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 향해 돌진하는 문선명
  • 정희상 기자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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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본부 무대로 평화 행사 잇달아 개최

사진설명 신랑 신부가 유엔본부에 모인 까닭은? : 통일교 문선명 목사는 지난 1월27일 유엔 회의실에서 세계 1백50여 나라 젊은이들을 모아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이 행사는 유엔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해 노벨평화상 수상을 꿈꾸는 그의 야심을 담고 있다.

지난 1월27일 오전 미국 뉴욕 시 맨해튼에있는 유엔본부 건물에는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씨에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 남녀 3백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유엔 건물 지하 휴게실에서 각자 준비해 온 자기 나라 전통 의상으로 갈아입은 후 오후 2시에 경제사회이사회 대회의장에 일제히 입장했다. 잠시 후 한복 차림에 사모관대를 쓴 통일교 문선명 목사와, 역시 고운 한복에 족두리를 쓴 부인 한학자씨가 단상에 올랐다. 이른바 '국제 합동 축복 결혼식'이 유엔에서 열린 것이다.


1백50여 나라 실력자들, 합동 결혼식 지켜봐


이 날 결혼식은 해마다 통일교가 종교 의식으로 치러온 대규모 합동 결혼식과는 성격이 사뭇 달랐다. 유엔본부가 특정 종교 행사장으로 전락했다는 다른 종교의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이들은 행사 명칭을 합동 결혼식 대신 '세계 평화 제전(world peace blessing)'으로 불러 달라고 주문했다.

문목사 부부는 평소 합동 결혼식 때 입던 종교 의상을 입지 않고 조선의 전통 사모관대와 족두리 차림으로 식을 주재했다. 결혼식은 1백50여 나라에서 온 전·현직 국가 지도자와 유엔 대사, 비정부기구(NGO) 지도자 등 천여 명이 식장 바로 옆 제3 회의실에서 폐쇄 회로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2시간여 동안 진행되었다. 문목사는 이 날 행사를 통해 2001년을 세계 문명 사이의 대화와 화합의 해로 정한 유엔의 정신을 구현하는 데 이만한 상징적 행사가 어디 있느냐고 과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엔에서 열린 이 날 합동 결혼식은 문목사가 가진 야심의 한자락에 불과하다. 오래 전부터 유엔을 움직이는 데 심혈을 기울여 온 그는 지난해 8월 민간 기구로는 처음 유엔본부 건물을 빌려 세계 각국의 전·현직 정치 지도자와 종교 문화 지도자를 초청해 '세계 평화 토론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새해 들어서는 유엔 회의실에서 합동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유엔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아울러 이 날 유엔본부 각 회의실에서는 그가 유엔 주재 다섯 나라와 공동으로 주최한 각종 토론회도 열렸다. '세계 문명 간의 대화와 조화'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는 세계 1백50여 나라에서 초청된 전직 총리·대통령·국왕·유엔 주재 대사·비정부기구 지도자 등이 참석했다.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 댄 퀘일 전 미국 부통령, 유리 보르소노프 유엔 사무부총장, 마카림 위비소노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의장 등 명망가들이 이 행사의 사회와 발제를 맡아 눈길을 끌었다.

퀘일 전 미국 부통령은 기조 발제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각국이 강한 군사력을 통해 평화를 얻을 수도 있지만, 인류의 미래를 20∼30년만 내다보아도 각국의 새 세대에게 어떤 가치관과 방향을 심어 주느냐에 평화가 달려 있다고 본다. 아무리 지적으로 우수한 자녀도 넓은 마음과 화합하는 심성이 없으면 지구촌에 위험 인물로 등장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가정이 건재하면 살 만한 가치가 있고 가정이 깨지면 살맛이 달아난다는 점이야말로 세계 평화가 궁극적으로 가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모든 참석자들이 가정과 평화의 관계를 강조하는 이 날 행사 자리를 '세계 평화를 위한 예배당'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어서 등단한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은 "나는 문화적 가치관 정립을 통해 공산주의의 몰락을 이끌어낸 사람으로서 이제 지구촌은 정보화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그것을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가치관이라고 지적한 그는,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가정을 통해 그와 같은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여성 차별 항의에 유태인·아랍인 다툼도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 댄 퀘일 전 미국 대통령

알리모프카자흐스탄대사 위비소노유엔 경제사회이상회의장

호세이니안 유엔주재 이란 대사

부트로스 갈리 전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이 정한 문명 간의 대화의 해에 처음으로 지구촌 각 문명권의 정치·문화·종교·사회 지도자들이 유엔본부에 모여 대화를 시작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유엔이 시애틀 회의에서 경제 균등 발전·인권·여성권 등을 강화하기로 한 것도 비정부기구들의 노력 덕분이었다고 강조한 후, 각 문명이 고유한 방식을 유지하며 서로 대화와 협조를 추구하자는 이 날 행사를 유엔 관계자로서 적극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연사로 나선 문선명 목사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는 전쟁·질병·자연 재해 등 외적인 요인 탓도 있었지만 대부분 종교나 도덕적 타락에서 기인했다. 현재 종교들이 마음을 열고 대화하지 않으면 문명 간의 대화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했다.

