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훈 중위 유품에서 '타살 정황 증거' 발견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8.05.0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문사한 김 훈 중위 유품에서 발견된 ‘타살 정황 증거’
지난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발생한 김 훈 중위 의문사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4월14일 <시사저널> 제443호가 이 사건을 보도한 이후 주요 언론들의 후속 보도가 잇따랐고, 4월15일에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도 이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국방위 소속 하경근 의원(한나라당)이 김 훈 중위 의문사 사건에 대해 질의하자 천용택 국방부장관은 ‘아직 자살인지 타살인지 단정하지 않고 있으며, 군이 수사를 마치는 대로 그 결과를 발표하겠다’라는 요지로 답변했다.

이처럼 김중위 의문사가 사회 문제로 비화하는 가운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해 온 김 훈 중위의 아버지 김 척 예비역 육군 중장은 지금까지 한·미 수사 당국이 조사를 각각 진행하고 있으나 진상에 접근하기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며 5부(법무·인사·군수·감찰·헌병) 합동 재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김장군이 추적한 바에 따르면, 김 훈 중위가 사망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한국측 배속 부대에 엄청나고 복잡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의 죽음을 헌병대가 단순 사건으로 처리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김장군이 이처럼 수사 주체와 절차 문제에 집착하는 데는 판문점 경비부대의 군기 문란이 사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아들의 사인을 규명하는 데 열쇠가 될 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에 판문점 배속 부대의 군기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국가 안보가 위태로워진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구타·얼차려… 집단 영창… 군수품 빼돌리기

판문점 경비부대 군기 문란의 심각성은 기자가 입수한 김 훈 중위의 유품들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김중위는 사망 전 20여 명에 이르는 소대원들의 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편지는 지난 1월8일 김중위가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 배속되어 2소대장으로 취임하면서 전임 소대장(방○○ 중위)으로부터 부대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넘겨받은 것들이다.

판문점 경비부대 장병들의 심리와 불만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편지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사항은, 사건·사고가 잦다는 것이다. 군입대 5개월 만에 JSA 경비 소대에 배속된 한 신병은 ‘JSA라는 곳에 들어와 다른 한국군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엄청난 일과 사고 들을 보고 겪었다’라고 적었다. 다른 한국군 부대에 근무하다 이곳으로 배속된 한 일병은 ‘(다른 곳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피곤하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우리 소대 같은 사건은 없었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너무나도 놀라고 당황했다. 어쩌다 우리 부대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라고 적었다. 이들이 놀라고 당황하며 공포까지 느낀 것은, 잦은 구타와 얼차려, 그로 인한 집단 영창 생활, 그리고 군수품 빼돌리기와 같은 비리들이다.

