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어디로 가나' 몸 단 부산
  • 박병출 부산 주재기자 ()
  • 승인 2001.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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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과 부산, 제2 캠퍼스 부지 놓고 대학과 시 당국 첨예 대립


부산의 한 대학교가 복도와 화장실 등 뜻밖의 장소에 대당 수천만원씩 하는 실험 실습 기자재를 설치했다. 도서관에도 책이 넘쳐나서, 복도를 열람실로 꾸몄다. 학교 공간이 협소해 기자재를 설치할 장소를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지간한 기자재는 이삿짐처럼 대충 포장되어 한구석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복도에 나앉은 냉장고에 위험한 시약을 넣어 두고도 설치한 안전장치라고는 '시약 보관중, 열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전부다. 국립 부산대학교(총장 박재윤)의 현주소이다.




이처럼 사정이 딱한 부산대가, 최근 부산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책 한 권씩을 선물했다. 부산대측은 월간 〈시민연대〉 3월호를 보내면서 동봉한 편지에 "서세욱씨가 기고한 '내년도 단체장 선거에 휘청거리는 시정' 부분을 꼭 읽어 달라"고 주문했다. 부산에서 사회적 영향력이 큰 학술단체인 목요학술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서씨는 이 글에서, 안상영 시장이 권한을 벗어난 사안에 필요 이상의 반응과 대응을 일삼거나 거액의 기탁금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한 은행을 시금고로 지정하고 그 돈을 자신이 이사장·위원장 등을 맡고 있는 시정 관련 단체에 배분하는 등 내년도 지방선거를 의식해 '무언가 냄새가 나는' 시정을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한을 벗어난 사안'은 부산대가 추진하는 제2 캠퍼스 문제를 두고 한 말이다. 경남 양산시에 제2 캠퍼스를 조성하려는 부산대와 캠퍼스 시외 이전을 결사 반대해 온 부산시의 감정 대립이, 바야흐로 '뻘밭 싸움'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부산대는 부산·경남·울산 지역 최고의 명문으로 자처하면서도 학생 1인당 부지 면적은 전국 최하위이다. 부산대의 학생 1인당 교지 면적 8.0평은 전국 9개 국립 대학 평균(17.1평)의 48%, 서울대(18.9평)의 42% 수준이다. 1인당 건물 면적 3.9평 역시 전국 주요 국립 대학 평균(5.3평)의 74%, 서울대(7.2평)의 54%에 머무른다. 장전동 캠퍼스의 경우 1956년에 학생 5천명을 기준으로 13만6천평 부지에 조성되었으나 그동안 학생이 2만2천명으로 4.5배나 증가한 반면 교지 면적은 1.5배인 19만7천평으로 늘어난 데 그쳤기 때문이다. 의대·치대와 부속병원이 입주한 아미동 캠퍼스는 1956년에 학생 83명, 환자 1일 2백90명, 60병상 기준으로 9천5백평 부지에 조성되었다. 현재 학생 수는 1천7백2명, 하루 환자 3천1백60명, 8백18병상으로 증가했지만 교지 면적은 6백9평이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본관 2층 생리학교실 같은 경우 마땅한 공간이 없어 일부 기자재를 화장실 변기 옆에 설치해 사용하고 있다. 해결책을 찾던 부산대는 1975년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대학병원과 일부 단과대 이전을 추진했으나, 그 때마다 위치가 부적절하다거나 재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발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학교 이전 논의가 다시 공론화한 때는 2년 전이다. 부산대는 1999년 9월 대학발전계획위원회·캠퍼스분과위원회·기획담당관실 등으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부산시내 9개 부지와 경남·울산 지역 12개 부지를 검토한 끝에 지난해 4월 토지공사가 경남 양산시에 조성하는 물금신도시 3단계 지역 34만 평을 후보지로 잠정 선정했다. 부산대의 '부산 이탈' 계획이 알려지자 부산시와 북구청, 서·금 지역(금정구 서동, 금사동) 발전협의회 등이 8개 지역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부산대는 이들 지역을 분석한 후 오히려 당초 잠정 선정한 물금 신도시가 최적 후보지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부산시와 부산대 사이에 감정의 골이 패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이다.


