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은 미인대회 뒷얘기
  • 宋 俊 기자 ()
  • 승인 1998.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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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계 “여성 상품화 말라” 폐지 주장…시청자 참여 막는 채점도 문제
‘이게 무슨 장난인가. 전파 낭비다.’(lachef72) ‘무늬만 미스 코리아 아니에요?’(youn928) ‘IMF 끝날 때까지 대회 자체를 연기하라.’(대전사랑) ‘짜증나는 미스코랴, 방송에 지겹게 출연하겠죠?’(과거완료) ‘길거리 미인이 웃는다.’(튀누마)…

지난 5월23일 열린 98 미스 코리아 선발 대회를 두고 사흘 동안 PC통신 하이텔에 날아든 항의문 수천 통 가운데 일부다(괄호 안은 통신자 ID). 29일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들이 MBC 본사 앞에서 ‘미인대회 안방 중계’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대회 폐지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문제의 발단은 매년 대회를 중계해 온 MBC가 올해 새로 도입한 ‘컴퓨터 채점 프로그램’의 계산 착오에서 말미암았다. 심사는 세부 항목 구분 없이 각 후보자에 대해 한 차례 종합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었다(100점 만점). 심사위원은 9명. 즉시 ‘두 자리 숫자 9개의 평균을 뽑는데 어떻게 컴퓨터 오류가 나올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여기에 PC통신 참가자들의 불만·심증이 가세하면서 ‘뭔가 비리가 숨어 있다’는 의혹으로 발전했고 ‘검찰이 수사해 진상을 밝혀 달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사태가 급진전하자 주최측은 재빨리 사과와 함께 해명서를 발표하고, 5월30일 재심사 대회를 열었다. 해명서에 따르면, 점수 집계 컴퓨터 9대 가운데 세 번째 심사위원의 컴퓨터가 일부 점수를 누락시키는 바람에 몇몇 후보의 평균 점수를 대폭 깎아내린 결과를 낳았다.

“지성·교양 점수도 매겨라”

올해 대회는 본선에 진출한 후보 62명 가운데서 1차로 15명을 선정하고, 여기에서 가려낸 최종 후보 8명 가운데 5명에게 ‘미의 여왕’이라는 영예를 안겨 줄 예정이었다. 검산 결과 점수 누락으로 최종 후보 8인에 들지 못한 피해자는 모두 4명, 이 덕분에 2명이 어부지리를 얻었다.

주최측은 피해자 4명을 최종 후보로 추가해, 3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12명이 경합하는 초유의 재심사 대회를 가졌다. 재심 결과는 진으로 뽑혔던 최지현양(서울 진)이 재선발되고, 선 2명·미 3명 등 애초 예정보다 수상자를 3명 늘리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최측과 시청자 사이에는 좁히기 어려운 의혹의 간극이 존재한다. 쌍방의 편차가 제일 심한 대목은 입상자에 대한 평가다. 많은 시청자가 나름으로 심사를 하면서 대회를 지켜보는데, 그 결과가 영 딴판이어서 심사 결과에 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PC통신 참가자 대부분이 ‘초반에 탈락할 줄 알았던 후보가 어떻게 여왕이 되느냐’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한 것이 좋은 예다. 90년 이후 깨지지 않은 ‘서울 진=미스 코리아 진’ 기록도 의심의 빌미로 지적되었다. 특히 시청자의 불만은 후보의 지성·교양 부문에서 두드러진다. ‘최소한의 교양과 상식 정도는 점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점잖은 지적에서부터 ‘필기 시험·IQ 테스트·체력 측정·인터뷰 점수까지 종합 평가하라’는 격앙된 주장에 이르기까지 불만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폭넓다.

이에 대해 주최측인 한국일보사 관계자는 “지성보다 미모에 무게를 두는 것이 사실이다. 미모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법이다.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가 가능하겠는가”라고 말했다. 특히 피부의 상처나 성형 여부, 몸매의 균형 등이 민감한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몸매 관리 등으로 많게는 1억원 써

이 견해 차이는 불신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 심사 결과에 대한 불신은 93년의 뇌물 수수 사건 이후 한층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전 <한국일보> 상무이사 겸 미스 코리아 사업본부장 김중기씨가 서울 마샬미용실 하종순 원장(당시 대한미용협회장)으로부터 4년에 걸쳐 모두 9천만원을 받아 챙긴 사건이었다. 당시 마샬미용실은 90∼93년 ‘4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77년 이후 미스코리아 진을 아홉 사람이나 배출한 명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주최측은 말썽의 소지를 없애려고 심사 방식과 심사위원 선정 방식을 바꾸었다고 밝혔다. 한국일보사 기획홍보실에 따르면, 매해 새로 구성되는 ‘운영위원회’(그룹 경영진이 운영위원 선정)가 본선 대회 며칠 전에 심사위원을 선정해 하루 전에 통보한다. 심사위원들은 행사 당일 오전에 개별 면접 방식으로 본선 예비 심사를 하고, 대회를 지켜보면서 다시 평가한다. 따라서 평상시 대회 준비 및 기획을 맡은 사업부와 심사위원이 밀착할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원천 봉쇄된다는 설명이다.