초청된 저명 인사들이 문목사가 주창해 온 이른바 '참가정 운동'의 의미를 높이 사준 데 고무된 듯, 그는 유엔 창립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물심 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강대국이 유엔 분담금을 외면해 돈가뭄에 허덕이는 유엔에 단비 구실을 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야심이었다.

그러나 이 날 행사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여성 참가자들은 발제를 맡은 각국의 전·현직 지도자와 학자들이 남성 위주로 편성된 데 항의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비정부기구 대표로 왔다는 한 여성 인권운동가는 "지구와 가정의 절반이 여성인데 이런 회의에서조차 여성에게 역할을 주지 않다니, 세계에 여성 지도자는 없다는 말인가"라고 항의해 주최측이 진땀을 흘렸다.

또 유태인과 아랍인을 한자리에 모이게는 했지만 이들이 회의장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충돌을 둘러싸고 책임을 전가하며 고성을 주고받아 문명 간의 화합이 얼마나 힘든가를 실감케 하는 일도 일어났다.

국내에서 기독교계 일반으로부터 이단 취급을 받아 온 문선명 목사가 이처럼 유엔을 상대로 활발하게 영향력을 확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일교의 한 관계자는 세계의 평화 지도자이자 이념과 종교를 초월하는 영적 지도자라는 점을 인정받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분단된 한반도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강조하며, 유엔이 창립 이후 미·소 양대국의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제구실을 했다면 전쟁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들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세계 평화의 바로미터라고 강조한다.


문씨, 차기 유엔 사무총장에 자기 인물 심기 주력

사진설명 성황 : 합동 결혼식 직후에 열린 '문병 간의 대화' 토론회에 참가한 각국의 정치·문화·종교 지도자.

최근 들어 세계와 융화하는 고유 문화와 문명을 유달리 강조하는 그는, 유엔에서도 유일하게 한국어로 강연을 하고 한복을 입고 등장하는 등 우회적 방법으로 강대국의 유엔 지배에 공격을 퍼붓기도 한다.

유엔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해 온 문목사는 지난해부터 부쩍 유엔의 지도력을 개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현재 국가 별로 파견한 유엔 대사 제도를 개선해 비정부기구도 국가 별로 대사를 파견(상원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상하 양원제도로 유엔을 개조하자고 유엔 대사들에게 호소하면서 그가 내세우는 명분은, 현재의 국가별 대사 제도만으로는 유엔이 각국의 국익을 위한 각축장에 머무를 뿐이라는 점이다. 다소 공허해 보이는 이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그는 유엔에 가입한 작은 나라들을 상대로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

그가 가진 1차적 야심은 오는 10월로 임기가 끝나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후임을 자신이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다. 그가 후임 사무총장으로 밀고 있는 인물은 현재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의장으로 있는 마카림 위비소노 인도네시아 대사이다. 유엔이 주관한 이번 행사에서 위비소노 의장이 사회를 맡은 것도 그 때문이다.

문목사는 유엔에서는 국력을 불문하고 각 회원국에 무조건 1투표제가 적용된다는 점에 착안해 지구촌의 작은 나라들을 상대로 표 모으기 작업을 펴왔다. 브라질·우루과이 같은 남미 국가와 아프리카의 주요 국가, 그리고 태평양의 여러 섬나라가 그의 주요 공략 대상이다.

그는 이를 위해 아프리카 각국에 지속적으로가난과 질병 퇴치 기금을 전하는 한편 마셜 군도에 있는 10여 개 섬나라에는 교육 지원금으로 100만 달러씩 기탁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해당국의 유엔 주재 대사 및 국가 원수 등 지도자들과 교분을 쌓아 그가 지난해부터 두 차례 개최한 유엔 행사장에 이들을 대거 불러들였던 것이다.

문목사의 이같은 야심이 성공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유엔 공략'을 통해 그는 평화의 사도라는 이미지를 국제 사회에 널리 전파하는 데는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종착점은 노벨 평화상 수상이라는 점이 '합동 결혼식' 행사 기간에 확인되었다.

1920년 평안남도 정주에서 태어난 문목사는 행사 마지막 날인 1월29일 생일을 맞았다. 뉴욕 시 힐튼호텔에서 열린 그의 생일 축하연에는 세계 각국에서 참석한 지도자들과 학자, 그리고 유엔 대사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사회를 맡은 캘리포니아 대학 디트레이 교수는 행사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중앙아프리카와 남미, 태평양 각국에서 문선명 목사는 유엔의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01년을 맞이해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대신해 이 분을 노벨상위원회가 평화상을 수여할 것을 권장하면서 우리가 이 자리에서 추천합시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지자 장내에는 미리 준비된 노벨 평화상 추천 서명 용지가 나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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