자치구들은 유치 경쟁, 부산대는 내분 조짐




부산시는 부산대가 일부 단과대를 경남지역으로 이전하려는 계획은 '억지'라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개발제한구역 규제가 까다로워 부지 공급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부산시 자치행정과 이갑준 사무관은 "부산대는 시가 추천한 예정지들이 그린벨트라는 점을 문제 삼지만, 모두 우선해제 대상 지역이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올 연말 안에 해제될 것이 확실하고, 대부분 논·밭·과수원으로 이루어져 자연 훼손 우려도 없는 등, 입지나 경제성 등 모든 면에서 물금 후보지에 비해 월등히 유리한 곳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굳이 양산 이전을 강행하려는 데 대해서는 "박재윤 총장이 임기 내에 부지를 확보하려고 너무 서두르는 것 같다"라고 했다. 일부 관계자는 "토지공사와 당시 교육부장관 사이에 어떤 '이면'이 있어 물금 후보지 결정 과정을 짐작하기 더 어렵다"라며 묘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반면 부산대측은 안상영 시장이 내년도 선거를 의식해 여론몰이 식으로 학교 발전을 위한 '마지막 선택'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반박한다. 정치권에 〈시민연대〉 3월호를 우송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문제의 글을 기고한 서세욱 목요학술회 사무처장은 당초 부산대 역외 이전에 반대했던 인물이다. 서씨는 '부산대 제2 캠퍼스 조성에 대한 실상을 잘못 알고 양산 조성을 반대한' 자신의 '실수와 착오'를 시인하면서 글을 시작했다. 그는 부산시가 '느닷없이' 부산대의 결정에 제동을 걸고 절충에 실패하자 시민 정서에 호소하는 여론몰이에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속사정을 살펴보면 내년 부산시장 선거와 무관하지 않다"라며 안시장이 많은 현안을 밀어 두고 부산대 제2 캠퍼스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첨예하게 대립해 여론싸움을 벌이던 안시장과 박총장은 지난 2월 어렵게 대좌했으나 서로 종전 입장을 고수해 성과 없이 헤어졌다. 이후로 더욱 감정이 악화한 양측은 서로가 제시한 후보지를 흠집 내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 와중에서 부산시가 거론한 후보지가 20군데를 넘어섰고, 각 자치구들도 부산대 유치전에 뛰어들어 부산 전역이 '부산대 몸살'을 앓고 있다. '한 주민 한 통장 갖기' 운동을 시작한 기장군이 부지 무상 제공을 약속했고, 강서구·서구·해운대구와 민간 차원의 기구를 합하면 10개가 넘는 부산대 유치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대가 위치한 금정구에서도 부산대 역외 이전 반대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부산대는 부산대대로 학교측과 교수회가 양산 이전에 대한 교수진 설문 조사의 공정성(학교측 조사 결과 찬성 71.3%, 교수회측 조사 결과 반대 50.3%) 문제로 대립해 있고, 총학생회와 민주동문회 등이 이전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심각한 학내 갈등을 겪고 있다. 1998년 장전동 캠퍼스로 이전한다는 방침을 확정해 교육부 승인까지 받은 의·치대를 다시 양산으로 옮기는 것이 합리적인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문제를 다루어 온 교육인적자원부는 3월 말까지 제2 캠퍼스 조성 승인 여부와 이전 예정지를 확정하려던 당초 계획을 4월 중순으로 미루었다. 그러나 부산시와 부산대의 대립이 지금처럼 '이전투구'로 이어지는 한, 심사위원회의 결정 내용에 상관없이 서로가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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