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에 ‘개발 물결’ 굽이친다
  • 훈춘·도문/글·사진 이흥환 북경 특파원 ()
  • 승인 1996.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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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개발 현장/도문-훈춘 철도 개통, 훈춘-나진 광케이블 설치 완료…기반 시설 갖추고 ‘약진’ 태세
 
두만강 하구에 개발 열풍이 번지고 있다. 도로·철도·통신 등 두만강개발계획의 기간 시설이 속속 개통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의 깃발을 펄럭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6월1일 오전 9시16분 훈춘 시내에서 2㎞ 남짓 떨어진 서쪽 외곽에서는 학생 고적대의 팡파르 연주에 이어 오색 깃발로 치장한 기차와 객차 16량이 기적을 울리며 도문을 향해 출발했다. 도문-훈춘간 철도 개통식이었다. 이 날의 철도 개통식은 행사 시간이 유난히 긴 중국의 관습을 깬 파격적인 것이었다. ‘16’에 대한 중국어 발음(야오료)이 행운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해서 이례적으로 15분 만에 식을 마치고 정확히 9시16분에 객차 16량의 출발을 알리는 기적 소리를 울린 것이다.

훈춘-나진간 육로 개통 임박

도문-훈춘간 철로가 연결됨으로써 훈춘변경경제합작구(훈춘합작구)를 거점으로 한 두만강 하구 개발계획은 비로소 ‘책상’위에서 내려와 ‘현장’에 발을 디디는 계기를 마련했다. 도문에서 훈춘으로 연결된 철도는 10월31일 전에 훈춘합작구를 경유해 중국과 러시아 접경지인 장링즈(長嶺了)를 통해 러시아의 자르비노 항까지 개통될 예정이다. 장링즈는 길림성에서 러시아로 통하는 유일한 세관이며, 6월 말부터는 제3국인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게 된다. 3국인 통행이 가능하도록 러시아측이 세관 시설을 손질하고 있다.
 
훈춘 시내와 합작구를 잇는 철도 구간 공사는 현재 마무리 중이며, 국제 화물역이 들어설 러시아 변경 장링즈까지 3백m 구간만 남겨놓은 상태이다. 훈춘에서 장링즈로 이어지는 도로변에는 훈춘합작구에 거주하게 될 외국인들의 별장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이 공사는 한국인이 맡았다).

훈춘-자르비노 철도가 개통되면 중국은 19세기 말 이후 꿈 꾸어온 동해 진출을 실현하게 된다. 중국이 적극 추진하는 두만강개발계획의 1차 목표를 달성하는 셈이다.

두만강개발계획 입안 단계부터 실무를 담당해온 길림성 인민정부 개발판공실 丁士晟 부비서장은 “옐친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양국 정부 간에 9개 항을 합의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훈춘-자르비노 철도 개통이다. 지난 5월23일에는 자르비노 행정장관을 만나 철도 개통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러시아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모두 이 일에 적극적이다”라고 말했다. 자르비노 항의 수심은 10만t급 배가 정박할 수 있을 정도이다.

95년 8월에는 이미 자르비노 항과 일본 니가타 항을 잇는 항로가 개통되었으며, 청진-니가타 항로에도 현재 배들이 오가고 있다. 또 이미 나진-부산 항로를 통해 한국의 원자력 발전 설비가 나진으로 들어가고 있기도 하다.
올해 말 개통을 목표로 막바지 공사 중인 또 하나의 도로는 훈춘에서 북한의 나진을 잇는 새로운 육로이다. 이 구간에서 현재는 구도로가 사용되고 있으나 중국 구간에서는 훈춘에서 두만강 국경 권하(圈河)에 이르는 길이 아직 비포장 도로이며, 북한 구간에서는 원정리에서 나진까지 48㎞ 구간을 보수 작업 중이다. 흔히 권하 도로라 일컫는 이 육로는 현재 훈춘에서 북한의 나진·선봉 지대로 통하는 유일한 공무 통로 구실을 하고 있다.

