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가’로 변한 학교, 재활용 시급
  • 경주·함안·許匡畯 기자 ()
  • 승인 1995.03.3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년 3백개 폐교후 방치…부동산 투기 우려도 있어
경북 경주 시가지에서 20여 리 떨어진 암곡동 왕산국민학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한 학년씩 진급한 꼬맹이들이 새로 사귄 반 친구들과 뛰노느라 왁자지껄한 소리로 소란스러울 법도 한데, 운동장에 가득 찬 것은 정적이다. 교정을 둘러싼 나무 울타리 안에 삶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끄럼틀이며 철봉 주위에 총총히 들어선 것은 2m 남짓한 느티나무 묘목 1천4백 그루. 그러나 교실에서는 ‘학교종’도 ‘구구단’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이 학교는 작년 2월에 문을 닫았다. 한때 3백명을 넘던 학생 수가 해가 갈수록 줄어들어 마침내 폐교된 것이다. 많은 어린이가 동네를 떠났고, 좀더 많은 남은 어린이가 가까운 서라벌국민학교로 전학했다. 학교에서 동네까지는 버스가 실어다 준다.

이 학교는 폐교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운동장 일부가 나무를 가꾸는 묘포장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 건물은 그대로다. 복도 옆 신발장에 놓인 주인 잃은 2백5mm짜리 흰색 실내화 한짝도 한 해 동안 쌓인 먼지를 뒤집어쓴 채 그대로다. 교사 사택으로 쓰던 작은 부속 건물은 동네 노인들을 위한 노인정이 됐다. 어둑한 방안에서 88 디럭스 담배를 피우고 있던 이 마을 출신 조임환옹(75)은 “여기 학교를 처음 지을 때는 학교 자리에 묘가 많았재. 우리가 다 파내 이장하고 운동장을 골라 학교를 만들었구만. 그땐 주민이나 선생이나 다 욕봤다. 농사 지으며 학교 만들라카니까 그기 어디 쉽나” 하며 학교가 처음 생길 때를 회상한다.

학교가 점점 사라진다. 학생 수가 모자라 문을 닫는 학교가 갈수록 늘고 있다. 몇명 안되는 학생을 따로 가르치기보다 가까운 학교끼리 합쳐서 함께 가르치는 것이 교육 효과도 높고 재정 운영도 효율적이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많은 국민학교나 분교가 문을 닫고 있다. 작년에 없어진 학교는 3백20개. 올해 2월에도 전국 3백4개 학교가 ‘마지막 졸업식’을 치르고 문을 닫았다.
경주시 청소년 야영장 전환 ‘성공 사례’

정확히 말하면 학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학교의 주인인 교사와 학생이 떠나는 것일 뿐, 교사(校舍)는 그대로 남는다. 없어지지만 없어지지 않는 학교. 폐교되는 순간부터 학교는 또 다른 고민거리를 안게 된다. 그렇다면 덩지가 큰 학교 건물과 너른 운동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현재 교육부의 폐교 재산 관리 지침에 따르면, 문을 닫은 학교 재산은 지역 실정에 따라 △보존을 원칙으로 하여 교육 및 주민 복리사업에 적극 활용 △활용 계획이 없거나 발전성·보존 가치가 없으면 매각 처분 △국가나 다른 지방자치단체, 민간인 재산과 상호 교환 등으로 처리하게끔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학교가 폐교된 채 그대로 남아 있다. 82년부터 올해 2월까지 문을 닫은 1천4백57학교(분교 포함) 중에서 매각 처분된 학교는 15.6%인 2백28개교, 야영장이나 마을 회관 등으로 활용하는 학교는 30%인 4백37개교이며 나머지 7백92개교(54.4%)가 그냥 보존되고 있다. 서류상으로는 보존이지만, 따로 특별히 관리할 사람을 두는 것도 아니어서 이 학교들은 흉가나 폐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은 경주시로 통합된 경주군 양북면 용동국민학교 권이분교. 국도에서 구불구불한 들길 산길 비포장 도로로 20분을 올라가야 나타나는 이 학교는, 문을 닫은 지 3년 만에 글자 그대로 폐가가 다 됐다. 교실 3개의 유리창은 대부분 깨져 제대로 붙어 있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교실 뒤편 백엽상은 다 부서져 온도계 하나 남아 있지 않고, 국기 게양대도 쓰러졌다. 성한 것이라고는 아담한 운동장 둘레에 심은 소나무·무궁화 같은 나무뿐이다. 교사 사택으로 쓰이던 부속 건물에는 굳게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이 분교에서 5백m쯤 떨어져 사는 임종기옹(76)도 이 학교 터를 손수 닦은 사람이다. 광복이 되자마자 뜻있는 마을 어른들이 ‘교육 입국’이라는 뜻을 모아 학교를 세웠다. 원래 학교는 훨씬 더 윗쪽 산골에 있었으나 임옹이 마흔 살쯤 되던 35년 전에 지금 자리로 옮겨 왔다. 당시 마을 70여 가구 중 절반이 학교 터를 닦고 건물을 만드는 데 매달렸다고 한다. 물론 그 뒤로도 학교 구석구석 임옹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다.

