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찰하는 ‘일본군 안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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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8.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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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야마 하루히코 주한 일본 무관/탄탄한 한 · 일 방위 교류 위해 활동
지난 8월31일 북한이 대포동 1호를 발사한 사실을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할 무렵, 주한 일본 무관 다카야마 하루히코(高山治彦·45) 일등 육좌(육군 대령)는 다음날(9월1일)로 예정된 천용택 국방부장관의 일본 방문을 준비하려고 일본에 도착해 나리타(成田) 공항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라디오를 통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사실을 처음 전해 들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드디어 북조선이 해냈군’이라고 중얼거렸다.

다카야마 무관이 이렇게 중얼거린 것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일본 방위청은 발칵 뒤집혔다. 일본은 ‘대포동 1호가 동해에 떨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는데, 한국 국방부는 ‘일본 열도를 넘어 북태평양에 빠졌다’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방위청은 한국측 보도가 사실인지를 묻는 일본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북한 미사일 탄착 지점을 다르게 발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이한 발표는 양국 국방 당국 간에 불신을 높여, 긴장감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방위청은 언론의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조사 중’이라며 답변을 미루었다.

“무관은 ‘국방의 다리’ 떠받치는 교각”

그 얼마 뒤 일본 방위청 방위심의관이 서울로 날아와 한국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만났다. 이 만남에서 양국은 북한 미사일 발사 문제를 깊이 협의하고, 정확한 탄착 지점에 관한 정보를 교환했다. 이어 북한 미사일 개발·배치 정보를 교류하고 정책 협의를 지속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공식 발표했다. 공동 발표에는 ‘우리는 한편’이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기 때문에, 이 회담에서 일본은 특히 공동 발표 성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카야마 무관은 한·일 공동 발표가 성사될 때까지 음지에서 바쁘게 뛰어다녔다. 그는 ‘무관이란 다리를 떠받치는 교각’이라고 표현했다. 한·일 방위 교류라는 다리가 건실하기 위해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는 교각이 튼튼해야 하는데, 무관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었다.

지난 10월30일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 다카야마 무관은 부스스한 얼굴이었다. 그는 웃으면서 “보직이 바뀐 한국 국방부 관계자들과 송별회를 하느라고 과음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10월1일부터 그는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 무관단 모임인 주한 무관단 단장을 맡고 있다. 이 모임은 매월 한 차례씩 각국 무관이 돌아가면서 만찬과 오찬을 주최하는 것으로, 이 모임을 통해 무관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한다.

남북이 대치하는 한국은 전쟁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다. 지난 6, 7월처럼 동해안에서 북한 잠수정이 나포되고 북한 간첩 시체가 발견되면 무관들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이럴 때마다 주한 무관단의 요청이 있으면, 한국 국방부 정보본부는 진행되는 상황을 설명해 준다. 이 브리핑이 끝나는 즉시 무관들은 보고서를 작성해 외교 행낭 편으로 자국 국방부로 보낸다.

이러한 브리핑이 있을 때마다 한국 주재 무관들 사이에 ‘약간의 실력 차이’로 인한 불협화음이 일어나기도 한다. 한국어에 능통하고 한국인의 정서까지 이해하는 다카야마 무관이나, 한미연합사를 통해 충분한 정보를 입수하는 미국 무관 등은 브리핑 내용을 금방 숙지하지만, 한국어가 짧은 다른 나라 무관들은 뉘앙스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브리핑은 영어로도 진행되지만 한국어만큼 섬세한 의미 전달이 이루어지지 않고, 영어에 서투른 무관도 있기 때문이다.

다카야마 대령은 특이하게도 일본 외무성 소속 참사관 신분을 갖고 있다. 일본은 무관이라는 말 대신 ‘방위주재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방위주재관으로 나가는 장교들은 전부 외무성 소속 외교관으로 신분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방위주재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계급과 군복을 사용하고, 무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 방위주재관이 끝나면 다시 방위청으로 복귀한다.

현재 한국에는 23개국 무관 40명이 상주해 있고, 10여 개국 10여 명의 무관은 일본과 중국에 머무르며 주한 무관을 겸하고 있다. 상주 무관 중 가장 계급이 높은 사람은 페루 무관인 페레스 중장(59)이고, 가장 무관을 많이 상주시킨 나라는 국방무관과 육·해·공군 무관 5명을 파견한 미국이다. 일본은 무관 2명을 상주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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