찰은 이미 노태우씨 친인척 21명의 명단을 스위스 당국에 넘기고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별 신통한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검찰 스스로도 해외 비자금 조사는 큰 진전이 없을 것 같다고 실토하고 있다.

장성엔 천만원대, 총장·장관엔 억대 건네

왜 그런가. 그것은 주변에 있는 최소한의 단서에서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태우씨의 해외 비자금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무기 거래 뒷돈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가 대통령 재임 시절에 결정한 주요 무기 도입 사업과 로비라는 함수가 도사리고 있다.

외국 군수업체들의 로비스트로 활약하는 국내 무기 중개상은 등록된 숫자로만 치면 4백여 명에 달한다. 그러나 청와대에까지 선이 닿아 뒷돈을 대는 무기시장의 큰손은 대략 20명 안팎이다. 연간 1억달러(약 8백억원) 이상의 무기 도입 중개 실적을 기준으로 추산할 때 그렇다.

이들 거물급 무기상들이 하는 일은 로비에서 시작해 로비로 끝난다. 이들은 외제 무기 판매의 주역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벌이는 로비 행태와 외국 군수회사로부터 받아 뿌리는 검은돈의 흐름이다. 이들은 무기를 직접 사용할 군(수요군)에서 각군 총장·국방부장관·청와대에 이르기까지 선을 대놓고 로비 자금을 뿌려가며 무기를 판매하느라 혈안이 돼 있다. 실제로 6공화국 당시 규모가 큰 무기 도입 사업은 이런 로비전에 크게 좌우됐다. 이와 관련해 2년 전 율곡사업 특별 감사 때 율곡 비리를 추적했던 감사원 5국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무기 도입에 관련한 뇌물 액수는 사업마다 약속이나 한 듯이 고정돼 있었다. 중령·대령 영관급에게는 백만원 단위, 장성급에는 천만원 단위, 각군 총장 및 장관에게는 억 단위가 건네졌다.”

그러나 당시 감사원은 노태우씨에게 들어간 로비 자금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각군 총장과 국방부장관 등 전직 군 수뇌 6명이 받은 뇌물만 문제 삼아 검찰에 넘겨 사법처리하도록 했다. 이종구·이상훈 전 국방부장관, 김종호·한주석 전 공군총장, 김철우 전 해군총장, 조남풍 전 1군사령관이 그들이다. 당시 검찰 수사 결과 이들에게 뇌물을 준 업체와 로비스트들은 (주)대우·삼성항공·대한항공·진로·학산실업(정의승)·AM코퍼레이션(이영우)·코바시즈통상(이동로)이었다.

6공 당시 율곡사업에 소요된 예산은 총 14조원이다. 이 중에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과 같은 대규모 사업도 있고, 건당 수억달러 안팎에 이르는 사업도 여럿 있었다. 현행 무기 도입 관련 규정에 50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사업은 청와대 결재를 맡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당시 감사원은 뇌물 수수 선을 국방부장관까지만 공개했다. 청와대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김영삼 대통령의 반대 때문이었다.

청와대를 뺀 로비는 상상할 수도 없다는 것이 무기업계의 정설이다. 이와 관련해 전직 무기상 김충립씨(전 원서교역 대표)는 “무기 도입은 대통령이 알고 사인하는 사항으로 커미션까지도 대통령 결재 대상이다”라고 밝힌다. 실제로 정부가 일반에 아직 공개하지 않는 율곡사업지침서에 따르면 “총괄 통제는 청와대 특별연구분석팀이 담당한다”고 못박아 모든 무기 도입 로비에서 청와대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국내 무기상들은 청와대에 로비해 도입한 대표적인 무기로 노 전대통령이 결재한 중형 수송기 CN 235M을 꼽는다. 스페인제인 이 수송기는 처음에 이탈리아제 G 222와 경합했다. 문제는 G 222가 군수용인 데 비해 CN 235M은 민수용이라는 데 있었다. 수요자인 군에서는 당연히 G 222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노대통령은 CN 235M 도입을 결정했다. 값이 싸다는 이유에서였다.
“청와대 패밀리에 돈 제공”