이 마을에는 지금 30가구 정도만 남아 살고 있다. 국민학생은 단 1명. 분교가 문닫을 때는 2명이었지만, 그나마 한 어린이는 도시로 전학가고 한 학생이 시오리 아래 본교에 미니 버스를 타고 다닌다. 임옹은 학교가 문을 닫은 뒤 휑뎅그렁하게 비어 있는 교정이 보기 안타까워 보수도 없는 폐교 관리인 일을 자청했다. 손때 묻은 시설물이 여기저기 낡고 녹슬어 가는 것이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일도 두어 해 하다 말았다. 머리가 좀 큰 마을 아이들이 학교를 놀이터로 삼는 바람에 유리창이며 시설이 죄다 부서져 늙은 몸으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 임옹은 산골 동네에서 제일가는 이 학교 건물을 어떻게 해서라도 되살려 사용했으면 하고 바란다.
폐교된 몇몇 학교는 학생 야영장 같은 교육 관계 시설로 훌륭히 ‘재활용’되고 있다. 경주 양북면 구길국민학교는 92년에 폐교됐지만, 누가 보아도 버려진 학교라고 여기지 않게끔 꾸며져 있다. 학생은 없어 조용하지만, 여기저기 사람 손이 닿은 흔적이 뚜렷한 데다 자동차도 몇대 서 있다. 경주시교육청은 이 학교 운동장에 대형 텐트 9개를 세우고 관리실·양호실·강당·취사실·샤워장과 극기 시설 등을 갖추어 훌륭한 야영장을 만들었다. 경주 관내 초·중·고 학생들은 이 곳에서 2박3일 동안 단체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현재 이곳에는 교육 공무원인 연구사와 훈련을 담당하는 파견 교사 등 모두 5명이 상근하며 학생들의 단체 활동을 보살피고 있다. 작년에 모두 1만2천3백여 명이 이 야영장을 거쳐 갔다.

그러나 이처럼 제대로 활용되는 폐교 시설은 그리 많지 않다. 교육 당국의 고민은 재활용해야 할 자원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온다는 점이다. 한 해에 3백개 이상 폐교되는 데다 대부분이 두메 산골에 있기 때문에 교통조차 불편한 곳이 많다. 교육부는 농어촌 학교가 대부분 지역 주민의 토지 희사나 기증으로 세워졌고, 지역 사회에서 사회 문화의 중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팔기보다는 되도록 임대해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팔린 학교의 절반 가까이가 일반인이나 기업체에 넘어갔다. 이에 따라, 아무리 재산 소유권자가 해당 시·도 교육청이지만 주민들의 땀과 정이 밴 학교를 외지인에게 팔아 버린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 기관이던 땅과 건물을 교육 목적과 다른 용도로 활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을 주민이 학교터 매각 입찰에 참여

광복 전에 설립된 경남 함안군 군북면 하림국민학교는 93년에 폐교됐다. 함안 조씨 집성촌인 이 마을 주민에게 하림국민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마을의 정신적 지주 구실을 해왔다. 학교 부지는 마을 어른이 기증하여 마련한 것이고, 건물이며 나무 하나도 모두 주민들 손을 거쳐 지금 터에 자리잡았다. 이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이 학교 졸업생이다. 가을 운동회 같은 학교 행사가 열리는 날은 학부형이든 아니든 마을 사람 모두가 어우러지는 마을 잔칫날이 되곤 했다. 학교가 폐교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쉬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만, 학생이 모자라 학교를 유지해 나갈 수가 없다는 데야 어쩔 수가 없었다.

정작 마을 주민들이 술렁인 것은, 이 학교 터가 마산의 한 기업체에 팔려 공장이 들어서게 된다는 소식이 돌면서였다. 공장도 쓰레기를 처리하는 재활용 공장이라는 것이었다. 긴급 회의를 소집한 주민들이 짜낸 생각은 교육청이 실시하는 부지 매각 입찰에 주민들도 참여하자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희망 매수액 난에 1억원을 써 넣었다. 돈이야 나중에 농협 빚을 내서라도 마련하면 된다 싶었다. 결국 내정가가 4억5천만원이던 이 학교 부지 경매는 유찰되고 말았다. 주민 처지에서는 다행이었다. 이 학교 6회 졸업생인 마을 이장 조용섭씨(58)는 “우리가 낸 땅이라 다시 되돌려받아도 시원치 않은데, 쓰레기 공장이 들어선다니 택도 없다”고 말한다. 정말 교육 당국이 필요해서 활용하게 되더라도 꼭 주민 여론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은 교육 당국의 고민이기도 하다. 그냥 놔두어 흉한 모습으로 삭아가는 것을 지켜볼 수도 없고 무작정 철거할 수도 없다. 교육 시설을 함부로 팔아 치울 수도 없고 아무에게나 임대할 수도 없다. 교육부 담당자는 “학교가 문을 닫으면 이미 더 이상 학교가 아니다. 폐교 재산은 공유 재산이긴 하지만, 대부분 지역 주민의 땀과 정성이 들어간 특수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다고 그냥 놔둘 수는 없으므로 매각을 권장하되 지역 주민의 합의로 추진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매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동산 투기나 오염 시설 설치 같은 부작용은 관계 부처와 함께 막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하림국민학교 교사 뒤쪽 처마 아래에는 제비집이 줄줄이 20여‘동’들어서 있다. 주인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이 연립 주택에는 다른 텃새들이 전세를 산다. 사람이 떠난 자리를 자연이 메워 나간다. 새들은 황황하게 비어 버린 학교 터를 둘러싼 인간의 곤혹스러움을 알지 못할 것이다. 단지 주인이 집을 비우면 다른 주인이 그 집을 되살려 쓰는 작은 지혜를 사람도 갖게 되기를 바라는지 모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