훈춘 시 정부 李文善 부사장은 “권하에서 나진까지는 자동차로 천천히 달려도 한 시간 반이 안 걸리는 거리이다. 이 구간 육로가 개통되어 본격적인 통행이 이루어지면 훈춘에서 나진·선봉까지 한 시간 거리로 단축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남은 문제는 세관이다. 84년 이전까지는 이 통로에 세관이 운영되었는데 통과 인원이 줄자 폐쇄되었다. 지난해 6월부터는 공무 세관으로 재가동되고 있으며, 정사성 부비서장의 말에 따르면 북한측이 등급을 1급 국제 세관으로 올리기를 희망하고 있고, 길림성 정부도 별 이의가 없기 때문에 올해 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에는 1급 세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한국인이 비자 없이 나진·선봉 지대에 들어갈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 길림성 정부 관계자들의 말이다. 한국인이 여권만 가지고 나진에 들어가 2주간 체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훈춘합작구가 10월31일 개통을 목표로 마지막 손길을 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역작은 훈춘-나진간 광섬유 케이블 설치이다. 일부 국내 언론이 현재 통신망 연결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으나, 훈춘 시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통신망은 올해 초 이미 설치가 완료되었다. 단지 나진 지역의 설비가 아직 갖춰지지 않아 개통을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광섬유 통신망을 작동시킬 7층짜리 통신센터 건물은 이미 훈춘합작구 안에 들어서 있다. 앞으로 17층 규모로 증축될 예정이다. 훈춘합작구 판공실 金山虎 부주임은 “올해 안에 만 회선을 가동하고, 통신센터 설비가 완공되면 12만 회선을 가동할 예정이다. 자르비노 항까지 통신망 연결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훈춘합작구의 국제 전화선 용량도 이전에는 6천 회선이던 것이 지금은 4만 회선으로 늘었다.

훈춘합작구에는 이미 한국 기업이 진출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1차로 5백80만달러를 투입해 지난 4월부터 연간 7만2천t 규모로 쇠파이프를 생산하는 현대강관 金官泳 지사장은 훈춘에 투자한 배경을 묻는 질문에 “북한과 러시아를 보라”고 짤막하게 답변했다. 현대강관의 생산품은 현재는 전량 중국 내수 판매용이다.

보온 내의를 생산하는 동일방직은 이미 훈춘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한국 기업으로 손꼽히고 있고, 쌍방울은 공장 5개에 6천8백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밖에도 연합인슈(3천6백만달러 투자)와 동아건설(훈춘합작구 내에 상가 조성중)이 훈춘의 대표적인 선두 주자로 자리를 잡았다. 훈춘 시 정부 이문선 부사장의 표현대로라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가장 성공한’ 기업이 한국 기업이다.

훈춘합작구에는 외국 기업이 71개 진출해 있다. 한국 기업이 28개로 가장 많고, 홍콩·일본·북한·싱가포르·미국·러시아 순으로 열두 나라 기업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북한은 사우나·식당·박하 약재 등 7개 업종의 기업이 훈춘에 자리잡았다.

88년 5월 현에서 시로 승격한 훈춘 시는 그 해 12월12일 대외경제개발지역으로 확정되었다. 90~91년은 1단계 개발 단계였다. 주로 부동산 개발에 치중했다. 2단계로 도로·통신망 개설을 마무리한 후, 3단계로 95년부터 외국 기업을 30개 유치하기 시작했다. 외국 자본이 본격적으로 훈춘에 유입되기 시작한 것도 95년 10월부터이다.

인구 20만8천명이던 소도시 훈춘 시는 합작구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외부 인력이 유입되고 유동 인구도 점차 늘어나 현재는 유동 인구를 포함해 23만명을 웃돌고 있다. 훈춘합작구 판공실 김부주임은, 합작구의 전체 인구를 25만명까지 수용할 계획이며, 훈춘 시 인구 25만명과 합쳐 전체 인구가 50만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훈춘은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모습이다. 외국 자본의 투자량 변화 추이가 훈춘의 위상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95년 10월 이후 현재까지 7개월 남짓에 훈춘에 투자된 외자는 8천만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10월 이전의 총투자량은 1천9백만달러에 불과했다. 단 7개월 만에 6년간 투자액의 무려 4배가 유입된 것이다.