그러나 무기상들은 이런 결정에 대해 청와대 패밀리와 무기 중개상의 ‘결탁’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관련해 6공화국 당시 무기 중개업을 했던 육사 19기 출신 예비역 대령 박 아무개씨는 “노대통령 재임 중 들여온 해군 KDX, 대잠수함 초계기 P3C, 중형 수송기 CN 235M, 코브라 헬기 등은 모두 청와대 패밀리와 연결돼 추진됐다고 보면 된다”고 밝힌다. 그에 따르면, 무기상 세계에서는 청와대에 뒷돈을 건넬 때 스위스 은행 계좌를 이용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고 한다. 스위스 은행에 돈을 입금한 뒤 통장과 비밀 번호를 청와대 패밀리에게 갖다 바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태우씨의 해외 은닉 비자금을 효과적으로 추적하기 위해서는 그 단서를 이들 무기상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노태우씨가 대통령 재임 중에 결재한 주요 무기 도입 사업은 위 <표>와 같다. 특히 이들 가운데는 이미 국방부장관과 각군 총장을 상대로 한 억대 뇌물 제공 혐의가 밝혀진 경우도 있다. 때문에 최종 결재자였던 노태우씨에게 어떤 대가가 돌아갔는지를 추가로 조사하면 노씨와 그 친인척의 스위스 은행 계좌 단서는 의외로 쉽게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 무기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스위스 은행 비자금 은닉과 관련해 노씨가 가장 큰 의혹을 받는 또 다른 율곡사업은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다. 이미 차세대 전투기 도입 기종으로 결정된 FA 18(맥도널 더글러스사)을 91년 3월 F 16(제너럴 다이내믹스사)으로 바꾼 대가로 노씨가 제너럴 다이내믹스사로부터 스위스 은행을 통해 엄청난 리베이트를 챙겼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2년 전 노태우씨에 대한 직접 조사까지 시도하며 이와 관련한 비리를 파헤치려 했지만 김대통령의 반대로 좌절된 바 있다. 그 결과 당시 감사원은 2개월 간에 걸쳐 진행한 특별 감사에서 이 부분에 감사 역량을 집중하고도 감사 결과 발표 때는 함구했다.

그런데 최근 차세대 전투기 기종 변경과 관련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1억달러가 넘는 뇌물이 전달됐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강수림 의원은 자신이 지난 2년간 추적하면서 확보했다는 증거 서류와 증언들을 토대로 이 부분에 대한 수사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물론 14조원을 쏟아부은 6공 시절의 무기 도입 사업에서 외국 군수업체와 무기상만 검은돈을 건넨 것은 아니다. 율곡사업 중에서 덩지가 큰 사업은 국산화사업으로 전환됐으므로 국내 방산업체가 전달한 뇌물도 무시할 수 없다. 차세대전투기사업, 구축함사업, 잠수함사업, 헬기사업, 중형항공기사업, 초등훈련기 및 고등 훈련기사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국산화사업의 뇌물 관행과 관련해 군사 평론가 지만원 박사는 “군 내에서 규모가 큰 국산화사업에 따른 청와대 상납액수는 통상 한 건당 수백억원대로 전해지고 있다. 국산화사업 규모는 언제나 수조원대라서 국내 업체 간에 이전투구가 전개되기 마련인데, 어느날 갑자기 대통령이 특정 업체를 지정한다. 이렇게 지정된 업체가 대통령에게 상납하지 않으면 괘씸죄에 걸린다”라고 과거의 관행을 설명한다.

국산화사업과 관련된 율곡사업 참여 업체들의 뇌물은 청와대에 직접 전달됐기 때문에 현재 검찰이 진행하고 있는 재벌 소환 조사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스위스 은행에 예치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율곡사업 관련 검은돈이다. 한 무기상은 이에 대해 “이제 나라 밖에 숨은 노태우씨 자금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에 있는 비자금과 부동산은 어찌됐든 크게 보면 국내 재산이지만, 이미 해외로 빼돌린 비자금은 밀반출된 국민 세금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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