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보라매, 한국 창공을 날다
  • 주성민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1.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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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최초 여생도 18명, '혹독한 수업' 거쳐 임관…
전투조종사 훈련


오랫동안 꿈꾸어온 전투 조종사의 꿈을 이루고, 여성 최초의 톱건이 되고 싶다." 공군사관학교가 문을 연 이래 최초로 입교했던 여생도의 한 사람 황윤지 소위가 눈빛을 빛내며 한 말이다. 4년 간의 혹독한 수업을 끝낸 공사 최초의 제49기 여생도 18명이 3월20일 졸업과 동시에 임관했다. 소위 계급장을 달고 사관학교 출신 첫 공군 장교가 된 여성 보라매들은 대통령 내외와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 앞에서 일제히 경례를 붙이며 따로 신고식을 했다. 공사에 새로운 전통 하나를 세운 것이다.




3군 사관학교 중에서 여성을 생도로 받아들인 것은 공사가 처음이었다. 지난 20여 년간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자 국방 분야에 우수한 여성 인력을 적극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990년대 초부터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온 공사는 1996년 여생도 입학을 결정했다. 그러나 신체와 체력에서 남성과 차이가 있는 여성이 과연 훈련과 교육을 제대로 감당해낼지에 대해서는 공군도 부담이 있었다.


1996년 9월, 공사 49기 여생도 선발을 위한 입학 전형에 4백45명이 지원했고, 이들 중에서 정원의 10%인 20명이 22 대 1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선발되었다. 공사에 입교하려면 내신과 수능도 중요하지만, 조종사의 기본에 해당하는 시력 0.8 이상, 신장 162.5cm 이상 신체 조건을 갖추어야 하며 숱한 체력 테스트를 모두 통과해야만 한다. 1997년 1월, 가입교 대대에서 여학생 20명을 포함한 49기 예비 생도들에 대한 5주 간의 가입교 훈련이 시작되었다.


차별 없는 맹훈련, 체력 열세는 정신력으로 극복


이 훈련은 기초 체력을 높이고 사격·총검술·화생방·행군 등 기본기를 숙달시켜 사관생도로서 적응 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다. 엄격한 통제 속에 쉴새없이 훈련이 계속되는 가입교 5주 동안을 공사 생도들은 '애니멀 트레이닝'이라고 부른다. 훈련 교관인 3학년 생도들은 여학생들을 혹독하게 훈련했다. 그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독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훈련 교관은 여학생들이 4년 간의 힘겨운 과정을 감당하도록 미리 준비시켜 놓아야만 했다.


훈련생들이 완전 군장 구보에 들어갈 때의 배낭 무게는 22kg이다. 공사는 여학생이 이 무게를 짊어지고 8km를 달리는 일은 쉽지 않다고 보고, 배낭 무게를 10kg으로 줄이고 유격 훈련의 일부 종목을 제한하는 배려를 했다. 그 외 모든 훈련은 남학생과 차별 없이 받았다. 여학생들은 체력의 열세를 오로지 정신력으로 극복해야 했다. 당시 여학생 ㅈ양은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해 입소한 지 1주일 만에 포기했다. 나머지 19명은 지옥의 5주를 마치고 1997년 2월 입교식을 마치고 정식 사관생도가 되었다.


공사에는 10개 학과가 있다. 국제관계학 경제경영학 외국어학 산업공학 전산과학 기계공학 전자공학 항공공학 무기기초학 국방학과가 있으며, 2학년이 되면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생도들은 엄격한 규율 속에서 생활한다. 1학년은 동기나 선배와 이성 교제를 할 수 없으며, 축제 때 파트너도 데려갈 수 없다. 2학년이 되어야 비로소 이성 교제가 허가되고, 4학년 2학기에는 약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생도가 임신하면 퇴교하는 것이 원칙이다.


