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한반도행 '신냉전' 기류
  • 송두율 ()
  • 승인 2001.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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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머리 맞댄 한·미 정상 : 국제 사회의 중요한 쟁점인 NMD 문제에 대해서는 비껴 갔다. ⓒ연합뉴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김대중 정부의 외교적 '성공', 아니면 '실패'로 단순히 갈라 볼 수는 없다. 이러한 평가들은 문제를 너무 자기 중심적으로 바라보는 데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유럽의 주요 언론 매체들이 이번 정상회담에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은 이유는,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여서라기보다는 부시 정권의 대외 정책 기조가 뻔한데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의 기저에는 말썽 많은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를 강행하려는 부시 행정부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불량 국가'들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추진되고 있는 이 계획이 결국에는 무모한 군비 경쟁을 다시 부추길 것이기 때문에, 논의는 할 수 있으나 이 계획에 유럽이 따라오도록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흐름이다. 1972년에 미국과 옛 소련 사이에 체결된 탄도탄 요격 미사일(ABM) 억제 협정의 기초를 허무는 미국의 독단적인 태도를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럽 언론이 한·미 정상회담에 무관심했던 까닭


ABM과 NMD는 양립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유럽의 일반적 분위기이다. 바로 그 때문에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를 비판하고 있는데, 부시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점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계획이 필요하게 된 동기로서 항상 거론되고 있는 불량 국가 북한을 상대로 평화 정착과 통일을 위해 직접 협상해야 하는 남한의 정상과 미국의 정상 사이에 이루어진 회담은 이 중요한 문제를 비켜 갔다. 한·미 간에 다루기에는 외교적으로 너무나 껄끄러운 문제라고 하더라도, 오늘날 국제 정치의 핵심 문제를 피했기 때문에도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에 유럽의 여론이 무관심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유럽은 이른바 불량 국가의 도전에 높은 명중도를 지닌 소형 핵무기 사용을 권장하는 미국 군사 전문가들의 발언에 극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 미국이 두려워한다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아직 기술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고, 장래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국가 가운데 제일 먼저 꼽히는 중국도 장거리 미사일을 겨우 20∼25기 정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형 원자탄은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전술적이자 정치적 무기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맹방인 중국과 미국 사이에 타이완 문제로 인해 갈등의 골이 깊어질수록-미국은 4월 타이완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구축함 4척을 판매하기로 되어 있다 -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지역은 더욱더 새로운 냉전 기류에 휘말릴 것이다. 올 여름에는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을 조약이 체결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는 이미 그러한 관계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새로운 냉전적 구조 성립을 앞으로 더욱 가속시킬 요인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부시 행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외 정책이다.

한·미 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논의들이 단순하게 국내 정치적인 공방으로만 연결되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이를 둘러싼 국제 정치적인 기류를 잊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싸기 시작한 새로운 냉전 기류를 직시하면서도 우리 민족의 내부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생산적인 논의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강경하다고 해서 의외라고 생각하거나 실망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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