험악한 부대 분위기에 체념했다는 다른 한 일병은 ‘내가 꼭 이런 데서 살아야만 하는가 생각하면서 죽고 싶을 때도 있었다. 잠도 부족하고,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대가리를 1∼2시간 박고 있는 것보다 맞는 것이 더 편했다’라고 적었다. 이런 부대 분위기에 대해 지휘관(중대장 및 소대장)에게 항변하는 대목도 적지 않았다. 한 상병은 ‘소대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계신 분이 왜 진작 바꾸지 못했는가, 진작에 (분위기가) 바뀌었으면 이런 최악의 상태는 막을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적었다.
문제는 판문점 경비부대 병사들의 이런 정서가 정규 훈련이나 근무 자체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이는 잦은 집단 구타와 얼차려, 군수품 도난 및 빼돌리기와 이에 대한 책임 추궁 등 부대원 상하 사이를 지배하는 비리와 공포 분위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또한 김중위가 취임하던 1월8일 상부에서 지휘 서신이 내려올 정도로 군기가 문란했다. 이 서신에 따르면, 집단 구타로 9명이 영창에 갔고, 그 과정에 음주가 관련되어 있음과 주요 장비가 분실되는 현실을 개탄하고 시정을 지시하는 내용이다. 특히 개인 장비 중 고어텍스·윈터 부츠·나침반 등이 없어졌는데, 오랜 구습으로 전해 내려오는 판문점 경비부대의 보급품 분실은 부대원들이 밖에 내다 판 것으로 밝혀졌다고 적혀 있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2소대장으로 취임한 김 훈 중위는 처음 한 달 동안 부대 분위기 숙지와 비리 척결을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김중위는 취임 첫날부터 사망 직전까지 매일같이 근무 일지를 꼼꼼하게 작성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김중위의 근무 일지에는 더욱 충격적인 군기 문란상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우선 취임 첫날인 1월8일 김중위는 판문점 근무 소대장으로서의 자부심과 포부를 적어 놓았다. ‘자기와의 싸움’ ‘지휘관의 구미에 맞는 임무 완성과 소대 수준에 맞는 지휘’‘소대와 동화를 통해 자기 소대 만드는 것’등을 기록해 신임 소대장의 근무 의지를 내비쳤다. 더 나아가 ‘육사 52기 대표’라고 적음으로써, 모범 장교로서의 자부심과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의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비리 실태 파악한 김중위, 원대 복귀 전날 사망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김중위의 근무 일지에는 부대내 비리와 관련한 용어들이 등장하고, 이를 막기 위해 부대원들의 신상과 성향을 파악해 적어둔 내용도 차츰 늘어난다. ‘탄 은닉’‘구타’‘총기 분실’‘총기 장난’‘탄 판매한 얘기’ 등과 같은 내용이 곳곳에 적혀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 정신 교육을 하고, 부대원 서랍을 뒤졌다는 내용도 있다. 또 초소 근무 때 부대원 간에 구타 및 총기 위협 사건이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 신상 필벌을 다짐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선임자 지적에 부하가 멱살을 잡는 하극상 실태를 비롯해, 술을 먹고 초소 근무를 선 사병의 명단도 들어 있다. 김중위는 근무 일지 상당 부분에 이같은 군기 문란을 막기 위한 징계 문제와 소대원을 접촉해 파악한 가정 환경·성격·인간 관계 등을 적어 두었다. 또 이런 열악한 부대 환경에서 자살하는 병사가 나올 것을 염려한 듯 ‘자살 방지 교육’ 내용도 영문으로 기록해 두었다.

김 훈 중위의 근무 일지 가운데 특별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적은 내용이다. ‘비리’라는 제목이 달린 이 항목에 김중위는 ‘①BRF 오발. 사진 찍고 ②권총 해칠 X ③훈련장 위치, Story impact ④음주 운전, 새벽 3시 ⑤OP2O(초소) 술(음주) - 김천웅’이라고 써두었다. 날짜는 정확히 적혀 있지 않지만 근무 일지 마지막 장에 적혀 있다는 점에서 이 기록이 사고 직전에 작성되었다면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내용으로 보인다. 2월24일 사망한 김중위는 다음날인 2월25일 5일 간의 판문점 근무를 끝내고 원대 복귀할 예정이었다. 판문점 경비부대에서 일어난 사건·사고 처리는 부대장이 복귀한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질 경우 이 기록은 김중위 사인 조사와 관련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김 훈 중위의 근무 일지 가운데 특별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적은 내용이다. ‘비리’라는 제목이 달린 이 항목에 김중위는 ‘①BRF 오발. 사진 찍고 ②권총 해칠 X ③훈련장 위치, Story impact ④음주 운전, 새벽 3시 ⑤OP2O(초소) 술(음주) - 김천웅’이라고 써두었다. 날짜는 정확히 적혀 있지 않지만 근무 일지 마지막 장에 적혀 있다는 점에서 이 기록이 사고 직전에 작성되었다면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내용으로 보인다. 2월24일 사망한 김중위는 다음날인 2월25일 5일 간의 판문점 근무를 끝내고 원대 복귀할 예정이었다. 판문점 경비부대에서 일어난 사건·사고 처리는 부대장이 복귀한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질 경우 이 기록은 김중위 사인 조사와 관련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재수사해야 하는 네 가지 이유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정황 증거가 될 만한 자료들을 군 수사 당국이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척 장군이 타살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며 5부 합동 재수사를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판문점 일대가 국가 안보의 최전방 보루라는 점에서 5부 합동 조사를 통해 군기 문란 상황을 철저히 조사해 시급히 개선해야 함은 물론, 김중위의 사인도 규명해야 한다고 군 당국에 요구하고 있다.

김장군은 더 나아가 그동안의 추적을 통해 ‘김중위는 타살된 흔적이 짙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자료 및 증거, 증언록 등을 군 수사기관에 넘겨주려 해도 한·미 양측 수사 당국은 ‘수사 개입 불가’ 입장을 내세워 접촉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5부 합동 조사가 시작되면 넘기겠다고 밝히는 정황 증거와 의문점은 다음과 같다.