3학년이 되면 한여름에 3주 간의 지옥 훈련이 시작된다. 여생도들은 낙하 훈련을 위해 11m 높이의 타워에서 뛰어내리며 공포감과 싸웠고, 공중 강하 훈련 때는 C 130 허큘리스 수송기를 타고 450m 상공에서 허공을 향해 점프했다. 이 때 여생도 ㅈ양이 못 견디고 학교를 포기했다. 2000년 1월, 52기 예비생도 2백25명의 가입교 훈련에 49기 여생도 13명이 훈련 교관으로 참가했다.


"나약한 후배는 필요없다. 전체 엎드려 뻗쳐!"


연병장을 울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1997년 가입교 훈련 때 발목 부상에도 불구하고 무장 구보를 끝까지 마쳤던 편대장 임수영 생도였다. 가입교 대대에서 여성 교관들은 '지옥의 여전사'로 통했다. 그 중에서도 임수영은 가장 엄격하기로 소문 난 교관이었다. 후배 여학생들은 선배들에게서 참고 이겨 나가는 법을 배웠다.




4학년 2학기가 되면 모든 생도가 항공 적성 훈련을 받는다. 전투조종사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첫 관문이다. 항공생리검사를 통해 비행시 시력·혈압·폐활량을 정밀 측정한다. 이 검사에서 중시하는 것은 가속도 내성이다. 전투에 들어간 조종사가 항공기를 급상승시키거나 급가속시킬 때 발생하는 중력을 견딜 수 있는지 측정하는 것이다. 원심력을 이용한 가속도 내성 측정기기에 타고 회전을 시작하면, 전투시 급가속·급상승에서 느낄 수 있는 체중의 몇 배 중력을 그대로 받는다. 조종사가 되려면 6G 상태에서 최소한 30초를 견뎌야 하는데, 6G면 몸무게 6배의 중력이다. 2000년 11월, 남자 생도도 통과하기 쉽지 않은 테스트에서 여생도 18명 중 13명이 합격해 조종 특기를 받았다. 조종사의 꿈을 키웠지만 시력이 나빠 조종 불가능 판정을 받은 지주연 생도를 포함한 5명은 희망에 따라 무기 정비·정보 통신·인사 행정·정보·기상 병과 보직을 받았다.


내년 10월 아시아 최초 여성 전투조종사 탄생


처음 여생도들이 입교할 때 기본 체력은 남자의 절반에 불과해 팔굽혀펴기는 평균 12회밖에 못했다. 그러나 완전 군장 8km 구보와 공수 훈련까지 모두 거친 4학년이 되자, 여생도의 체력은 남자 생도의 80%에 이르러 평균 45회씩 팔굽혀펴기를 해낼 정도가 되었다. 그들은 4년간 일반학 평균 성적에서 상위 30% 이내를 유지했고, 반복되는 훈련 속에서 체력의 한계를 정신력으로 극복했다. 공사의 모험은 성공했다.


이제 이들에게 남은 것은 진짜 전투조종사가 되는 일이다. 조종 특기를 받은 13명 중 7명은 지난 1월 공사에 소속된 212비행대대의 초등 과정에 들어갔다. 이들은 5월 중순까지 T 41 훈련기를 몰면서 초등 비행훈련을 받게 되며, 남은


6명은 그후 2차로 초등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이들이 조종사가 되려면 초등 4개월, 중등 8개월, 고등 9개월 등 모두 21개월 간의 비행훈련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조종 특기를 받았다고 모두 조종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17개월 간의 중등·고등 과정을 거치면서 60%가 탈락해 마지막 남은 40% 정도만 조종사가 된다. 공군이 F 16 전투기의 정예 조종사 한 사람을 만들어내려면 6년 동안 65억원을 투자해야 한다.


현재 여성 훈련생들의 꿈은 F 16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다. 이들 중 일부가 고등 비행훈련이 끝날 때까지 살아 남는다면 2002년 10월에는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여성 전투조종사가 탄생하게 된다. 경기도 오산 공군기지의 미7공군사령부 51전투비행단에서는 미군 여성 전투조종사 4명이 탱크 킬러 A 10 공격기를 몰고 하늘을 누빈다. 공사 최초의 여군 소위들이 꿈을 이루는 날, 미국 여군 조종사들과 함께 창공을 가르고 날아가는 대한민국 여성 전투조종사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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