길림성 정부 차원의 두만강 하구 개발에 대한 집념도 이제 서서히 위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길림성 정부 全哲洙 부성장은,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발표한 ‘95계획’안에 두만강개발계획과 관련된 열한 글자를 삽입한 것은 엄청나게 큰 수확이라고 말한다. 현재 중국이 유엔개발계획(UNDP)과 합작하고 있는 지역 개발 계획 3개(서남지역 메콩강 개발과 신강 개발, 두만강 개발) 가운데 ‘95계획’에 포함된 것은 두만강개발계획뿐이라는 것이다.

두만강 하구 개발은 중국의 전략 사업

두만강 하구 개발은 지방 정부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중국이 설정한 대외 개방 지구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동남 연해 지역과 양자강 양안 지대, 또 하나가 변경 지대이다. 특히 동해의 해상 통로를 확보하는 동시에 동북아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두만강 하구 개발은 중국 정부의 전략 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이붕 총리와 주용기·전기침 부총리 등이 모두 훈춘을 다녀간 것도 이례적인 일이지만, 강택민 국가 주석이 지난 4년 동안 두 차례나 변경인 훈춘을 방문한 것도 외자 흡인 위력을 발휘하는 데 큰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한편 연길 시에서 도문을 거쳐 훈춘 방면까지 3시간 남짓 걸리는 자동차 길은 내내 두만강변 중국 국경을 따라 이어진다. 중국 쪽의 왕복 2차선 강변 도로에는 화물차와 승용차 들이 쉴새없이 오가지만 강 건너 북한쪽 강변은 초여름의 싱싱한 신록이 무색하리만큼 고즈넉하기 짝이 없다.

두만강 하구의 강폭은 지역에 따라 좁아지기도 하고 모래톱이 펼쳐지며 넓어지기도 하는데, 평균 백~1백50m 안팎이다. 헤엄을 치거나 모래톱을 걸어서 보통 사람이 어렵지 않게 건널 수 있는 지형 조건이다. 두만강변 곳곳에는 탈북자들의 애환이 서려 있기도하다. 전철수 부성장은 국경이 조용하다고 말한다.
훈춘 시와 연길 시 사이에 있는 도문(아래 상자 기사 참조)은 두만강 양안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대비해 보여준다. 도문에는 조선족 8만4천명이 산다. 전체 시 인구의 60%로 중국 대륙에서 소수 민족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며, 생활 수준도 길림성의 다른 지역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마침 지난 6월1일은 어린이날이라 도문 강변에는 치마저고리를 차려 입은 조선족 젊은 아낙네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휴일을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바로 건너편 북한 땅은 함북 온성군 남양(南陽)의 노동자구이다. 9천명 인구의 읍 단위로 주민 대부분은 철도 공원들이다. 이들은 5~6층짜리 낡은 아파트에 모여 산다. 우중충한 아파트 건물 바깥으로는 빨래가 한두 점씩 걸려 있고, 방안에서 창문을 통해 물끄러미 도문의 ‘휴일’을 내다보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두만강을 사이에 둔 96년 6월 초여름의 강 양안은 한 장의 흑백 사진과 총천연색 활동 사진이 대비를 이룬다.

훈춘을 핵심 거점으로 하는 중국의 두만강 하구 개발은 이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도로·철도·항만·통신·전력·급수 등 공업단지가 들어설 수 있는 기반 시설의 골격은 갖추어졌다. 손님을 맞이할 최소한의 채비는 차린 셈이다. 외국 기업도 들어서기 시작했다. 세계 금융기관을 움직일 일만 남았다. 이는 지난 4월 북경에 설치된 두만강개발회의 사무국이 떠안을 숙제이다.

숙제는 또 있다. 북한이 추진하는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와의 연계이다. 북한은 나진·선봉 지대 개발에 관한 한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훈춘과 연결되어 나진에 이르는 원정리 도로 보수 공사는 지지부진하다. 역시 훈춘과 연결되는 자닌 통신센터도 아직 제기능을 하기에는 무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훈춘-나진간 통신망 개통이 예정 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나진-훈춘의 관광 상품이 언제 나진항을 통해 한국 소비자의 눈길을 끌게 될는지는 아직 장담하기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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