① 타살 흔적 짙은 현장 상황:VIP 방문이 취소된 2월24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김중위와 같이 있었던 부대원의 행적과 진술이 엇갈림(녹취록). 김 훈 중위가 사망 당시 소지한 무전기가 현장에서 없어짐(현장 지도 요도, 녹취록). 맨 처음 김중위 시신에 손을 댄 부대원의 지문 및 행적 조사가 없었던 점(증언, 녹취록). 김 훈 중위 사망 직전 출타 시간에 대한 소대원들의 엇갈린 진술(녹취록). 총탄 박힌 지점이 김중위의 키(175cm)보다 10cm 낮고, 미군측 시험 결과 누구 손으로 쏘았는가(지문)가 드러나지 않은 점. 오른손잡이인 김중위의 왼손에 탄약이 묻어 있고, 시신 주위에 피가 몇 방울밖에 없는 점. 현장을 보존하지 않고 당일 페인트로 칠한 점.

② 허술한 초동 수사와 자살로 몰고간 수사 태도:사건 발생 시간 판단이 불분명함. JSA 카투사 상황병과 미군 DDO 및 작전처 부처장은 총소리를 들었다고 보고했으나,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소대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총성을 못 들었다고 진술하는 점. 김중위의 근무 일지, 부대내 지휘 서신, 장병 불만 편지 등이 있음에도 수사 기관이 이들 자료를 확보하지 않고 형식적 구두 진술에 의존한 점. 소대장 주변 인물 및 부대 문제점 등 사망 동기로 의심되는 사항에 대한 조사가 없었던 점(주변 인물들의 옷·장갑에서 지문을 전혀 채취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보장된 유가족의 현장 참관 차단.
③ 한·미 공조 수사가 혼선을 빚은 점:미군은 수사 요원이 도착하기 전에 서둘러 자살 보고를 올렸고, 한국측 수사 요원 접근을 차단함. 이후 재수사 때도 수사 지휘 책임과 권한을 밝히지 않아 과연 이 수사를 누가 주도하고 종합 분석·발표하는지 불분명. 그 과정에서 한·미 양측이 핑퐁 게임 식으로 수사 책임을 미룸.

④ 자살할 동기와 근거 불분명:유서와 메모가 없다. 사망 직전까지 ‘군의 명예’를 근무 일지 곳곳에 적어두었다. 사건 2주 전 외박 나와 소대내 문제 사병 처리 문제를 아버지와 상의하고, 희망찬 군생활 계획을 밝혔다. 사고 전에 3월 부대 훈련 및 친구 만날 계획까지 꼼꼼히 기록한 일기. 항시 명랑해 아무도 자살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부대원 진술. 대를 이은 군인 가족의 명예를 항상 소중히 여겼고, 육사 출신 장교 중 현역에서 자살한 사람은 없었다.
이상과 같은 의문점 및 자체 확보한 증거 자료들을 토대로 김 척 장군은 국방 당국에 5부 합동 조사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군 당국은 곧 그 동안의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군의 한 관계자는 “오는 4월29일 미군측과 한국군측이 각각 조사한 내용과 결과를 (미군)CID가 발표할 것이다. 유족에게도 통보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척 장군은 “CID 본부가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2명의 참관을 허용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그런 비공개 수사 발표장에는 가지 않겠다. 5부 합동 조사를 통해 공개 장소에서 발표할 경우 설령 자살로 나오더라도 기꺼이 수용하겠다”라고 말했다.

국방 당국과 김 척 예비역 장군이 수사 주체·절차·내용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김 훈 중위 사망 사건은, 단순한 ‘군대내 사고’ 이상의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군 CID가 수사 결과를 발표해도 그동안 공개리에 제기해 온 의문이 풀리지 않을 경우 완전한 수사 종결은 없다는 것이 김 척 장군의 입장이다.

아울러 그는 엄청난 국가 경비를 지출해 양성한 육사 출신 군 간부의 사망 사건을 미군과 한국군 사이의 곤란한 문제라 해서 덮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김중위 사망 사건 진상 규명을 계기로 그동안 한·미 간의 수사권·관할권·책임 등을 둘러싸고 드러난 문제점들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