컴퓨터 오류로 망신살이 뻗치기는 했지만, 93년 이후 나름으로 본선 대회가 틀을 잡아가는 와중에, 이제는 불씨가 지역 예선으로 옮겨 붙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일보사는 국내 15개 지역 예선 가운데 6곳을 지방 신문사에 위임해 진행하고 나머지는 자사 취재본부를 통해 직할 운영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 단위로 구태가 재현되는 조짐이 있다고 몇몇 제보자가 강력히 주장했다.

담합과 부정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지역 행사의 구조상 막후에는 여전히 ‘검은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예년보다 후보가 10명 정도 부족해 미용업계가 정신없이 뛰어다닌 ㄱ지역의 경우나, 한 미용실에서 지역 진이 여덟 차례나 배출된 ㅈ지역의 사례는 공공연한 비밀에 해당한다. 심지어 한 대학 같은 과 학생 5명이 동시에 지역 예선에 참가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채점 방식도 구설에 올랐다. 심판의 편향성을 상쇄하기 위해 최고·최저 점수를 뺀 나머지 점수로 평균을 내는 올림픽 방식을 택하자는 의견도 상당수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 <한국일보>측은 “그 방식도 고려했다가 마지막에 세계 미인대회 방식을 따른 것이다. 내년에 다시 검토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경비도 만만치 않다. 참가비는 따로 없지만, 몸매 관리·치아 교정·성형 수술로 들어가는 돈이 적게는 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마샬미용실의 자리를 대체한 ‘미인대회 사관학교’ 서울 ㅅ미용실의 경우 사람에 따라 정장 백만∼3백만원, 정식 화장 한 번에 60만∼90만원, 화장·머리 치장 교육(10회)에 50만∼백만원, 화장품·머리 치장 세트에 2백만∼2백50만원 하는 식으로 경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미스 코리아·주최자·방송국 ‘횡재’

1년 이상 준비하는 재수·삼수도 드물지 않다. 서울 ㄱ성형외과 마케팅 실장 ㅈ씨는 전문 미장원과 성형외과는 남매지간이라고 말한다. 미용실에서 ‘기본 선’에 맞는 후보를 발굴하면 바로 ‘몸 만들기’에 들어간다. 몸매·걸음걸이 교정에서 성형 수술을 거치는 사람의 경우 2년 정도로 기간을 넉넉히 잡기도 한다.

이래저래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여기에는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미스 코리아 대회가 수요·공급자에게 두루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것이다. 참가 후보는 신데렐라를 꿈꾼다. 미스 코리아 입상자에게는 방송·연예계의 스타덤으로 직행하는 엘리베이터가 열려 있다. 미스 코리아를 ‘배출’한 미용실·성형외과·패션 업체는 막대한 홍보 효과를 누린다.

대회를 독점 중계하는 MBC에는 광고가 몰려 든다. 대신 중계권료를 주최자인 한국일보사에 지급한다. 대회 경비가 만만치 않지만, 주 협찬사인 태평양화장품이 비용을 부담한다. 태평양화장품은 미스 코리아 대회 협찬사라는 권위를 적극 활용해 화장품 시장을 석권하는 데 성공했다.

이 ‘마이다스 네트워크’에서 제외된 것은 시청자와 여성 일반이다. 방송 전파 시스템이 세금으로 운영되는데도 시청자의 요구가 전달될 통로는 보이지 않는다. PC통신에 드러난 시청자의 갈망은 ‘대회 진행 소프트웨어 개선’과 ‘심사의 공정성’에 집중된다. 심사 공정성에 대한 통신자들의 바람은 다음 한마디가 잘 요약하고 있다. ‘시청자 투표·방청객 투표·컴퓨터 채점을 반영하라.’(unbaneye) 시청자(소비자) 없이 어떻게 ‘마이다스 네트워크’가 운영되겠느냐는 무언의 항의인 것이다.

외국에서는 케이블 TV가 중계

문제는 좀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대회의 존재 의의에 대한 부정이다. 여성운동가의 눈에는, 어쨌든 미인대회가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것이다. 여성의 몸을 수치화하고 점수화하는 현실 자체가 인간 소외 현상일 뿐더러, 그 역기능이 자못 크다. PC통신에도 드러났듯이, 이미 많은 사람이 나름으로 채점을 하면서 미스 코리아 후보를 대하는데, 이 채점 습관은 거리로, 직장으로 이어진다. 미스 코리아 대회는 무서운 번식력을 보여주고 있다. 슈퍼 모델·슈퍼 엘리트 모델·슈퍼 탤런트 같은 전국 규모 대회가 줄을 이었고, 백여 개의 특산품·지자체 미인대회가 줄지어 생겨났다(44쪽 상자 기사 참조).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단기간에 대회를 폐지하지는 못하더라도 ‘미인대회 안방 중계’만큼은 금지시키겠다는 각오다. 능력 있는 여성마저 직장에서 떨려나는 IMF 상황에서 상품화한 미모 하나로 출세를 보장받는 현실은 ‘노동의 정의’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영국·캐나다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같은 부작용을 인식해 공중파 대신 케이블 텔레비전이 중계를 맡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주체성이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수단으로서의 미모, 그 유혹을 이겨낼 때 아름다움이 저절로 제 역할을 찾는다.” 제3세대 여성운동가 나오미 울프(미국)의 지적이다. 유혹과 강요를 벗어나 진정한 ‘미의 신화’를 건설하고, 다시 그 ‘미의 신화’마저 넘어서라고 울프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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