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납량 행정'에 공무원 오들오들
  • 광주·羅權一 주재기자 ()
  • 승인 1998.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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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만 전남 도지사, 1백55명 ‘퇴출’시켜…“무리한 인사로 예스맨 양산” 우려
최근 전라남도의 파격적인 ‘구조 조정’이 관가에 화제가 되고 있다. 전라남도(도지사 허경만)는 지난 9월11일 중·하위직 공무원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면서 1백55명을 대기 발령 형식으로 퇴출시켰다. 이 중에는 뇌물 수수 등으로 견책·감봉·정직 따위를 당한 18명이 포함되어 있으며, 공무원 사회에서는 이례적으로 전화를 불친절하게 받은 공무원 6명과 금융기관에 5천만원 이상 빚을 진 봉급 압류자 15명에 대해서 사실상의 해고인 대기 발령을 하는 파격적인 인사가 단행되었다.

그러자 전남도청 공무원들은 공포감까지 느끼는 분위기이다. 한 공무원은 “언제 어디서 누가 테스트할지 모른다는 압박감 때문에 ‘전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민원인과 얘기하다가도 책상의 전화벨이 세 번 울리기 전에 받고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허지사, 특정 지역 출신자 파격 승진시켜 ‘눈총’

전라남도의 ‘불친절 공무원 퇴출’은 지난해 7월 허경만 도지사가 ‘전화 친절 여부를 인사에 반영하겠다’고 말한 뒤 전라남도가 여론조사 기관에 용역을 맡겨 1년여 동안 평가한 자료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사를 담당한 총무과의 한 관계자는 “매월 가장 불친절하게 전화를 받은 공무원들을 1위부터 10위까지 선정해 10위권 이내에 두 번 이상 포함된 사람들을 대기 발령 조처했다. 이들 6명은 공무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성실 의무를 위반했으니 충분한 퇴출 사유가 된다”라고 말했다.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이 퇴출되는 현실을 목격한 전남도청 공무원들은 별다른 반발도 못한 채 허지사의 ‘강공 일변도’에 숨을 죽이며 전전 긍긍하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론조사 기관을 통한 ‘전화 테스트’가 올해 12월까지 계속될 예정인데다, 도청 출입구에서 점심 시간이 끝난 1시 이후에 사무실에 복귀하는 직원을 체크하는 등 퇴출 대상자를 가려내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라남도는 최근 조직을 개편하면서 정원을 4백66명 감축하기로 했기 때문에 퇴출시켜야 할 공무원이 아직 3백여 명이나 남아 있다. 따라서 전라남도가 단행한 파격적인 ‘문제 공무원 퇴출’은 재선에 성공한 허경만 도지사의 거침없는 행보를 드러냈다는 것이 중론이다.

허경만 도지사는 지역 관가에서 회자되는, 자신의 인맥을 지칭하는 3S(순천 출신, 순천고·성균관대 졸업자)에 대한 잡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근 단행한 인사에서 순천 출신 공무원들을 ‘발탁 인사’라는 명분으로 전진 배치했다. 허지사는 이 와중에서 도청 계장급 공무원을 3∼4년 만에 국장급으로 파격 승진시키는가 하면, 고스톱을 치다 적발된 관료를 오히려 승진 발령하는 등 무리한 인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남도청의 한 간부급 공무원은 “일을 열심히 하기보다는 도지사의 신임을 얻으려고 애쓰거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시키는 일만 하는 관료들이 늘고 있다. 예스맨과 정치 공무원을 양산하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막강한 인사 칼날을 휘두르며 공무원들을 ‘추풍 낙엽’으로 만든 허경만 도지사의 거침없는 행보는 사실 지난 6월 재선에 성공하면서부터 예견되었다. 5선 의원 출신에다 국회 부의장 경력을 지닌 정치 거물 허경만 도지사는 특유의 정치력으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이미 독주 체제를 갖추었다는 것이 지역 정가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허지사는 이미 지난 3년의 도정 경험을 통해 도청 관료들을 완정히 장악한데다, 현재 도의회마저 허지사의 위력에 눌려서 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지역 정가에서는 도청 내부 인사나 도의회와의 관계 등 모든 부문에서 허지사의 독주 체제를 우려하는 시각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양형일 교수(조선대·행정학)는 “도지사가 아무리 뛰어난 정치력과 행정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엄연히 도의회는 도의 최고 의결기관이다. 도지사가 주민의 대표기관인 도의회의 위상을 인정해 집행부와 의회가 함께 발전해 가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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